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한 기업의 사옥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오피스 공간이 아니다. 기업의 개성과 문화를 사회에 전파하는 직접적인 매체로 자리매김 했다. 견고함에 중점을 둔 과거와 달리 요즘 건축한 사옥들은 이런 부분들을 고려하고 있다. 기업 환경에 맞춰 사옥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최근 완공된 기업들의 사옥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신본사를 건립한 아모레퍼시픽그룹도 마찬가지다. 외관은 기업의 정체성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었다. 내부도 마찬가지다.

▲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해 11월 용산에 신본사를 준공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견다희 기자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해 11월 신본사 준공과 함께 세 번째 용산 시대를 시작했다. 1945년 개성에서 창업한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선대회장은 1956년 현재 본사 부지인 서울 용산구 한공로에 사업 기틀을 세웠다. 10층 규모의 신관을 준공하며 아모레퍼시픽그룹을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을 이끄는 대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지난해 같은 장소에 영국의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트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한 ‘창의’와 ‘소통’을 콘셉트로 한 지하 7층 지상22층, 총면적 18만8902㎡(5만7150평)의 신본사를 건립했다. 설치한 엘리베이터가 36개라면 그 규모가 가늠이 될까. 공사비용은 5355억원이 들어갔다. 

▲ 아모레퍼시픽은 신본사의 5층, 11층, 17층 3곳에 '루프 가든'을 마련해 임직원들이 편안한 소통과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공간을 준비했다. 출처= 아모레퍼시픽

신본사의 외관은 화려한 기교 없이 편안한 느낌이다. 빌딩 숲속으로 둘러싸인 도심 속에서 구멍 뚫린 백색의 박스모양 건물은 유독 눈에 띈다. 외관 전체 유리를 적용했고 블라인드의 날개모양과 비슷한 알루미늄 커튼월(2만1500개)을 설치해 안이 보일 듯 말 듯 뚫린 공간으로 시원한 인상을 준다. 이는 우아한 입면을 만들기도 하지만 빛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아름다움을 지니면서도 편안하고 풍부한 느낌을 주는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단아하면서도 간결한 형태를 갖춘 하나의 커다란 달항아리를 표현했다고 한다. 특히 한옥의 중정을 연상시키는 건물 속 정원 '루프 가든' 등 한국의 전통 가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소들을 곳곳에 반영했다. 안타깝게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 아모레퍼시픽 신본사 1층 로비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견다희 기자

내부는 소통과 연결을 콘셉트로 했다는 아모레의 말처럼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안내 역할을 하는 로비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됐고, 편의 시설을 구비해 누구나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변신했다.

1층 로비는 들어서자마자 출입카드를 찍어야 하는 오피스와 다르게 저층부에 미술관과 사원유치원, 카페 등이 있어 공용공간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 통상 바닥과 천장의 거리인 천장고는 2.8m다. 아모레는 4층 이상의 높은 층고를 둬 공간 자체가 주는 느낌이 개방적이다. 올라가는 동선을 감추거나 돌리지 않아 공공장소처럼 그 공간을 드러내 보였다. 로비에는 설치미술인 듯 한 패브릭 소재의 소파가 곳곳에 있어 사람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아모레퍼시픽은 신본사에 공공 미술관을 개방하고 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견다희 기자

많이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미술관이다. 기업 미술관의 특성은 바로 공공성이다. 아모레가 이번 신본사에 미술관을 마련한 것은 대중 속으로 예술을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기업 친밀감을 높이려는 시도로 보인다. 또 지난해 삼성미술관 ‘리움’이 홍라희 관장 사퇴 이후 ‘개점휴업’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시민들도 새로운 미술관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

신본사의 내부는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했다. 노출콘크리트는 통상 순수하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아무래도 화장품 회사의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아모레가 추구하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1층이 로비와 카페, 미술관 등으로 쓰이는 공공장소라면 2층과 3층은 보다 ‘소통’에 중점을 두고 아모레가 추구하는 문화를 잘 드러내고 있는 공간이다. 대강당, 유치원, 회의실, 아모레퍼시픽 고객연구센터, 이니스프리 그린카페 등이 있다.  

▲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2층과 3층은 브랜드홀, 고객연구센터, 대강당 등을 배치해 고객과의 소통에 중점을 뒀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견다희 기자

지하 1층에는 상업시설들이 입주해 있다. 음식점, 카페, 바버샵, 네일샵 등 20개 매장이 있다. 수요미식회, 생활의 달인, VJ특공대 등에서 소개한 유명 음식점들이 입점해 있어 용산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 아모레퍼시픽은 지하 1층에 카페, 식당, 편의점, 약국 등의 편의시설 20개를 입점시켰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견다희 기자

사실 아모레의 신본사는 준공과 함께 단숨에 용산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방문당일 아모레와 입주 회사의 직원 외에 출입증을 목에 걸지 않은 일반 방문객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카페를 이용하고 꽃을 사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아모레 신본사는 용산의 랜드마크가 됐을까.

최근 용산은 신흥 주거단지로 거듭나고 있다. 1호선 용산역과 4호선 신용산역이 인접해 있는 더블역세권으로 지난해 래미안용산, 용산푸르지오써밋 등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줄줄이 입주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음식점이나 상업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아모레 신본사 인근 부동산을 운영하는 A(52세, 남)씨는 “용산은 과거 전자상과 위주로 성장한 지역으로 인근에 상업시설이라고 해야 용산역의 이마트나 아이파크몰 정도가 전부다”면서 “그렇다보니 아모레 신본사에 그리 많은 점포가 입점하지 않았지만 최근 인기 있는 식당이나 카페들이 입주해 있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상업시설을 최소화하고 문화로 지역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개방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최근 소비자는 상품 하나만 단편적으로 보지 않는다. 기업의 철학과 문화까지도 따진다. 이때 공간은 기업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구글과 애플 등 잘 나가는 외국 기업이 사내 공간 구성과 일하는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랜 시간 업계 1위 자리를 지키던 아모레가 지난해 경쟁업체인 LG생활건강에 1위 자리를 내줘야만했다. 올해는 그들에게 꽤나 중요한 해일 것이다. 용산의 새로운 시대의 막이 열린 지금, 아모레는 선대회장이 사업의 기틀을 다 잡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