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정경진 기자]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과거 1990년대 멋을 좀 안다는 젊은이들이 모여들던 당대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다. 지금은 인파로 넘쳐나는 가로수길은 주말에는 한산한 거리였으며 세로수길은 아예 주택가에 불과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사거리에서 학동 사거리 입구까지 ‘ㄴ’자 형태의 거리로 대한민국 소비문화를 상징했지만 현재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유동인구가 줄어 들었음에도 여전히 비싼 임대료를 고수하면서 상권 침체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31년 동안 한 자리에서 압구정을 지켜온 파리크라상 매장 역시 결국 지난해 문을 닫고 말았다. 압구정 상권의 침체는 지난 5~6년 전부터 조금씩 진행됐지만 상가주들은 임대료를 매년 수백만원씩 올려왔다. 파리크라상 압구정점의 경우 폐점할 당시 임대료는 월 4000만원에 이르렀다. 현재 이곳의 1,2층은 여전히 모두 공실이다. 빈 점포들이 즐비한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로데오’라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스 고급 쇼핑가에서 따올 만큼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했지만 지금은 그 이름마저 초라해질 정도다. 과연 과거의 영광을 다시 구현할 수 있을까?

▲ 임재홍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이사

글로벌 종합부동산서비스 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임재홍 이사는 <이코노믹리뷰> 인터뷰에서 “리테일 시장은 무한정 성장하거나 계속 늘어날 수가 없는 시장”이라면서 “테넌트(임차인)끼리도 경쟁을 하지만 상권끼리도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상권은 유동인구를 빼앗길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임 이사는 “상권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결국 얼마만큼 트렌드를 이끄는지가 상권 성쇠의 열쇠”라며 “트렌드에서 벗어난 상권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압구정 로데오의 경쟁상권이라고 볼 수 있는 강남은 오피스나 학원, 유흥이 복합적으로 만들어진 상권으로 신논현역 방향이나 신분당선 방향으로 영향력이 더 확대되며 성장하고 있다. 가로수길은 선호하던 상권이 아닌 그저 동네상권으로만 시작했던 곳이지만 정형화된 소비문화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흥행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임 이사는 “반면 압구정 상권은 상가투자자들의 손바뀜이 여러 번 발생하면서 임대료가 급격히 올라간 데다 상권이 정형화되고, 대기업 계열의 브랜드가 이미 상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소비자들이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면서 “결국 소비자들이 타 상권으로 유출되고 임대료만 높은 상황에서 상권이 쇠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거의 핫플레이스를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임 이사는 간단하게 답했다. ‘동일한 방법으로 상권을 변화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즉 상권이 개성을 살릴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생업체들이 상권에 입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임대료가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부티크 느낌의 소형 매장들과 독립적인 느낌의 매장이 들어서게 된다. 임 이사는 “신흥 상권들처럼 과일로 치면 설익은 듯한 느낌을 압구정 상권이 갖게 된다면 경쟁력을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이사는 “독립적이고 유니크한 매장이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임대료가 현재 수준에서 많이 낮아져야 한다”면서 “현재는 이 부분을 맞춰나가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임 이사는 상권이 흥행하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의 ‘키워드’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로 ‘기억의 공유’다. 임 이사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젊은 층의 소비행태를 보면 어떤 ‘공간’을 다녀왔는지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라면서 “획일적이고 단층화된 공간이 아닌 입체적인 공간과 히스토리가 있는 공간을 선호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각 상권을 예로 들며 “종각 상권은 도심지로 오피스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공실이 넘쳐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정도로 상권이 쇠퇴한 지 오래됐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대형 브랜드로 상권의 공실을 채우려 하기보다는, 입체적이고 재미난 구성이 필요한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리테일 시장이 트렌드에 갈수록 더 민감해지면서 업계에서는 일본 벤치마킹도 활발해지고 있다. 임 이사는 “과거에는 회사 차원에서 일본을 벤치마킹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개인 사업자 차원에서도 일본에 소형 리테일 시설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지를 배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면서 “고감도(인구를 집객시킬 수 있는 힘)의 아이템과 업종들이 요구되는 세대인 만큼 상권도 그에 맞게 변화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한국창업부동산연구원의 권강수 이사는 대형상권들의 쇠퇴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으로 바라봤다. 권강수 이사는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종로나 압구정 등 대형상권들은 갈수록 더 위축될 수밖에 없는 반면 골목상권은 상대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권이 위축되기 시작한 이상 민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비어 있는 점포를 재생점포로 공급하지 않는 이상 좋아지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흐름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료를 내리는 부분에 대해 권 이사는 “명동 같은 경우 사드 보복 등으로 관광객들이 줄어들면서 임차인들이 임대료 인하 등 회의를 많이 하고, 상인연합회에서도 단합행사 등을 통해서 임대료를 인하하는 방안을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상가주들이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 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생각이 커서 쉽게 임대료가 낮아지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높은 임대료가 상권 쇠퇴의 주요인으로 지적되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권 이사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통해 한 업체가 한 곳에서 장사를 오래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어떻게 보면 상권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일본은 한 번 임대차 계약을 하면 9년까지 보호를 해주며, 유럽은 20~30년을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5년은 너무 시간이 짧은 데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갈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대차 계약을 10년으로 늘린다면 임대료 상승에 제한을 받아서 상가주가 임대료를 급격히 올리기가 어렵고 상권도 유지시키기가 조금 더 수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계약갱신청구권을 5년으로 보호하고 있지만 최근 임차인 보호기간을 10년까지 연장하는 개정안이 발의됐다. 권 이사는 “종각 상권은 비싸기만 하고 오래되고 지저분하다는 평이 주를 이루며 젊은 층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인 만큼, 임대료를 낮추고 평균화하거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