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취소되면 ‘닭 쫓던 개 신세’

#1. 이달 초 수원지법 여주지원 경매 법정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이 입찰자들로 가득했다. 11시 10분 집행관이 입찰 마감시간을 알리는 버저를 울렸다. 입찰 서류를 정리하던 집행관이 큰 소리로 한 사건번호 입찰자를 불렀다. “2017타경○○○○ 입찰하신 분~ 앞으로 나오세요!” 집행관은 이날 경매가 진행되지 않는 물건에 입찰한 A씨부터 찾은 것이다. 당일 경매 진행이 ‘정지’된 물건에 버젓이 입찰한 A씨는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2. 경매 투자자 B씨는 최근 성동구 행당동 H아파트를 입찰하려고 등기사항증명서를 살피던 중 특이점을 발견했다. 부동산의 가치보다 경매신청권자의 청구금액이 너무 적었다. 감정가 3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채권자가 강제경매에 부친 것인데, 가압류 금액이 1500만원에 불과했다. 그래도 별일 있겠나 싶어 입찰 당일 경매법정을 찾았다. 아니다 다를까. 이 물건은 입찰 당일 입찰게시판에 ‘취하’란 표시의 붉은 색 도장이 찍혀 있었다.

경매 투자를 하다 보면 자신의 잘못 없이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즉 경매가 진행될 것으로 알고 입찰에 참여해 최고가 매수인으로 결정됐으나 갑자기 경매가 중간에 중단되거나 아예 경매 진행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바뀌는 경우다. 이런 경우 매수보증금은 돌려받게 되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돈 되는 물건을 낙찰받고 기분이 들떠 있다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경매 물건이 사라지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아쉽게도 경매 과정에서 이러한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경매에서 중요한 절차상의 함정으로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취하’와 ‘취소’ 물건이다. 어렵게 시간을 내 권리와 물건분석을 마친 다음 돈 되는 부동산을 낙찰받았더라도, 잔금을 내기 전 채무자나 소유자가 부동산을 잃지 않으려고 서둘러 채무금액을 갚는다면 황당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경매 과정에서 갑자기 취소나 연기되는 물량이 꾸준하게 늘고 있어 경매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망된다.

얼마 전 가수 송대관의 이태원 집과 화성 땅이 법원 경매에 부쳐졌다는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연예인 소유의 고급 주택과 개발지 땅에 호기심을 갖고 입찰 준비를 하던 중 한순간에 경매시장에서 사라졌다. 경매 진행이 갑자기 ‘정지’된 탓이다. 채권자들의 채권총액이 166억원이나 되는 부동산이 경매 입찰에 부쳐졌다가 경매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송 씨가 법원에 ‘회생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경매 진행 중 경매 물건의 취소와 취하, 정지와 중지 등으로 갑자기 사라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흔한 사례로는 경매에서 남는 금액이 없어 경매 진행이 안 되는 ‘무잉여’ 외에 채무자가 채권자의 돈을 갚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실채권(NPL) 매물의 증가와 국민행복기금 운용에 따르는 채무조정,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의 경매 취하자금 대출 등으로 갑자기 경매 절차가 중단되거나 변경되는 사례가 흔해졌다.

실제 경매 과정 중 취하 또는 취소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의 경매 물건은 전체 매물의 5~10%나 된다. 경매 고수일수록 겉은 멀쩡한데 안은 ‘흠집’ 있는 매물을 걸러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낙찰의 기쁨을 안고 잔금 준비와 보유 부동산의 처분, 명도까지 진행했다가 졸지에 절차가 취소되면 낙찰자의 피해는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낙찰자의 지위를 불안하게 하는 흠집 물건은 미리 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2002년 민사집행법이 제정되면서 경매시장은 많이 달라졌다. 항고 보증금 공탁제도와 함께 매각조건이 확정된 상태에서 경매가 진행돼 어느 정도 경매 진행 상황과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바뀌었다. 하지만 ‘취하’와 ‘취소’, ‘정지’ 등 절차상의 복병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따라서 투자자는 ‘취하’와 ‘취소’, ‘정지’와 ‘변경’ 여부를 확인하고, 그럴 가능성이 높은 물건은 아예 입찰에서 제외하는 것이 안전하게 입찰에 참여하는 노하우다.

