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기준금리 조정에서 가장 예의주시하는 데이터는 실물지표다. 소비, 투자, 관광객, 고용 등 실물 지표를 조금 더 신경 쓴다. 물가는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실물 지표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조정에 있어 물가보다 실물 지표에 더 중점을 둔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한은이 보는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언제가 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이 오는 6월을 시작으로 연내 2회 이상 추가 인상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우리 기준금리도 최소 한 차례 이상 상향 조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4일(이하 현지시간) 제21차 아세안(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한 이 총재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 경제가 예상대로 3% 성장세를 유지하고 물가도 2% 대에 수렴하게 된다면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을 때 올려야 한다”면서 “모든 가능한 데이터를 종합해서 3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는 완화 정도를 줄여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 제21차 ‘아세안(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4일 저녁 마닐라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현재 물가는 한은의 예상대로 상반기 1%대 초중반에 머물다가 하반기를 거쳐 내년까지 2% 목표치를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 1분기 1.3%에 그치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1.6%까지 치솟아 1%대 중반을 훌쩍 넘으며 ‘서프라이즈’ 상황을 만들었다.   

한은이 제시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1.6%다.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하반기 1%대 중반을 거쳐 이후 중후반을 넘어 내년에는 2%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이 총재가 말한 ‘물가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이를 방증한다.

한은, 기준금리 인상 예고?...실물 지표 호조세 지속

이 총재가 언급한 ‘실물 지표’ 역시 순조로운 호조세를 계속하고 있다. 한은이 지난 3월 발간한 ‘2017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설비투자를 중심으로 고정투자가 호조를 보이면서 전년보다 높은 3.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소비는 정부소비가 둔화되면서 전년(3.0%)보다 소폭 하락한 2.8%로 마감했으나 고정투자는 전년(5.6%)보다 큰 폭 상승한 8.6%를 기록했다.

최근 4년간 소비와 투자는 완만한 성장세를 계속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최종소비는 전기대비로 2014년 2.0%, 2015년 2.4%, 2016년 3.0%, 지난해 2.8%로 상승 추세에 있다. 고정투자는 2014년 3.4%, 2015년 3.8%, 2016년 5.6%, 지난해 8.6%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드(THAAD) 후폭풍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크게 감소했던 관광객 수도 13개월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 3월 여행수지는 13.1% 축소되며 전년동월대비 축소 폭을 줄였다. 해외 출국자 수가 여전히 입국자 수를 웃돌고 있지만 평창올림픽 효과로 입국자 수가 늘어난 영향을 받았다. 특히 중국인 입국자 수가 2월 34만5000명에서 3월 40만3000명으로 전월비 16.8% 늘어나며 입국자 수 증가율(10.7%)은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으로 오름세로 전환했다.

소비, 투자, 관광객 등 실물 지표가 호조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물가까지 목표치를 향해 한 단계씩 올라서고 있다.

“올릴 수 있을 때는 올려야 한다”는 이 총재의 말처럼 실물 지표 호조세가 지속된다면 시장의 예상대로 오는 7월 한은도 기준금리를 상향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 진다.  특히 미국이 오는 6월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보이면서 한은도 기준금리 조정 채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실물 지표 악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투자 부문의 가파른 성장세는 반도체 수출 호황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일각에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이 내년 상반기 중에 끝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우리 경제 성장세도 꺾일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만약 서버 수요로 인해 내년 하반기까지 반도체 호황이 계속된다고 해도 그 이후 중국발 공급이 늘어날 경우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요 측면의 물가 압력이 크지 않다는 점도 변수다. 4월 물가상승률이 1.6%로 깜짝 성장하긴 했으나 이는 감자값 등 일부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결과라는 게 한은의 해석이다. 물가 쪽에서 수요 측면의 압력이 크지 않은 최근 상황은 주요 선진국 대부분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분명 경기가 괜찮아진 것으로 체감하지만 물가가 오르지 않아 기준금리 조정을 망설이는 모습이다. 따라서 이 총재가 물가보다 실물지표를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서 적어도 물가로 인해 '좌고우면' 하진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