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인공지능(AI)이라고 하면 기술 발전이 이끈 뭔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한 변화들의 형상이 먼저 떠오른다. 이를테면 영화 <터미네이터>의 인공지능 살인병기나 <아이언맨>의 인공지능 집사 ‘자비스’, <HER>의 음성 인공지능 연인(戀人) 등이 있다. 현단계의 AI 기술은 거대 담론 속에 갇혀있지 않고 더 넓고 소소한 범주까지 침투해 우리의 실생활에 작은 변화들을 일으키고 있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생활과 직결된 소비 영역에서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의사결정을 돕다

소비 영역으로 파고든 AI 기술은 제품 생산, 마케팅, 유통의 의사결정에 도입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데이터 분석력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경영자의 직관에 의존하는 전통적 경영 방식을 대체하고 있다. 소비 영역 인공지능의 성과는 정확하고 희소성 있는 데이터들을 확보해 가장 효율적인 활용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에 각 소비재 제조·유통 기업들은 각 산업별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수익 모델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 AI를 활용해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만든 롯데제과 빼빼로 제품. 출처= 롯데제과

지난해 식품기업 롯데제과는 AI 소비자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반영해 신제품을 만들었다. 롯데제과는 글로벌 IT기업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Watson)을 이용해 약 8만개 인터넷 사이트와 식품 관련 사이트의 약 1000만개 게시물들을 분석해 소비자 식품 선호도 정보를 수집했다. 수집된 데이터는 식품, 과자, 초콜릿 등 제품별로 현재 소비자들이 좋아하거나 인기를 끌 가능성이 높은 소재와 맛을 도출해냈다. 일련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제품 개발에 착수한 롯데제과는 신제품 과자 ‘빼빼로 카카오닙스’와 ‘빼빼로 깔라만시 상큼요거트’를 선보였다.

AI는 제조가 아닌 유통업계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신세계백화점은 인공지능 ‘S마인드’로 고객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선호하는 브랜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쇼핑정보와 세일정보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전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고객들의 구매 패턴, 선호브랜드, 구매 금액 등을 분석해 고객에게 제품을 추천하는 AI ‘로사’를 운영하고 있다.

▲ 한국암웨이가 도입한 인공지능(AI) 로봇 '드리미'. 출처= 한국암웨이

네트워크 판매 마케팅 업체 암웨이는 4월 5일 업계 최초로 AI 기술이 탑재된 고객 응대 로봇 ‘드리미’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암웨이의 드리미에는 SK C&C의 왓슨 기반 인공지능 솔루션 ‘에이브릴(Aibril)’이 적용됐다. 드리미는 암웨이의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을 안내하고 제품 소개하거나 인기 제품들을 추천해 준다.

AI는 물류업계의 업무 효율화도 이끌고 있다. 물류 기업 CJ대한통운은 상품의 목적지인 배송지의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효율적으로 상품을 분류하는 방법을 도출하는 업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CJ대한통운은 국내 택배업계 최초로 학습형 인공지능 챗봇(Chatbot·사용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나 연관 정보를 찾아 제공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했다. 이 챗봇은 택배 예약, 배송일정 확인, 반품예약과 같은 기본 문의부터 택배요금 문의, 안전 포장방법, 특정지역 택배배송 가능여부 등과 관련된 고객들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

삼성의 물류 계열사 삼성SDS는 물류센터에 적재된 상품들의 혼잡도를 분석해 트럭이나 컨테이너에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상품을 적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에 AI를 활용한다.

AI는 소비자들의 건강과 관련 있는 헬스케어 산업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AI 전문기업 셀바스 AI가 만든 AI ‘셀비체크업’은 특정 대상자가 앞으로 걸릴 수 있는 성인병을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건강보험을 보유한 약 51만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혈관, 당뇨, 6대 암(폐암·간암·위암·대장암·전립선암·유방암), 치매 등 성인병 발병확률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소비 영역에 들어온 AI는 마케팅·여행 등 광범위한 소비 영역에 가장 빠른 의사결정 방법을 제안하면서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효율 경영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100점 만점에 73점, 우리는 갈 길이 멀다

연구 보고서 <우리 기업의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2018)을 작성한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심혜정 연구원은 <이코노믹리뷰> 전화 인터뷰에서 “소비영역까지 들어온 우리나라의 인공지능은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 진입해 일부 대기업, IT 기업을 필두로 연구와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이 적용되는 사업 분야가 한정돼 있으나 이는 점차 다른 사업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현상을 진단했다.

심혜정 연구원은 “그러나 국내 인공지능 산업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경향이 강하며 주요 선진국 대비 기술 정도나 시장규모가 미흡한 수준”이라면서 “우리 인공지능 기술 수준 점수는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점으로 놓은 기준에서 73.9점에 불과해 지금은 장기 관점으로 기술 수준 향상을 위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심 연구원은 “특히 우리나라의 소비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을 사업에 활용하기 위한 기반 데이터 축적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따라서 우리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생산 공정의 효율화, 특화 서비스 제공 등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기업 가치를 극대화를 추구해야 하고 이를 위해 차별화된 데이터가 축적된 분야, 미국·중국 등 경쟁국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분야,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들 중 우리에게 적용 가능한 분야를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