 

저당권 많을수록 경매 진행 빨라

경매 물건의 등기부등본이나 경매 사건검색을 통해보면 경매 취소와 취하 가능성이 높은 경매 물건들은 쉽게 눈에 띈다. 취하 가능성이 높은 물건은 부동산의 가치보다 저당권 금액 등이 현저하게 적어서, 채무자가 채무금액을 갚을 수 있는 물건이다. 절차상 안전한 경매 물건은 오히려 등기부상 권리가 복잡하고 저당권이 많다. 채권청구 금액이 많고, 중복 경매가 진행될수록 경매절차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변경’과 ‘연기’가 잦은 물건도 경매 절차 중 채권자와 채무자가 합의를 시도해 경매가 없던 것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다. 또 강제경매 물건인데 달랑 가압류 하나만 설정돼 있고 근저당(기본대출 정도)이 하나 정도 있는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이는 채무자와 채권자와의 감정싸움에서 비롯된 물건이라 변동 여지가 많다. 또 강제경매 사건이거나 지분경매의 경우도 경매 중에 갑자기 절차가 늦춰지거나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

‘취하’란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가 채무자와 합의하에 경매 신청 행위를 철회하는 것을 말한다. 채권자가 채무금액을 받아갈 여지가 있는 경우에 경매를 없었던 상태로 돌리는 행위다. ‘취소’란 채무의 변제 또는 경매원인의 소멸 등으로 경매 개시결정 자체를 취소하는 것을 말한다. ‘변경’과 ‘연기’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경매가 진행되었으나 사정이 바뀌어 경매 기일에 경매가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다.

이러한 흠집 있는 경매 물건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입찰 전 꼼꼼한 권리 조사와 입찰 준비가 필요하다. 되도록 입찰 하루 전 담당 경매계에 전화로 경매 진행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입찰 당일 경매가 진행됐다가 중간에 취소되더라도 최선을 다해 절차상의 변동 내역을 체크해봐야 한다. 물론 대법원 인터넷 경매공고 사이트 안의 ‘물건 검색란’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는데 경매 진행이 취소, 취하됐다면 공고에서 물건 자체가 삭제된다.

경매 입찰장을 찾은 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매법정의 공고란에서 경매 진행상의 변동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설 경매정보 업체에서 경매진행 절차상의 변동(변경·연기, 취소·취하 등)에 대해 수시로 업데이트해 바뀌는 정보를 알려 주기도 하지만 누락되거나 갑자기 변경되기 때문에 반드시 입찰자가 체크해보는 수밖에 없다.

경매 매각서류나 현장 탐문을 통해서도 취하·취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경매 부동산의 임차인이나 소유자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채무변제 등 사정을 알아낼 수 있다. 등기부상 채권자 신상을 알아내거나 채권 담당부서에 문의하면 권리 변동과 경매 진행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경매에서 이런 하자 있는 물건을 미리 피하는 것도 좋은 노하우다. 싸게 사는 만큼 이만한 정도의 입품과 발품을 파는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최고 금액을 써내 최고가매수인으로 결정된 경우에도 잔금납부는 기한 내에 하는 것이 좋다. 잔금납부 기일은 통상 매각결정 후 한 달 전후로 정해진다. 물론 보름 또는 한 달 반 이후로 지정될 수 있어 언제 납부해야 할지 입찰 전에 잔금납부 계획을 세워서 입찰에 응하는 게 좋다. 1~2금융권 모두 경락잔금대출을 취급하는 지점이 많으나 대출조건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입찰 전 미리 각 금융권 대출담당자와 상담한 후에 입찰 전략을 짜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