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 일가의 무분별한 행동과 막나가는 언행의 ‘갑질’로 인해 한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이미 몇 년 전에 조양호 회장의 큰 딸이 마카다미아넛을 매뉴얼대로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무원에게 폭언을 하고 비행기에서 하기하게 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는데, 이번에는 막내딸이 문제를 일으켰다.

광고기획을 위해서 광고대행사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음료수병을 던지고, 그것도 모자라 해당 팀장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과 시민들은 재벌가의 안하무인에 분노했다.

조금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 여겼는지 침묵하던 한진그룹은 잇달아 터지는 내부 고발과 경찰의 수사, 국세청의 탈세 관련 압수수색까지 이어지자 조양호 회장이 나서서 용서를 구하며 두 딸은 회사 경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조 회장의 사과가 진실이라고 믿지도 않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도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는 재벌가의 행동에 더욱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온라인에 댓글 중에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면 소송을 통해서라도 피해자가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라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라도 돈 많은 사람들의 안하무인이나 제멋대로인 행동이 적절하게 제재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너무 돈이 많아서 제대로 된 사고 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어플루엔자(부유하다는 어플루언트와 바이러스 인플루엔자의 조합)’라는 신조어가 사용될 만큼, 부유층의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녀들이 세간의 주목을 수시로 받곤 했다.

사실 처음 어플루엔자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때는 풍요로워질수록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구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무력감 등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됐다.

90년대 후반 TV 다큐멘터리와 2000년 초반 출판된 책에서 사용된 이 용어는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들어보지 못한 신조어였다. 이를 영어 단어로 안착시킨 데는 지난 2013년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내고도 자유의 몸이 된 ‘이선 카우치’ 사건이 주효했다.

2013년 당시 16세이던 이선 카우치는 친구들과 마트에서 맥주를 훔쳐서 술을 마시고는 혈중 알콜 농도가 허용치의 3배가 넘는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4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를 냈다.

당시 이선 카우치의 변호인이 내세운 용어가 바로 ‘어플루엔자(부자병)’이다. 카우치가 어릴 때부터 부자로 어려움 없이 자라서 옳고 그른 것을 잘 모르는 부자병을 앓고 있으므로 처벌을 할 것이 아니라 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토당토않은 소리 같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고 카우치에게 교도소 대신 10년간의 보호관찰을 선고했다.

카우치의 부모는 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주고 할 수 있도록 해서 아이가 부자병을 앓는다며 선처를 호소해 보호관찰을 받아냈다.

재판 결과에 유가족은 물론 여론도 크게 반발했지만 이미 나온 결과를 뒤바꿀 수는 없었다.

보호관찰을 받고 조용히 집에서만 머물렀으면 괜찮았을 텐데, 카우치는 주거지에 상주해야 하고 이동할 때는 보호관찰관에게 신고해야 하는 규정을 어기고 2015년 멕시코의 휴양지로 놀러가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뒤늦게 체포, 감옥으로 보내졌다.

당시 사망사고 때문이 아니라 보호관찰 처분을 여겼기 때문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2016년부터 복역해 올해 초에 풀려났다.

10대의 나이에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던 터라 2년을 복역하고 나온 올해 갓 20살이 됐다.

또 다른 어플루엔자 사례로는 재벌 아버지와 패션모델 엄마를 둔 피터 브랜트가 술이 잔뜩 취해서 비행기를 탑승하려다가, 만취했다면서 이를 제지하는 보안요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적이 있다.

공항보안요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으니 상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됐다. 하지만 요즘 뉴욕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패션 아이콘이자 재벌집 아들인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경찰서를 나와 다음 여행 행선지를 인스타그램에 자랑스레 올렸다.

미국 사례에 비하면 한진그룹 3세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지는 사회적 비난이 가혹하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어플루엔자가 세계를 휩쓰는 신종 전염병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