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디자인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한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최근 오픈한 광진구의 서울용마초등학교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학교폭력 예방을 실험하고 있다. 2017년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으며 이를 겪는 학생은 전체 학생들 중 1%도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체감하는 건 달랐다. 물리적 폭력은 줄었을지 모르겠지만, 언어폭력이나 사이버 폭력 같은 심리적 폭력이 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용마초등학교의 경우 특히 뒷담화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큰 상태였다. 

뒷담화와 학교폭력

대부분의 학교폭력은 가해자-피해자 간 힘의 균형이 깨졌을 때 발생한다. 또래 간 갈등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힘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학생을 중심으로 동조자가 형성되면서 학교폭력으로 심화되는 구조다. 그러나 서울용마초등학교의 경우 힘의 균형이 비슷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가 모호했다. 갈등 당사자를 중심으로 동조자가 형성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그 안에서 학교폭력, 따돌림 등이 발생하는 구조였다. 즉 가해자의 가해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갈등 당사자들을 부추기는 동조자들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뒷담화, 편가르기 등이 학교폭력을 부추기고 있었다. 

뒷담화와 편가르기의 이유 

주도하는 이들은 뒷담화를 통해 정서적 지지를 얻고, 뒷담화 대상보다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결국 뒷담화도 다수의 동조자가 필요한 법이다. 이 동조자들은 친구와 정서적 연대감,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위해 비록 뒷담화 내용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여기에 가담한다. 특히 서울용마초등학교는 전교생 수가 1237명으로 우리나라 초등학교 평균 전교생 수 726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았다. 또한 학교 주변은 상업 시설은 발달했지만 공공공간은 부족해 지역 내에서 협력 활동과 연대를 경험하기 어려웠다. 지역 내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 보니 학생들은 학교 내 소수의 관계에 더 집착하게 되고, 외집단과 내집단을 구분하면서 소속감을 느꼈다. 따라서 아이들이 뒷담화, 편가르기 같은 부정적 방법이 아니라 긍정적 방법으로 소속감을 느끼게 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까? 교육, 프로그램도 좋지만 학교와 서울시, 지역사회, 서비스디자인 전문업체 크리베이트는 공간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제3의 공간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드버그는 <the Great Good Place>(1989)에서 잘 나가는 커뮤니티의 조건으로 제3의 공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제1의 공간은 휴식 공간인 집, 제2의 공간은 일터나 학교 같은 공간이며, 제3의 공간은 출입이 자유롭고 격식 없이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지역 커뮤니티 공간이다. 어른들의 경우 카페, 문화센터, 상점 등이 제3의 공간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편하게 머물고, 다양한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과거에는 골목길, 앞마당, 친구 집 등 모든 공간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만날 곳을 특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도서관이나 학원은 개인 활동 중심의 공간이고,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은 키즈 카페 같은 상업 공간밖에 없다.  

 

아이앰그라운드의 탄생

다행히 학교에는 방치되어 있는 학교 후문 근처 창고공간이 있었다. 이 창고공간을 재활용해 “아이앰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라는 게임에서 이름을 딴 ‘아이앰그라운드’라는 제3의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고 해서, 아이들이 방문하는 것도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방문을 유도하는 동시에, 또래 관계를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무척 바쁘다. 하교 시간도, 학원 시간도 다 다르다. 그래서 같은 시간대에 공간을 이용하지 않는 친구들과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릴레이 뜨개질, 릴레이 웹툰, 릴레이 뮤직비디오 등 릴레이 방식의 활동을 지원했다. 혼자서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뜨개질도 여럿이 함께 하면 1~2일 만에 목도리 하나쯤은 거뜬하게 뜨는 걸 체험한 아이들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졌다. 또한 아이들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모일 공간이 필요하기에, 조별 모임부터 회의, 또래 상담이 가능한 소규모 회의실을 별도로 만들었다. 그러자 서로의 재능을 알리고 배울 수 있는 재능 공유 게시판이 설치되었고, 게시판이 설치되자 학생들이 직접 선생님이 되어 수업을 만들고 진행하는 새로운 모임이 생겼다. 야외테라스는 삼삼오오 모여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휴식할 수 있는 친교 공간이 되었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학부모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이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이 공간을 찾는다. 덕분에 이곳은 한 달에 880명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보다 이 공간을 더 사랑하는 건 엄마, 아빠들이다. 학교와 집 사이, 학교와 학원 사이 그 틈을 불안해 하던 엄마들은 아이가 이곳에서 놀고 있다는 것에 안심한다. 집, 학교, 학원을 쳇바퀴처럼 도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던 부모들은 공간이 주는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https://bit.ly/2rfWeHi

 

INSIGHT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행복한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면 행복해지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행복한 장소를 만들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공간은 그런 힘이 있다. 학교와 마을을 잇는 구심이 되는 공간, 아이들 위한 제3의 공간 ‘아이엠그라운드’는 하나의 실험이다. 이러한 실험들이 전국 곳곳에서 많이 시도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