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터미네이터>에는 스카이넷이라는 악당이 등장한다. 스카이넷은 사람이 아니다. 작중에서 스카이넷은 IT기업인 사이버다인시스템스가 만든 인공지능이며, 군사방위를 목적으로 개발된 최첨단 무기체계로 묘사된다. 스카이넷은 자신의 기능을 정지시키려는 인류를 위협대상으로 간주하고 세계 방어 시스템을 마비시킨 후 핵미사일을 발사, 종말의 시대를 연다. 국내 최고의 두뇌집단 카이스트와 한화그룹 방산계열사인 한화시스템이 인공지능 무기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후, 세계 29개국 57명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뜨겁다.

▲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은 인류를 종말로 이끈다. 출처=갈무리

카이스트 휘감은 인공지능 무기 공포

카이스트는 지난 2월 국내 방산업체인 한화시스템과 협력해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무기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국방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위해 체결했던 양해각서의 후속조치며 국방 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를 설립하는 것이 골자다.

센터는 인공지능 기반의 군 지휘결심지원체계 구축과 대형급 무인 잠수정 복합항법 알고리즘 개발, 인공지능 기반 항공기 훈련 시스템과 지능형 물체 추적, 인식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장시권 한화시스템 대표이사는 “카이스트와 긴밀하게 협력해 기존의 무기체계에 인공지능 기술을 융합한 솔루션을 고객에게 제공할 것"이라면서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갖추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카이스트와 한화시스템이 인공지능 무기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결정한 후, 세계 29개국 57명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토비 월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교수를 대표로 하는 57명의 연구자 그룹은 5일 성명을 내고 카이스트가 자율무기와 살인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카이스트가 인공지능 기반의 무기 시스템을 개발한다고 결정한 사실이 우려스럽다면서 카이스트가 인간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무기 개발에 나서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때까지 모든 협력을 거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카이스트는 "오해가 있다"면서 "인간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인공지능 무기 개발에 나서는 것이 아니며, 인간 존엄성에 어긋나는 연구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총장 명의 성명서를 배포했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국방 프로그램을 연구할 뿐, 공격로봇을 개발하고 살상용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 현재 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군용 로봇. 출처=픽사베이

인공지능과 무기, 어디까지 왔나

초연결 시대가 열리며 인공지능 기술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아직 '강' 인공지능이 아닌 '약' 인공지능의 초입에 막 들어서는 단계지만 인공지능 특유의 냉정하고 효율적인 체계는 무기 시스템에도 속속 도입되는 취지다.

드론은 대표적인 예다. 원래 드론은 레저나 촬영이 아닌, 무기로 개발된 기기며 지금도 전 세계의 전쟁터를 누비며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의 2인자인 알 하얄리, IS 대변인 알 아드니니 모두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사망했으며 저렴한 금액으로 만들수 있으면서도 인적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강의 무기로 자리매김했다.

드론에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더해지며 파괴력은 배가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2016년 10월 소형 퍼딕스 드론 103대가 파일럿의 조종이 없이 장애지역을 돌파, 진형을 짜 목표물을 공습하는 장면을 공개한 바 있다. 올해 초 성황리에 폐막한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개회식과 폐막식을 장식했던 인텔의 슈팅스타 드론을 연상하면 된다. 수백대의 드론이 파일럿의 조종이 없어도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빈틈없는 진형을 짤 수 있다는 것은, 전장의 국면이 완전히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현재 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공격용 드론. 출처=픽사베이

인공지능 미사일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최근 미 해군은 장거리 대함 미사일에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러시아도 비슷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최악의 경우 인공지능과 핵탄두의 결합 가능성도 제기된다.

심지어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발하고 있는 군사용 로봇 '이트르(Eatr)'는 스스로 주변 자연을 자원으로 활용할며 작전을 수행하는 로봇이다. 만약 유기물 전체를 자원으로 활용하게 된다면 전장의 시신까지 '먹어치우며'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아이로봇이 개발한 마르스는 카메라가 장착된 긴 팔로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팩봇의 진화형으로, 전자동 기관총으로 무장했다.

구글도 인공지능 기반 무기 시스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프로젝트 메이븐이다. 미 국방부 펜타곤과 함께 연구하고 있는 프로젝트 메이븐은 인공지능이 외부환경을 인지, 신속하게 자료를 제공해 정밀타격을 지원하는 개념이다. 사람의 얼굴이나 주변 패턴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를 향한 공격에 특화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프로젝트 메이븐에 대한 구글 내부의 반감은 상당한 편이다. 5일 구글 내부직원 3100명은 선다 피차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서한을 보내 "구글이 전쟁사업을 할 수 없다"면서 "프로젝트 메이븐을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프로젝트 메이븐이 무기가 아닌 지형탐지 기술에 불과하다는 구글과 펜타곤의 해명이 나오고 있지만, 구글 내부직원들은 우리를 믿는 이용자들을 위해서라도 프로젝트 메이븐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글의 자회사에서 소프트뱅크로 인수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와일드캣도 눈길을 끈다. 실제 기능은 기대보다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지만, 와일드캣은 전장에서 군수품을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다. 빅도그는 시속 10Km의 속도로 35도 경사면을 오르거나 인간이 진입하기 어려운 진흙길 등을 빠르게 주파할 수 있는 수송로봇이다.

▲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빅독이 걷고 있다. 출처=위키디피아

인공지능 무기의 빛과 그림자

국방부는 2일 병력 감소와 미래 전장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무기체계 지능화는 물론 첨단기술을 활용한 훈련체계 고도화, 나아가 스마트한 병영환경 조성 등을 위해 ICT 기술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능형 ICT 감시정찰 시스템을 도입하는 한편 드론봇 전투실험 계획도 공개했다. 연내 초소형 감청드론과 자폭드론 등 핵심 군용 개발 드론 목록을 확정하고 2030년까지 육군에 드론봇 무기체계와 전투를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국내의 경우 세계 유일 분단국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군의 규모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다만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 감소 등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ICT 기술, 특히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군 전력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 미사일이 하늘을 나는 시대, 소총을 쥔 병사들은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도 깔렸다.

다만 인공지능이 무기 분야에서 획기적인 기술발전을 끌어낼 수 있어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주도하는 전장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인간성'도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충돌하는 두 진영 모두 인공지능이 대리전을 치른다면 모를까, 최근 분위기는 인공지능 로봇 등으로 무장한 쪽이 그렇지 못한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학살할 확률이 높다.

인공지능 로봇이 전장을 주도하면 해킹 등의 이유로 악용 가능성도 제기된다. 나아가 인공지능이 대리전을 치르는 사례가 빈번해지면 인명의 무게를 경시하는 세태가 만연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 회의에 참석한 아만디프 길 군축대사는 "인공지능 무기를 단칼에 금지하는 것이 가장 쉽지만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라면서 "시간을 끌더라도 확실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