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최근 가상통화 시장은 완연한 ‘봄’을 맞이했다. 4월 들어 비트코인을 포함한 주요 가상통화 가격이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며 가상통화 시장에 투자 심리가 살아나고 있어서다. 12일 현재 비트코인은 최근 일주일 새 500달러 가까이 오른 820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마냥 웃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상통화 채굴(mining) 시장은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지만 여전히 비트코인 가격은 채굴원가인 8600달러 수준을 밑돌고 있다. 채굴원가는 올 들어 꾸준한 오름세를 나타냈고 지난 한달 새 약 600달러나 폭등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트코인 거래가격이 채굴 원가를 하회하면서 중소 채굴업자들은 시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소수의 대형 채굴업체들만이 남게 된다면 향후 이들이 가상통화 시장을 ‘조작’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 20일 가상통화 정보업체 코인힐스에서 비트코인을 포함한 주요 가상통화 시세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출처=코인힐스

이날 가상통화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오후 2시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8271.24달러(약 917만원)로 전일(24시간 전)대비 1.04% 올랐다. 지난 13일 7807달러에서 일주일만에 500달러 가까이 가격이 오른 것이다. 이더리움(560달러), 리플(0.817달러), 비트코인캐시(947달러), 라이트코인(143달러) 등 주요 가상통화 가격도 일제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의 가격 상승세는 글로벌 증시 혼조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시리아 사태 등 국지적 변동성이 커지면서 주식 시장 대신 가상통화 시장으로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미국 소비세 납세 기한이 끝나면서 세금 납부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투자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덴마크 투자은행 삭소뱅크는 이날 가상통화 시장 강세 보고서를 발표했다. 삭소뱅크는 “주식 시장에 변동성이 커지는 경우 금융 제도권 밖에 있는 자산으로 투자금이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가상통화에 대한 잠재적인 자본 유입이 늘어나 대부분 가상통화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기관 투자자들의 비트코인 투자가 늘고 있다는 점도 2분기 가격 상승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비트코인 채굴원가 ‘8600달러’…한 달 만에 채굴비용 600달러 급등

가상통화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지만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만달러 턱 밑까지 치솟은 비트코인은 올해 들어 벌써 4개월째 1만달러를 밑돌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가상통화 채굴시장 역시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채굴원가를 8000~8600달러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현재 시가는 원가를 하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CNBC방송에 따르면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찰리 챈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 채굴원가를 8600달러 수준으로 분석했다. 현재의 8200달러선에서는 채굴을 하면 오히려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는 대규모 채굴업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킬로와트당 0.03달러의 가장 낮은 전기요금을 적용해 산정한 것으로, 중소 채굴업자들의 채굴원가는 1만200달러대로 손실은 더 커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트코인 값이 원가를 하회하면서 중소 채굴업자들은 시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소수의 대형 채굴업체들만이 남게 된다면 향후 이들이 가상통화 시장을 ‘조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비트코인 채굴로 이익을 내려면 최소 9000달러에서 1만달러 이상으로 가격이 뛰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중형 채굴업체인 비코즈(Bcause)의 톰 플랙 창업자는 “비트코인 가격이 최소 9000달러에서 1만달러 선을 유지해야 채굴 수익이 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지난달 펀드스트랫 글로벌의 톰 리 연구원은 자체 분석을 통해 비트코인 1개의 채굴원가를 8038달러 수준으로 추산했다. 그는 킬로와트당 0.06달러의 전기요금을 기준으로 채굴원가를 계산했다. 찰리 챈의 경우 이보다 더 낮은 0.03달러를 적용했음에도 채굴원가는 불과 한 달만에 600달러 가까이 치솟았다. 그만큼 채굴 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채굴시장 양극화도 심각…대형업체 10곳 중 5곳도 살아남기 힘들어

원가를 밑도는 채굴시장에서 시장 양극화도 심각해지고 있다. 중소 채굴업체들은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장을 떠나는 가운데 세계최대 채굴업체인 비트마인(Bitmain) 등 일부 대형 채굴업체들의 파이는 더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명 벤처 캐피탈리스트이자 북미 최대 채굴업체인 헛8(Hut 8)의 빌 타이 이사회 의장은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전세계 대형 채굴업체 10곳 중 5곳만이 수익을 내고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과 올해는 완전히 다르다. 가상통화 채굴 산업은 올해 큰 변곡점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헛8은 지난달 22일 세계 최대 가상통화 채굴장비 제조업체인 비트퓨리(Bitfury)의 투자를 받아 캐나다 알버타 주에 설립됐다. 지난해 12월 비트코인 가격이 1만9000달러대까지 치솟았을 때 이들은 공급보다 훨씬 많은 수요를 기반으로 19억달러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면서 헛8은 운영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채굴한 비트코인을 시장에 헐값에 내다팔아야 했다. 헛8을 포함한 대부분의 채굴업자들이 다량의 채굴 코인을 시장에 쏟아내면서 가상통화 가격 역시 동반 하락했다고 빌 타이는 지적했다.

이처럼 채굴시장이 양극화될 경우 소수의 대형채굴업체들에 의해 시장이 ‘조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소수가 시장을 독점할 경우 비트코인의 취약성으로 불리는 ‘51%의 공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51%의 공격이란 비트코인 전체 채굴량의 50% 이상을 보유한 채굴자가 전체 네트워크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조작과 해킹을 막기 위한 비트코인 시스템이 오히려 과반수를 넘는 시장 점유자가 나타났을 때 오히려 허점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뉴욕 디지털에셋리서치의 루카스 너치 연구원은 “이미 소수의 대형 채굴업체들은 전체 채굴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이는 보안의 관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하나의 업체가 50% 이상의 채굴능력을 보유하게 될 경우 네트워크를 파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