[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아마존 AWS 공공부문 서밋을 취재하기 위해 워싱턴 D.C를 최근 찾았습니다. 100개가 넘는 세션에 사이사이 잡힌 인터뷰를 처리하느라 호텔과 행사장만 오가던 중, 3일째 되던 날 잠시 쉴 틈이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택시를 타고 먼 길을 나서기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호텔 근처 산책이나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뜨거운 날씨에 생수를 홀짝이며 걷던 중 한 무리의 인파가 몰려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 앞에 어림잡아 3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호기심에 다가서니 최근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있는 불법입국과 관련된 시위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국이 멕시코 국경선에서 불법입국하려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들을 격리했고, 시위대는 이를 규탄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들어보며 간간히 주변 사람들을 따라 박수도 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때 현장에서 자기를 활동가라고 소개한 한 동양계 남자를 만났는데, 간간히 바디랭기지를 활용해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네이버 파파고 사랑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건설한 나라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구성됐고, 그 역동성으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 절대적인 명제를 거스르는것에 큰 분노를 보이고 있더군요.

▲ 미국에서 불법이민자 자녀 격리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휘청이는 풀러스, 여기가 한계?
출장기간 가능하면 국내 이슈는 인지는 해도, 크게 마음을 쓰지는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까지 온 흔치않은 기회를 맞아 AWS로 대표되는 현지 클라우드 경쟁력에 제대로 파묻혀서 취재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소식이 호텔에서 AWS 기사를 쓰는 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국내 1위 카풀 서비스 풀러스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김태호 풀러스 대표는 이사회에 이미 사의를 표명했고, 18일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직원 70%를 감원한다고 합니다. 서비스는 정상적으로 제공한다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 여부는 불투명해 보입니다. 네이버와 SK(주) 등 굴지의 대기업으로부터 220억원을 투자받은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풀러스의 위기는 비즈니스 모델의 취약성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사업의 규제와 이에 따른 시대의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뉘앙스가 강합니다. 특히 카풀 서비스가 기존 택시업계를 자극하며 야당을 중심으로 정무적 판단으로 흐른 감이 있습니다. 원래 카풀은 출퇴근 시간에만 수익을 전제로 하는 운행이 가능했으나, 풀러스는 이를 확대해석해 서비스 볼륨을 키웠다가 역풍을 맞은 셈입니다.

풀러스의 책임도 있습니다. 민감한 현안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만 갑자기 서비스 볼륨을 키우려다 택시업체의 '역린'을 건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택시업계에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반대로만 일관하며 자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노력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풀러스의 '24시간 운행'은 무리수였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가이드라인이 없는 무법의 경계를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토론의 여지가 있었으나, 택시업계는 이 마저도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승객들이 카풀을 좋아한다고? 그래도 싫어, 무조건 싫어. 우리만 살아야 해" 무엇이 진짜 살 방법인지, 택시기사들을 향한 대중의 싸늘한 시선도 무시하면서 말이죠.

논의를 확장하자면, 택시업계보다 더 큰 책임을 질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정부 당국입니다. 지난해부터 카풀을 둘러싼 논란이 심해졌으나 별다른 입장을 정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있다지만, 아쉽게도 위원회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 4월 총 3번에 거쳐 이 문제를 다룰 해커톤을 추진했으나 택시업계의 반발에 무산됐습니다. 책임의 단초는 택시업계지만 이를 중재하고 해결해야 할 정부 당국은 사실상 묵인, 방조했습니다.

▲ 우버 반대를 외치던 택시업체 시위대. 사진=이코노믹리뷰 조재성 기자

진짜 문제는 우리 내면에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7일 택시 합승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습니다. 1982년 법적으로 금지된 택시 합승제를 살려 심야 택시 승차난을 해소하려는 의도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카카오택시나 풀러스 등이 지향하는 바와 동일합니다.

당연히 택시는 합승이 가능하고, 자가용은 합승이 않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명확한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안전의 문제입니다. 택시기사는 제도권에서 규정한 기사며, 승객의 안전을 보장하지만 일반 카풀 운전자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일견 맞는 말입니다. 최근 풀러스를 이용한 여성이 사석에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카풀을 이용했는데 남자가 자꾸 말을 시켜서 모른척했다. 그러더니 자기를 왜 운전기사로 취급하냐며 화를 냈다"

그렇다면 택시는 안전할까요? 택시기사와 승객 모두 100% 안전하지 않습니다. 특히 도급택시라는 기묘한 제도가 존재하는 한, 택시에 탄 승객이 무조건 안전하다는 전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사회적, 문화적 전제로 풀어내야 합니다. 지금 확실한 것은 승객의 안전에 대한 담론보다 대승적인 관점에서 끌어낼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이 되겠네요.

