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입시학원과 고시학원이 밀집한 서울 노량진에서 6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동관 씨(44)는 “자영업자들의 현재 상황은 딱 ‘사면초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공무원 준비생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판매했지만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했다. 오르락내리락 종잡을 수 없는 식자재 가격도 가격 인상의 원인이었다. 메뉴 가격은 500원에서 1000원 인상됐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매출의 30%나 되는 인건비도 감당하기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터넷 강의가 발달하면서 불황을 모르던 노량진도 학생 수가 줄었고, 식사시간이면 식당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보기 힘들어졌다.

#서울의 관광명소인 명동에서 삼계탕집을 운영하는 정 모 씨(62)는 요즘 장사가 안 돼 속을 끓이고 있다. 정 씨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올 때는 항상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는데, 요새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면서 “장사가 안 된다고 임대료나 최저임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명동은 한국 사람들보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 생계를 위해 1년은 버텼지만 올해는 못 넘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와 정 씨는 흔히 ‘사장님’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전형이다. 그런데 이들이 흔들리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주요한 기둥인데 이 기둥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의 ‘2018년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자영업자는 569만6000명으로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2800만명 중 20.3%에 해당한다. 경제활동인구 5명 중 1명은 자영업자라는 뜻으로, 이들이 어려우면 민생경제의 큰 축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 통계청의 경제홀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자영업을 하는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출처= 통계청

이들이 왜 동요하는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최근 이어진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과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워라벨 문화, 그리고 미투(Me too)로 회식문화가 쇠퇴한 것이 맞물리면서 악영향을 미쳤다는 게 자영업자와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1인 가구 증가로 외식보다는 가정간편식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 우리나라 인구 구조의 변화, 사드(THADD·고고도방어미사일) 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는 등 대외 변수도 자영업자들에겐 악재가 됐다.

여기에 정책요인도 가세했다. 청탁금지법,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도입 등도 자영업자들에게는 치명타가 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을 16.4% 인상했다. 지난해 6470원이던 최저임금은 올해 7530원으로 올랐다. 1060원이 오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적은 돈일 수 있으나 자영업자들에게는 아니다. 하루 8시간, 주 5일을 일한다고 할 때 인상 이전보다 월 33만9200원을 더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일주일에 법정 근로시간(8시간) 기준으로 이틀만 일해도 고용주가 하루 치 유급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법 규정이 자영업자를 괴롭힌다. 직원을 채용해 주유 수당을 주자니 부담이 너무 크고 안 주려니 주말에 따로 고용을 해야 하는 이중부담이 겁난다. 서울 충정로에서 식당을 하는 김 모 씨(54)는 “최저임금 7530원에 주휴수당을 따로 지급하면 시급은 9000원이 넘는다”면서 “여기에 4대 보험료 등을 합치면 점주가 부담하는 인건비는 1만원을 넘는다”고 하소연했다.

음식점과 편의점 등 자영업주의 선택은 명확하다. 직원을 내보내고 본인이나 가족이 더 오래 일하는 것이다. 김 씨 역시 이런 방법을 선택했다. 이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한 편법을 동원한다. 김 씨는 “본인 여행 경비나 자녀 학원비 등을 벌려는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근무시간을 8시간에서 6~7시간으로 줄이도록 양해를 먼저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남들은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는데,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라면서 “인건비 부담으로 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 직접 몸으로 때워야 하는 만큼 자영업자들은 현재 ‘지옥’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라고 자평했다.

신규채용 기피는 비단 편의점과 식당에서만 나타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와 경기도 고양시 등 서울 외곽 신도시에는 주유원을 없앤 셀프 주유소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그 파장은 요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로 변한 현실로 나타난다. 최근 통계청의 1분기 비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그냥 쉰다’는 인구가 200만명에 육박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올해 1분기 비경제활동인구 중 ‘그냥 쉬었음’ 인구는 195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냥 쉬는’ 인구는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구체적인 이유 없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만7000명이나 증가했다. 그만큼 최저임금 등이 정책제도 변화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늘어난다면 걱정할 게 없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줄어 손에 쥐는 돈은 쥐꼬리만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숙박·음식점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93.7(2015년 100)이다. 이는 2005년 1분기(90.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서비스업 생산지수는 매출액을 바탕으로 산출된다. 2015년 생산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올해 1분기 생산은 2015년보다 뒷걸음질 쳤다는 의미로 업황이 13년 만에 가장 나쁘다는 뜻이다. 또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 증가율은 1.0% 그쳤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영업잉여는 주로 영세 자영업자의 수익을 말하는데 지난 2011년 0.7%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대신 빚은 쌓이기만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취급기관의 숙박·음식점업 대출 잔액은 올해 1분기 말 51조2589억원으로 1년 전보다 4조4644억원 증가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종일 일해도 나아질 게 없고 빚만 늘어나니 한숨이 나오고 절망의 눈물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상승하는 임대료도 문제다. 죽도록 일하지만 돈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모이지 않는 이유로 자영업자들은 임대료를 지목한다. 최근 ‘둔기폭행’이란 비극적인 결말이 난 서울 종로구 서촌 ‘본가궁중족발’ 사건도 임대료 문제가 발단이었다. 2016년 상가를 매입한 건물주 이 모(60) 씨는 월 297만원인 임대료를 1200만원으로 4배가량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임차인 김 모(54) 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양측 간 명도 소송과 강제집행의 갈등이 이어졌고 지난 7일 김 씨가 이 씨에게 망치를 휘둘러 상해를 입히는 비극이 발생했다.

▲ 경기침체, 최저임금상승 등 사면초가인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선택하면서 상가의 공실률 또한 높아지고 있다. 출처= 한국정감원

이렇다 보니 폐업률이 창업률을 앞지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상가정보연구소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권분석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하반기 전국 8대 업종의 폐업률은 2.5%로 창업률 2.1%를 넘어섰다. 그러자 건물 공실률이 높아졌다. 지난 8일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2018년 1분기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오피스나 상가의 공실률은 전 분기와 지난해 1분기 대비 모두 상승했다. 전국 평균 공실률은 오피스가 12.7%, 중대형 상가는 10.4%, 소규모 상가는 4.7%로 지난해 1분기 대비 각각 1.2%, 0.9%, 0.8% 상승했다.

이근재 소상공인협회 부회장은 <이코노믹리뷰>에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기부양책”이라면서 “세제지원,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민주주의 사회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정책들이 쏟아지지만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은 없었다. 이제라도 명확하고 다각적인 현황진단을 통해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