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와 금융권에선 ‘금융개혁’이 화두다. 총대는 금융감독원이 맸다. 정부는 ‘포용적 금융’을 새로운 사회적 가치로 삼고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말 그대로 금융권 문턱을 서민들을 위해 낮추겠다는 의지다. 이에 앞서 금융당국은 금융권 채용비리와 금융사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금융개혁을 추진했다. 정작 이 일을 추진해야 할 금융감독원의 수장은 공석인 채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두 명의 금융감독원장이 중도퇴진하는 것을 지켜봤다. 전임 금융감독원장들의 공통점을 들여다보면 문재인 정부의 금융개혁에 대한 의지가 보인다. 공통점은 관료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 명은 경영학과 교수와 대형 금융지주사에서 사장을 거쳤다. 다른 한 명은 시민단체와 국회의원을 거친 활동가이자 정치인이었다. 1998년 금융감독원이 출범한 후 지난 두 명의 전임자들만 유일하게 행정고시 출신이 아니었다. 관료 출신이 아니었단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SNS를 통해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는 글을 올리고 금감원장 인선 기준을 밝혔다.

과연 대통령이 제기한 근본적 개혁의 처음은 어디일까.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기자를 만나 “장(長) 자리만 바뀐다고 제대로 된 개혁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금융기관은 금감원 직원들의 미래 직장이었다. 그동안 많은 금감원 직원이 시중은행이나 금융지주사의 감사나 임원으로 재직했다. 퇴직 후 3년간 관련 기업 취업을 금지하는 취업제한 규정이 시행되고 있지만 금감원과 금융업계의 상생 관계가 완전히 타파된 것은 아니다.

금감원은 올해 출범 20년을 맞아 성년이 됐다. 그동안 우리는 저축은행비리, 채용비리 등에 연루돼 영어의 몸이 된 금감원 직원들은 봤어도 금감원이 사회에 경종이 될 만한 엄청난 금융권 비리를 적발했던 기억은 갖고 있지 못하다. 금융업계가 투명하고 깨끗해서였을까. 우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예컨대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던 농협의 부실대출 사건. 2008년 8월 캐나다 토론토의 한 건설현장에 210억원을 대출해주고 2년 만기가 지난 2010년 9월에서야 담보물건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던 사기대출건이다. 당시 농협은 대출금을 회수하지도 않았고 민·형사 소송도 제기하지 않았다. 언론 보도 후 5년이 지나서야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차주를 소송했지만 이미 회수할 수 없는 돈이 됐다. 우리은행이 2007년 중국 조선족 투자가에게 화푸빌딩인수자금으로 3800억원을 대출해주고 1300억원을 떼인 사건. 이런 사건들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이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조사했지만 결과는 항상 용두사미였다. 최근 있었던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선 관련 조사나 시중은행 채용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권의 경찰과 같은 조직이다. 이들이 맡은 감독영역은 은행뿐만이 아니다. 보험·증권·제2금융권·카드사·사채업까지 그야말로 자본시장의 기간이 되는 모든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을 감사하고 통제하는 기관은 없다. 금감원의 감독기능은 금융권에 무소불위하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이런 금감원에 수장 1명이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고 금융업계의 관행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순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금감원장은 금융개혁이 아닌 금융감독원 개혁부터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얘기했던 근본적 개혁의 시작은 아마도 금감원 개혁일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금감원은 사실상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픔도 있었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만약 낡은 고리가 있었다면 철저하게 끊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금감원 내 관행으로 통했던 봐주기식 부실 감독이 아직도 횡행한다면 금감원의 존립근거마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정부 들어 세 번째 금감원장은 내부부터 단속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는 이미 높아져 있다.

금감원이 제 기능을 수행해야 정부가 추진 중인 ‘포용적 금융’도 꽃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금감원이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금융’ 정책은 꽃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