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는 파릇파릇 생기가 돋고, 야산에는 싱그러움이 넘실대는 4월 어느 날 지인들과 필자의 고향 의성으로 여행을 갔다. 고향을 수없이 다녀왔지만 여행을 가본 적은 없다. 굳이 찾아보니 고교시절 고향 친구들과 자전거로 빙계계곡의 빙혈을 찾아갔던 기억만이 아련하다. 함께 간 지인들은 의성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의성에 가보고 싶다는 의견이 실현되는 데 2년이 걸렸다. 그만큼 서울에서 보면 의성은 멀게만 느껴지는 지역이다. 필자는 그들에게 ‘의성 하면 어떤 이미지 혹은 단어가 떠오르는지’ 물었다. 마늘, 소멸 위험지역, 컬링. 이 단어가 전부였다. 마늘은 교과서에 나올 만큼 유명하지만 재배 면적으로 보면 전국에서 세 번째이고, 소멸 위험지역은 인구 관련 뉴스에서 전국 지자체 중에서 1위다. 컬링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영미야’, 일명 ‘갈릭걸스’로 명성을 날렸다. 컬링대표팀의 선전으로 최근 급부상한 단어다. 필자는 의성 출신으로 고향 나들이가 아니라 여행지로서 의성을 소개하려니, 고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얼굴을 들기 힘들었다. 짧은 여행에서 얻은 긴 여운으로 인해 의성의 미래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어릴 적 고향 마을은 60여가구로 400여명이 함께 살던 전형적인 농촌 동네였다. 집이 있는 골목길에는 14가구에 80여명이 살았는데 이제는 50~80대의 3가구, 6명에 지나지 않는다. 소멸 위험지역이라는 표현이 실감 난다. 조문국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이곳은 조문초등학교가 있었던 곳인데, 1970년대 전체 학생 수가 690여명인 때도 있었지만 2005년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되었다고 한다. 조문국은 삼한시대 부족 국가로 신라에 복속되기는 했으나 독자적인 세력을 상당 기간 유지하는 등 이 지역을 대표했던 세력이다. 황금도시를 만들었다고는 하나 지금은 고분군과 출토된 유물만이 그 시대의 화려함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의성 여행 콘셉트를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림의 여유’로 잡으면 소우당 한옥스테이와 고운사가 제격이다. 이번 여행길에 숙박 장소로 선택한 소우당은 산운마을에 있는 한옥으로 정원이 별도로 있어서 여유롭게 산책하며 사색하기 좋았다. 정원에는 별채와 정자와 연못이 어우러져 있으며 돌담으로 둘러져 있어서 아늑했다. 사랑채 사이로 난 협문을 지나면 신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마침 노란 민들레가 정원 가득 만발해 있었다. 산운마을 주변으로는 사과나무가 많았으며 사과꽃이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하루 이틀 머물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고운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고운 최치원이 불사를 했던 유서 깊은 큰 절이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임에도 미소를 지으며 절밥을 내어 주던 보살님들의 마음이 고마워서일까 간결한 절밥이 여느 식당보다 더 맛있었다. 최치원이 세웠다는 우화루에서 느긋하게 차 한 잔의 여유를 느끼는 호사를 만끽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깊은 숲속 고즈넉한 분위기에 나그네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의성 하면 모두가 컬링을 연호한다. 이번 여행길의 지인 3명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의성으로 여행 간다고 하니 바로 컬링, 영미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난 겨울 평창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것일까? 그래서 원래 여행 계획에 없던 코스를 넣었다. 컬링의 고장에 왔으니 컬링과 영미와 은정을 모두 보고 싶어 했다. 아니 인증사진을 찍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의성에 여행 간 것을 믿지 않을 분위기라고 했다. 여행 중간에 의성읍에 있는 의성여고를 방문했다. 정문 옆에 평창올림픽에서 선전한 내용의 플래카드가 있어서 여기가 바로 컬링의 산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기념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다시 내비게이션에서 알려준 의성컬링센터를 찾아갔지만 눈에 띄는 것은 종합운동장과 체육관밖에 없었다. 주차장에서 두 번이나 물어서 찾아간 곳은 경북 컬링훈련원이었다. 드디어 영미와 은정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아닌 기대를 잔뜩 했다. 그러나 컬링훈련원 내외 어디에도 대표선수들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여기가 경북컬링훈련원이라서 그런 것일까? 대표선수들이 모두 경북컬링협회 소속일 텐데….