공공의 이익에 집중하면 카풀이라는 특별한 비즈니스 모델은 충분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셈입니다. 모빌리티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는 가운데, 풀러스와 카카오택시가 무너진 무주공산에 외산 기업들이 속속 들어오면 어떻게 책임질 생각인가요. "우리가 우버를 몰아낸 사람들이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택시업계는 이제야 작은 파도를 하나 만났을 뿐입니다. 소프트뱅크를 중심으로 모빌리티 합종연횡이 끝없이 거대한 파도를 몰아치면, 그때도 택시업계가 우버처럼 이겨낼 수 있을까요.

▲ 택시업계 관계자들이 카풀 서비스 업체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간혹 취재를 위해 택시업계 분들을 만나면 소박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문제는 이들에게 잘못된 정보와 공포를 주입하는 분들입니다. 주로 '목소리가 큰' 분들이지요. 저는 여기서부터 문제의 해결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IT업계 중심의 카풀 업계 분들은, 먼저 택시업계의 하단에 위치한 택시기사들을 위한 설득에 나서야 합니다. 물론 어렵지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올해 초 국회 택시업계 관련 토론회에서 몇몇 연사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카카오택시와 풀러스와 같은 IT 기업들이 택시기사들의 빅데이터를 쏙쏙 빼가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려 한다" 즉, 택시업계도 충돌이 잦아지며 IT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중심으로 진부하지만 상생의 카드를 빼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오는데 그것도 모르는 아둔한 자들"이라는 헛된 선민의식이 있다면 버리십시요. 그 선민의식의 결과가 풀러스의 위기니까요. 싸우는 것이 아니라 IT를 매개로 정당하게 유혹하십시요. 카카오는 경험도 있잖아요.

일본에서 불고있는 우버와 현지 택시업계의 흐름, IT 빅데이터를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법, 이를 통해 함께 먹고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남북한 평화무드에 기대어 이를 활용해 서로 논의할 수 있는 접점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택시업계는 위기감을 느껴야 합니다. 우버를 몰아내던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택시합승 이야기가 나오면서 다양한 IT 기술과의 접목을 꾀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업의 본질이 IT기업에 넘어가고 있다는 점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무조건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중국의 디디추싱, 동남아시아의 그랩, 미국의 우버 사례에 대한 공부도 필요합니다. 함께 공부하는 겁니다.

▲ 일본택시 업계는 최근 ICT 기술을 적극 체화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습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정말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지만, 우리 전체가 변해야 합니다. 우리 내부의 폐쇄성을 버려야 합니다.

이야기가 다소 샛길로 빠지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제주도 예멘 난민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많은 유럽국가가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가 사회적 문제로 고통받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그 공포감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외부의 충격에 무턱대고 공포만 느끼는 것은 택시업계가 우버에 충격받아 무작정 반대하는 장면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합니다. 우리 내부의 폐쇄성, 우리 내부의 변하지 않으려는 집착, 우리 내부의 외부인을 무작정 배척하려는 의식.

미국이 이민자의 역동성으로 만들어진 나라라는 한 운동가의 목소리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굳이 포용성, 즉 시혜의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것은 받고 나쁜 것은 버리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그 정도의 역량도 없나요? 카풀 서비스를 무작정 배척하고 이에 따른 상당한 이득을 무조건 포기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가진 날카로운 분석력, 그리고 시의적절한 판단력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금 더 외부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내부에 충격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이라는 목표를 위해 취사선택을 전제로 외부의 흐름을 판단할 시간이라도 갖자는 겁니다. 무조건 잘 알지못해 배제하고, 밀어내지 말고요. 미국이 이민자라는 외부의 역동성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던 것 처럼요.

▲ 청와대 청원에 카풀 서비스 관련 내용이 올라왔다. 출처=갈무리

2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젊은 혁신가들의 꿈을 짓밟은 택시업계라는 검은 카르텔을 이제는 청산해야할 시대입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24일 현재 1154명 청원을 넘겼습니다. 이 절절한 외침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이 변하면 당연히 맞춰야죠. 나아가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고 쓸모없는 것은 버릴 최소한의 시간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견고하고 음울한 카르텔이 근본없는 공포에 기대어 무조건적인 외부배척에 나서는 패턴을, 이제 끊어버릴 때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