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부회장의 외부행보가 시작되며 삼성전자가 움직이고 있다.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 증설 기공식과 프랑스 파리에 인공지능 센터를 개소한다는 소식이 잇따라 알려졌다. 대형 인수합병 가능성이 제기되고  삼성전자가 드론과 같은 신기술 특허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장면도 연출된다. 삼성전자의 경영 시계가 빨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조용한 창립 80주년, 출국한 이재용 부회장

삼성은 지난 22일 창립 80주년을 맞아 특별한 행사없이 조용한 기념일을 맞이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에서 오전 9시 전후로 ‘다이나믹 삼성 80, 새로운 미래를 열다’라는 7분 가량의 영상을 방영했으며 영상에는 삼성이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이 요란한 기념식대신 택한 것은 사회공헌이다. 창립 80주년인 22일을 기점으로 3월 한 달 집중적인 봉사활동을 벌였다. 삼성전자는 24일 주몽재활원 장애어린이들과 함께 서울 상일동 ‘태권V 박물관’을 관람하고 장애인들에게 스킨스쿠버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수원 원천천에서 환경정화활동을 벌이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23개 삼성 계열사 임직원들도 복지시설 봉사, 교육기부, 농어촌 자매마을 지원, 지역환경 개선 등 자원봉사 활동에 동참했다.

삼성이 창립 80주년을 맞아 조용한 기념일을 보내며 봉사활동에 매진하던 22일, 이재용 부회장은 유럽으로 떠났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지난달 23일 이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23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첫 대외행보로 유럽을 택한셈이다.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지난 2016년 9월 인도로 날아가 모디 총리와 만난 것이 마지막이다.

직후 프랑스 파리에서 삼성전자가 인공지능 연구개발 센터를 만든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주요외신은 28일(현지시각) 삼성전자 최고전략책임자(CSO)인 손영권 사장이 현지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 파리 삼성전자 연구개발 센터 설립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파리에 15명 수준의 인공지능 연구개발팀을 운용하고 있다. 이를 연말까지 50명까지 늘리고 추후 100명까지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프랑스 파리 인공지능 연구개발 센터 설립에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오슈아 벤지오 교수팀과 협업해 인공지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삼성리서치아메리카를 중심으로 1000명의 연구원들을 인공지능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인도에는 2005년부터 3000명 이상의 연구개발 인력이 상주하고 있다. 서울 우면동의 삼성 서울 연구개발 센터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전략의 큰 틀을 짜면서 글로벌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통합 삼성리서치센터를 출범시키고 산하에 인공지능 센터를 신설했으며 올해 초에는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 인공지능 전문가 래리 헥 박사를 영입했다. 래리 헥 박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 구글 어시스턴트의 연구 개발을 주도한 인공지능 전문가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 전략을 짜며 유럽 거점으로 프랑스를 택한 지점도 눈길을 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구글과 애플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날을 세우며 유럽 ICT 플랫폼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그 중심에 프랑스가 있다. 유럽 문화권력의 정점인 프랑스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공세를 막아내는 한편, 스타트업부터 대형 ICT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중이다. 실리콘밸리와 힘겨운 전투를 전개하는 프랑스에게 삼성전자는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2015년 11월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디지털경제 장관 자격으로 방한한 플뢰르 펠르랭씨가 장관에서 물러난 후 2016년 9월 네이버와 함께 Korelya Capital(코렐리아 캐피탈)의 유럽 투자 펀드 ‘K-펀드 1’을 조성한 이유와 비슷하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시장을 노리며 유럽 인공지능 허브로 프랑스를 낙점한 것은 표면적인 이유보다 다양한 포석이 깔렸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는 최근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전략, 그리고 인수합병 현황과도 관련이 있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주도로 2014년 스마트싱스와 미국의 공조회사 콰이어드사이드, 서버용 SSD 소프트업체인 프록시멀데이터를 인수했고 이후 심프레스, 루프페이, 조이언트, 비브랩스, 하만 등을 연이어 품었다. 강력한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 장악력을 키우는 한편 글로벌 전략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된 후 굵직굵직한 인수합병은 거짓말처럼 끊겼다. 특히 인공지능 관련 인수합병 성적이 초라하다. 올해 국내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 스타트업인 플런티와 그리스의 이노틱스를 인수했으나 비브랩스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인수합병 전략을 통해 삼성전자의 미래를 그렸고, 최근 인공지능과 관련된 인수합병 성적이 낮기 때문에 이번 유럽 출장을 계기로 대형 인공지능 기업이나 연구소를 확보하려는 행보가 유력한 것으로 본다. 이 부회장이 피아트 크라이슬러 지주회사 엑소르 그룹 이사회의 사외이사였고 하만을 인수했으며 전장사업팀을 꾸렸기 때문에 '자동차'와 관련된 깜짝 인수합병 발표 가능성도 살아있다.

삼성의 날카로운 존재감

이 부회장의 글로벌 행보가 시작되며 삼성전자의 존재감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8일 중국 산시성(陕西省) 시안시(西安市)에서 후허핑(胡和平) 산시성 성위서기, 먀오웨이(苗圩) 공신부 부장, 류궈중(刘国中) 산시성 성장,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 이강국 주시안 총영사, 삼성전자 대표이사 김기남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삼성 중국 반도체 메모리 제2라인 기공식’을 열었다. 지난해 정부가 기술유출 등을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으나 삼성전자가 중국 반도체 시장 공략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얻어낸 결실이다.

향후 70억달러의 투자가 예정된 2라인 기공식은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최대 수요처이자 글로벌 모바일, IT업체들의 생산기지가 집중되어 있는 중국시장에서 제조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중국 시장 요구에 보다 원활히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시성 성장 류궈중(刘国中)은 축사를 통해 "삼성 프로젝트 2기 착공을 축하한다"면서  "산시성은 앞으로도 삼성과 그 협력사들의 발전을 지원하며 협력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지난해 도시바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각 기업의 열정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전략은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다. 세계 최대 반도체 라인인 경기도 평택 라인도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초기술 격차로 경쟁자들을 압도하겠다는 계획이다.

▲ 삼성전자가 특허를 받은 드론 설계도. 출처=미국 특허청

ICT 기술 전반에 대한 경쟁력 강화도 벌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3일과 27일 미국 특허청(USPTO)으로부터 드론과 관련된 특허 2건을 연이어 받았다. 4개의 날개를 가진 드론은 눈동자나 얼굴만으로 통제할 수 있다. 취미용 드론이 대부분 컨트롤러로 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성의 드론은 기본적인 인터페이스 자체가 다른 셈이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데이코는 22일부터 미국 뉴욕 맨하튼 '피어92 & 94 (Pier 92&94)' 전시 센터에서 열리는 ‘ADDS 2018(Architectural Digest Design Show 2018)’에 참가해 프리미엄 가전 라인업을 공개했고 삼성전자와 이화여대 연구진은 OLED 청색 소자의 수명저하 이유를 최초로 증명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디스플레이 시장의 95% 이상을 장악하며 최장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부회장의 역점사업인 바이오도 비상하는 중이다. 30일 주가가 다소 주춤하고 있으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 1년4개월 만에 현대자동차를 누르고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4위에 오르기도 했다.

▲ 데이코가 선보인 가전 빌트인 라인업. 출처=삼성전자

재계는 현재 이 부회장의 완전 경영복귀는 다소 늦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스타트업 삼성 선포에 이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은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로 부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럽에 이어 북미로 떠날 이 부회장의 행보와 삼성전자의 움직임이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