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ACTAL, diameter 93㎝ Oil and Acrylic on Canvas, 2018


“관음(觀音) 가람의

용마루를 내다보았네

벚꽃구름”

<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松尾芭蕉の俳句), 유옥희 옮김, 민음사 刊>

이전의 작품표면은 도자(陶磁)처럼 매끄러운 느낌이었다. ‘몰입-도공의 날개’시리즈인데 겹겹이 쌓인 물감을 갈아내고 깨지거나 깨트린 틈새로 물감을 침투시켜 다시 갈아낸 ‘크랙 상감’기법이었다. 이를 위해 작가는 고풍스럽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 것을 찾는데 집중했다. 왕실이나 고위관직들이 썼던 문양을 다루게 된 배경이다.

그 과정에서 발견해 낸 것이 조선 찻사발 이도다완(井戶茶碗)의 굽이다. ‘가이라기'라고도 부르는 하단부분 오돌토돌한 결정의 매화피(梅花皮)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굉장히 서민적이지만 간결한 형태와 깊은 기품이 있고 현대적이다.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는 그것이 진짜 한국적인 것”이라며 감흥순간을 전했다.

“이후 화산이 폭발할 때 사방으로 튀어나오는 마그마를 다 끄집어 토해 낸 마지막 드러난 공간 그 빈 곳에 다시 들어가는 ‘무엇’을 상상하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원천의 중앙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잔해와 그 무엇들은 불규칙하지만 무구한 세월이 흘러 다시 흙이 쌓이고 빗물이 호수가 되고 강이 되는 태초의 맥(脈)과 연결 짓게 된 것이다.

둥근형태의 캔버스도 이러한 상상력에서 비롯됐다. 그때부터 캔버스의 두께부분을 굽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출렁이는 듯 한 마티에르가 테두리에서 중심부로 그리고 근작에는 화면전체를 아우르며 어떤 강력한 우주에너지의 흐름으로 밀려든다. 웅대한 산맥이나 해협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멀리서 보면 조력자, 지휘자처럼 어떤 한 형태를 이루는 이것이 ‘프랙탈(FRACTAL)’시리즈로 탄생한 것이다.

▲ diameter 69㎝(each), Acrylic on Canvas, 2018

◇금, 구리, 은빛라인 연결고리

나뭇잎은 나무전체를 뒤덮는다. 일정한 길이의 비(比)가 될 때마다 두 개의 가지로 갈라진다는 규칙. 이것만으로도 모든 방향으로 뻗은 나뭇가지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이 프랙탈 구조다.

인간 역시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써 이러한 우주관점에서 묘사적 접근이 가능한데 화면 밑바탕에는 얽혀져 있는 인간관계의 연결고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희끗희끗 밝게 빛나는 금, 구리, 은빛으로 간간히 보이는 라인은 나와 너의 뿌리칠 수 없는 인연의 이치처럼 드러나 있다.

이처럼 상감청자의 정교한 문양을 운용한 ‘크랙 상감’과 찻사발 굽을 작품에 융합시킨 회화적 발상의 전환이 프랙탈 시리즈다. 동시에 매화피에서 출발한 영감이 인간 역시 우주의 한 결정체라는 조형적 승화로 획득해 낸 창의적 결실과 다름 아니다.

▲ Simulacre, 48×48㎝ Acrylic on Canvas, 2018

문수만(ARTIST MOON SOO MAN,ムンスマン作家, 文水萬)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발부리에 밟히는 이름 모를 잡초뿌리도 존재이유가 있듯 만물의 섭리를 깨닫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지 않는가. 무질서하게 엉켜있지만 하나하나 다 연결되어 있는 망(網)처럼 나의 작업은 매듭지어진 것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산다는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다. 내가 인간적으로 다가서기 위한 업보의 여정으로 여기며 얽혀진 문제들을 선하게 풀어 가면서 나 역시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