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요즘 ‘갑질’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이 그것이다. 거의 매일 기업 이름을 달리 총수 일가의 갑질이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린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회의 도중 물컵을 던진 갑질로, 언니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이 대한항공 부사장 시절 항공기를 회항시킨 ‘땅콩회항’ 사건까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과 밀수·탈세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가 수행비서에게 자기가 사용하는 요강을 씻으라고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예를 들자면 더 있다. 아니 입이 아플 정도로 많다. 수면 위로, 세상에 드러난 것만 이 정도다. 드러난 예를 찬찬히 보면 소득 3만달러를 앞둔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란 자평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약자에 대한 배려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어렵다. 극소수 양반이 다수 백성을 천하게 여기고 끊임없이 수탈하고 착취하는 경제구조를 고착화시킨 탓에 자멸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이 되살아난 느낌을 받는다.

갑질이 뭔가? 사전을 찾아보면 갑질이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강자인 갑이 약자인 을에게 일삼는 무례한 말과 행위 등을 다 포함하는 게 갑질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잊을 만하면 발생한다. 그 때마다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갑질이 대기업 총수와 그 일가만 하는 짓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소기업체 사주가 제왕처럼 구는 것이나 소규모 유통업체 고객이 점주들을 윽박지르는 것도 갑질의 한 면이다. 사업장 크기와 상관없이 사주가 직원들에게 하는 갑질은 수도 없이 많다. 갑질은 우리 사회에서 넓고 깊이 뿌리박혀 있다고 보는 게 온당하다. 일부 대기업 오너만 갑질을 한다고 보고 그들만 욕한다면 그야말로 단견이다.

오너 일가의 갑질은 그 일가의 일탈에만 그치지 않고 그들이 소수 지분으로 지배하고 있는 기업을 골병들게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들의 갑질로 수많은 근로자들이 일하는 기업이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매출이 줄어들며 시가총액 수천억원이 하루아침에 날아가는 등 근로자와 주주 모두 손해를 본다.

그렇기에 갑질을 근절하는 것은 기업과 주주, 국민들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럼 어떻게 해서 갑질을 뿌리 뽑을 수 있을까? 답은 어쩌면 지극히 간단하다.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늘 고민하고 자제한 독일 강철기업 크룹의 경영자들처럼 하면 된다.

그런데 돈과 권력을 가진 인간 치고 오만불손하지 않는 이를 찾기 힘들 듯, 크룹 가문의 경영자들은 예외일 수 있다. 오만함과 불손함은 자제와 배려를 가볍게 이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에 젖은 한국의 배금주의 풍토에서 자라난 그들의 눈과 귀에는 자제와 배려라는 단어는 잘 들어오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갑질이 횡행하는 근인을 파고들면 인성교육을 하지 않는 이 나라 교육제도의 실패가 있고, 더 파고들면 가정교육의 부재, 그리고 더 파고들면 개인의 정신수양 실종이 독사처럼 도사리고 있다.

각성과 자제의 견제를 받지 않으니 오너 일가의 갑질은 언제든지 고개를 들 수 있다. 그런 만큼 그것을 제도로써 막는 수밖에 없다. 갑질로 기업가치가 하락하면 회사 임직원뿐만 아니라 그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손해를 입는 만큼, 경영일선에서 일시 물러나는 땜질식 처방만으로는 곤란하다. 이들은 건망증 심한 한국인들의 기억력을 악용해 얼마 뒤 보란 듯이 복귀하고 또 갑질을 저지르고, 우리 사회는 그때마다 또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에 참여하는 대기업 2세, 3세 등은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갑질이 습관화되고 구성원에 대한 배려 없이 구성원을 도구로만 여기고 착취하는 총수와 사주 일가, 창업주 후예를 걸러내는 사회 전체의 감시와 장치가 필요하다. 기업 사주 일가가 스스로 답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