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44년만의 연임 총재’ 타이틀의 무게만큼 이 총재 후보자의 정책검증을 위한 질문이 줄을 잇고 있다. 이 후보자의 지난 4년을 돌아보면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금리 인하로 가계부채 증가세를 막지 못 했다는 지적과 함께 국내외 경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미래지향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한은에 따르면 이날까지 한은에 들어온 청문회 관련 요구질의는 모두 1130여건으로 이중 정책관련 질의가 970여건(86%)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후보자 개인 신상과 관련한 질의는 160여건(14%)에 불과했다. 지난 2014년 첫 번째 청문회와 비교하면 신상 관련 질문이 크게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총 694건의 질의 중에서 292건(42%)의 신상 관련 질의를 받았다. 정책관련 질의는 절반을 약간 넘는 402건(58%) 정도였다.

이번이 이 후보자의 두 번째 청문회인만큼 신상보다는 향후 정책 관련 질의에 의원들의 시선이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 후보자는 2014년 청문회에서 개인 신변과 관련해 거의 논란이 없었다. 개인 재산과 자녀의 병역 면제 등이 거론될 수 있겠으나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을거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주열 후보자 두 번째 청문회, 관전 포인트는

이번 청문회에서는 국내외 산적한 경제 현안을 점검하는 질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세이프가드 조치와 관세 부과 등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미국 증시 요동, 가상통화, 세계 각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흐름 등 주요 문제가 산재해 있다. 안쪽으로는 145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이로 인한 한계 차주의 상환 부담 가중과 소비자물가, 기준금리 조정 등의 문제가 있다.

특히 20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에 따른 한국은행의 대처 등이 핵심 질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이달 기준금리를 올리면 한미 기준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8월 이후 10년 7개월만에 역전된다.

한미간 금리 역전을 눈앞에 두고 한은은 아직 뚜렷한 시그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금통위에서도 7명의 참석자는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에 찬성했다. 통상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소수의견이 선제적 시그널로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4월 금통위 이후 금리가 조정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후보자 역시 연임으로 금리 인상 속도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통화정책 방향을 총재 연임 여부와 연관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금리 조정은 경기와 물가의 흐름, 금융안정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결정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한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범정부 차원의 보호무역주의 대책 마련, ▲신성장동력 발굴과 육성,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생산성 향상, ▲저출산 고령화 대책 등을 꼽았다.

이주열 4년 키워드 ‘금리 인하’…한은 독립성 잃은 ‘공조자’ 논란

이 후보자의 지난 4년에서 떠오르는 키워드는 ‘금리 인하’다. 지난 2014년 4월 취임한 이 후보자는 취임 직후인 8월을 시작으로 5년간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거푸 인하했다.

2014년 8월 세월호 사태로 얼어붙은 경기 부양을 위해 2.25%로 한 차례 인하했고, 두달 뒤 다시 2.00%까지 하향 조정됐다. 2015년에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와 대우조선해양 등 대규모 해운∙조선업 구조조정 사태가 맞물렸다. 결국 같은해 3월 1.75%에서 6월 1.50%로, 이듬해 6월 1.25%까지 기준금리는 최저 수준까지 인하됐다.

공교롭게도 같은 기간 정부의 정책 기조는 ‘초이노믹스’였다. 일명 ‘빚 내서 집 사기’ 정책으로도 통한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첫 경제정책방향이었던 초이노믹스는 부동산 시장을 띄워 얼어붙은 내수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각종 대출 규제가 연이어 완화되며 전국 주택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2012년과 2013년 0%대 증가율에 그쳤던 전국 주택매매가격 상승률은 2014년 1.7%, 2015년 3.5%로 해마다 큰 폭 상승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상승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초이노믹스 발표 직후인 2014년 4분기 경제성장률은 2.7%로 전분기(3.4%)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주택가격이 폭등하던 2015년 1분기와 2분기 역시 경제성장률은 각각 2.6%, 2.4%로 매분기 하락하며 초이노믹스는 사실상 ‘실패한 정책’으로 결론짓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며 가계 빚 불리기에 공조했다는 지적이다. 2014년 1085조3000억원이던 가계부채는 2015년 1203조1000억원, 2016년 1342조5000억원으로 매년 전년보다 10%대 증가율을 보였다. 지난해 가계부채는 1450조9000억원으로 증가율은 8.1%로 소폭 줄었으나 여전히 연간 100조원 이상의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독립성을 보장받고 중립을 지켜야하는 중앙은행이 정부 정책 ‘공조자’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중앙은행 총재의 자격…‘예스맨’보다 독립성 갖춘 카리스마 필요

한국은행법 1조에 나온 나온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은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며 이 과정에서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한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행 총재로는 한은의 기본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특히 보다 장기적인 카리스마를 갖춘 통화정책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단순히 연임 총재 타이틀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난 4년을 돌아보고 향후 4년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한국은행의 경우 전임 총재가 ‘한국은행도 정부다’라는 발언으로 독립성 부분에서 상당히 타격을 입어왔다”면서 “지난 정부 시절 정부 정책에 발맞춰 기준금리를 낮춰왔다는 점에서 이 후보자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중앙은행이 정부 정책에 공조하는 점은 시너지를 낸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역시너지가 나 악화일로를 걷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에서 30년이상 재직한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이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으로 안다. 얼마전 노조 설문을 통해서도 이 후보자의 연임을 두고 절반 이상이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면서 “정부나 금융당국과의 공조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과실을 덮어주는 등의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강한 한국은행내 직원들중 절반이상이 연임에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것은 숫자이상으로 거부감이 형성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실 통화정책은 중앙은행 총재 혼자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정책의 공과를 개인에게 묻는 것은 오히려 중앙은행 독립성과 금통위원의 합리적인 의사구조를 존중하지 않는 행태가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