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산업국장] ‘철’ 때문에 말이 많다. 미국은 중국산을 비롯한 저가 철강제품의 범람으로 미국 업체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 때문에 중국에 거액의 추가 관세를 물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한국은 관세부과 대상 면제국에 들어갔지만 국내 업체들은 바싹 긴장하고 있다. 면제국이 됐다고 해서 문제의 근인이 해결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철강시장은 연간 10억t 이상 공급 과잉인 데다 후발국들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빠른 속도로 우리 기업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탓이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언젠가는 내줘야 하는 시장에 철강제품을 팔아 밥벌이를 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비단 철강 제품 시장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업종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제품에서 우리나라와 경합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주력 먹을거리인 반도체와 휴대폰, 조선, 철강 등에서 간격을 거의 한 치 정도 뒤에서 추격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을 제쳤다고 선언할 날도 머지않은 것으로 감히 짐작한다. 범용 전자 제품은 중국이 전 세계를 제패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국내 전자제품 시장에서 웬만한 것은 중국산이다. 자동차와 조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컨테이너선은 중국이 대량으로 찍어낸다. 우리 업체들은 갈 곳을 잃었다. 열연강판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중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원천 기술이 없다면 원천 기술을 가진 기업을 사버린다. 우리 기업이 제품을 만들려고 하면 중국에 로열티를 줘야 하는 지경이다.

이러니 ‘가까운 장래에 한국이 설 자리는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더욱더 증폭된다. 아니 공포로 다가온다. 농산물에서 시작해서 최첨단 항공기까지 중국산이 아닌 게 무엇이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 세대야 근면성실한 부모세대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에 안온한 삶을 살았지만 우리 자식 세대는 그런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자책이 앞선다. 그렇다고 포기는 있을 수 없다. 분발하고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변화의 맹아는 이미 기업에서 싹이 자라고 있다.

열연강판과 강관 등 범용 제품이 범람으로 갈 곳을 잃자 포스코는 고급강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기존의 철에 비해 단단하면서 잘 늘어나는 고장력강을 개발해 자동차에 적용하고 있는 것은 좋은 예다. 더 좋은 예는 액화천연가스용 고급강일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 세계는 석탄소비를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을 늘리고 있다. 특히 중국은 LNG 전환 정책에 따라 전 세계에서 LNG를 싹쓸이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스파이프로 공급받기도 하지만 선박으로 실어나르기도 한다.

LNG는 섭씨 마이너스 160도 아래의 극저온 상태로 배로 싣고 온 다음 기화해 가정과 공장, 발전소 등에 공급한다. LNG를 극저온 상태로 운반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걸맞은 철이 개발돼야 한다. 바로 망간강이다. 철에다 망간과 알루미늄을 합금해 냉온에 대한 저항이 높은 고급 강을 만든 것이다. 포스코는 이미 이 강을 개발했고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LNG 선박에 적용해 국산화했다. 중국의 기술력은 우리나라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또 전 세계에서 속속 등장하는 초고층 빌딩에 설치되는 고속엘리베이터용 고강도 와이어도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태양광 발전소의 태양전지를 붙이는 패널을 지지하는 판재나 철골 소재도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다. 최근 만난 재계 관계자는 3사가 제살 깎아먹기를 하는 조선업은 고급선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론은 간명하다. 범용 제품의 범람으로 레드오션이 바뀐 시장에서 탈출해서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고품질의 신소재, 신제품으로 과거에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 않고서는 한국 기업, 한국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블루오션은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력하는 자, 노력하는 기업에만 보일 뿐이다. 고산준령의 나무가 울창한 숲에 뿌리를 내리는 산삼과도 같다. 온갖 정성을 다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덤벼야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한 존재다. 이런 존재를 발굴하면 경쟁사, 경쟁국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 경쟁을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기업가 정신, 도전정신, 사즉생의 각오는 우리 기업의 DNA 아닌가. 기업이여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