의성읍 내 경북컬링훈련원 경기장 ⓒ 구자룡

경기장 내에는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었고 로비에는 학부형 몇 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필자 일행은 마침 컬링장 내의 얼음이 진짜 얼음일까라는 궁금증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관리자도 없고 딱히 물어볼 데도 없는 데다 슬리퍼로 신발을 갈아 신고 들어가라고 되어 있어서(착오에 의한 오인) 무심코 경기장으로 들어가서 얼음을 만져보고 확인하는 순간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누구 허락받고 거기를 들어간 겁니까?” 경상도의 억세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나무라서 모두들 놀랐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었다. 자기가 누군지 말하지 않으니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건대 20대 후반의 선수 출신 관리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함께 경기장으로 들어갔던 지인(60대 대학교수)이 조용조용하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당장 나가요. 여기는 관공서가 아닙니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훈련원에서 쫓겨났다. 아뿔싸!!! 옥에 티였다. 이 관리자는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그것도 오전 시간에, 점잖은 아버지뻘 관광객들이 왜 여기 왔을까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설령 우리가 잘못했더라도….

의성의 컬링장과 컬링 성과는 척박하고 관광문화 자원이 별로 없는 결핍이 빚은 결과라 생각한다. 우리 지역이 고령화와 소멸 위험과 같은 약점과 위기요소가 있다. 의성의 경우에는 문화유산, 농산물 등 기존 자원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상당한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미래는 새로운 뭔가가 그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째가 컬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성여고에도, 컬링훈련원에도, 그리고 의성군청 홈페이지 그 어디에도 대표선수들의 자랑스러운 활동과 그 감격을 기념하고 싶은 안내나 시설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그곳에 영미와 은정이 실제 없어도 있는 것 같은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 인구 1만명의 도시인 스위스 다보스는 세계경제포럼(WEF) 하나로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고, 2002년에 방영된 드라마 <겨울연가> 드라마의 촬영지였던 남이섬은 아직도 주인공의 사진을 사용하여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영화 <곡성>과 같은 지역명인 곡성군은 군수가 나서서 곡성을 알렸다. 하지만 의성 어디를 다녀도 컬링이란 단어와 선수의 사진을 볼 수 없었다. 연계기획사들은 외국인 팬을 위해 홀로그램으로 가수들의 공연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금 컬링을 빼고 무엇으로 홍보할 수 있을까?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두 번째 방법은 디지털 기반으로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디지털과 초연결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바로 이 트렌드를 그 어떤 지역보다 빨리 받아들인다면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 디지털과 초연결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거의 실시간으로 사람과 사람 간에 대화를 연결한다는 것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집단이나 기관에게는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하다. 특히 디지털과 모바일로 연결된 사회에서는 제로 접점(ZMOT)이 중요하다. 첫 번째 접점 이전에 모바일이나 웹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 장소나 제품에 대해 미리 접하고 난 다음에 실제 현장에서 첫 번째 접점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고객은 의성 여행을 생각하는 순간 의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온라인을 통해 접촉하면서 인상을 가지게 된다. 이때부터 시작하여 의성을 여행하는 모든 순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를 때 고객은 모든 접점에서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이를 총체적 고객경험이라고 한다. 공무원과 유관기관 이해관계자, 그리고 주민들 모두 의성의 서비스 제공자다. 어느 한 곳에서라도 삐끗하면 고객은 불편이 생기고 이를 나쁘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 고객의 여정 관리를 리조트나 테마파크 정도로 할 수는 없겠지만, 디지털 기반의 마케팅 방법을 통해 좀 더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면 의성의 미래는 오히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성에 가야 할 의미 즉, 가치를 제안하고 고객에게 멋지고 여유로운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