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순(29) 고려대학교 전기전자파공학과(왼쪽), 이동훈(23) 인하대학교 컴퓨터정보공학부(오른쪽).[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이들의 실력을 ‘검증’ 받는데 무려 15개월이 걸렸다. 학교 시험처럼 4지선다형도 아니다. 5개월, 7개월, 그리고 3개월 동안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의 창작물을 내놓아야 한다.

‘SW마에스트로’ 과정은 상상보다 훨씬 더 혹독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 25일 드디어 1기생 10명이 탄생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있지만 첫 평가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이번 1기생 배출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1기생 10명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바로 ‘기술’ 그 자체였다.

100명의 지원자가 5개월간의 프로젝트를 거치며 생존자는 30명으로 줄었다. 또 다시 7개월 동안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창작물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최종 10명이다. 이들은 3개월 동안 또다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했다. 2011년 10월 25일 이들 10명은 외쳤다.

“드디어 해냈다”고. 지난 1년 3개월간 경쟁과 타협이 수도 없이 이어졌다. TV 오락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야기가 아니다. 지식경제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함께 만든 소프트웨어(SW) 마에스트로 선발 과정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고 5000만원 지원금을 내건 ‘SW마에스트로’ 1기가 탄생했다. SW마에스트로가 그동안 주목받았던 것은 ‘교과 과정’이다. 학습 위주의 교육 과정은 없었고 오로지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됐다. 여기에 30여명의 멘토가 투입됐다. 서바이벌제도를 도입해 치열한 경쟁구도를 만들었고, 최상의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 결과 구재성(인하대), 김형순(고려대), 박남용(서울대), 방한민(강원대), 변현규(세종대), 안병현(숭실대), 유신상(인하대), 이동훈(인하대), 이재근(숭실대), 진성주(광운대)씨 등 10명이 최종 1기생의 명칭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지난 25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제1기 SW마에스트로’ 인증식을 거쳐 '명장(名匠)'으로 거듭났다. 이날 김형순-이동훈씨를 만나 젊은 그들이 마에스트로로 거듭나는 얘기를 들어봤다.

창의적 아이디어 전문 멘토와 직접 연결
김형순(고려대 전기전자파공학과)씨는 “속이 후련하다”고 한마디했다. 15개월 동안 해냈던 각종 프로젝트로 너무 힘들어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다그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김씨의 프로젝트는 스마트 기기 액세서리를 통한 감정을 전달하는 플랫폼이다. 문자나 사진으로 이용한 '소셜 네트워크‘가 아닌 스마트 기기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쉽게 설명하면 인형 모양의 스마트폰 거치대를 만들고 메시지를 보내면 그 거치대가 전화나 문자 내용에 맞게 표현을 한다. ‘사랑해’라는 문자가 오면 인형 거치대가 거기에 맞는 행동으로 문자 내용을 알게 만드는 방식이다.

“소셜 네트워크를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죠. 소셜 네트워크처럼 글자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는 다양한 감정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했죠. 이미 학습된(매뉴얼화 된) 움직임이지만 보다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끔 전달해보려고 시도한 것이죠.”
김씨는 다른 10인과 달리 직접 SW가 아닌 로봇과 융합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심사위원들에게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대학 때 동아리를 통해 로봇에 푹 빠졌어요. 이 과정에서 직접 SW를 개발하면 더 재미있는 움직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앞으로도 로봇과 SW를 융합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그는 이것을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이라고 명명했다. 이미 특허도 마무리 됐고 바로 시장에 내놓을 있을 만큼 상용화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하지만 그는 인터넷에 오픈소스로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라는 속내를 털어놨다.

“상품화하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플랫폼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오픈소스화 시킬 계획입니다.”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씨는 다른 SW마에스트로와 달리 공부를 할 계획이다. 그리고 회사에 취업해 좀 더 기술력을 키우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사업에 미련이 없었던 것은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경험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공부를 더하고 싶어요. 그리고 회사에 취직해 거기에 맞는 경험을 쌓는 것도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프로세스를 읽는 것이 저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10년 후 자신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어떤 개발자의 길을 걷고 있을 것 같으냐고 질문했다. “초심 아닐까요. 지금과 같이 모든 것을 신기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어린이 같은 내가 되고 싶습니다.”

1년 3개월 고난의 행군 합격자들 자부심
“친구 따라 강남 왔다가 15개월 동안 버텼네요. 제 분야로 창업을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어요.” 이동훈(인하대 컴퓨터정보공학부)씨는 첫 소감을 묻는 질문에 “잠을 자고 싶다”고 했다. 15개월 과정 동안 단 한 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탓인지 이날 인증식에서 긴장이 풀리면서 “졸리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씨는 지난 15개월 동안 치열했고 강도 높은 심사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며 피곤함을 감추지 못했다. “TV프로그램에서 보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두 달이면 끝나지만 우리는 1년3개월 동안 오디션 과정을 거치는 거죠. 특히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국민 혈세로 공부 하고 있으니 정말 열심히 해야 된다고.

” 김씨는 친구따라 SW마에스트로 과정에 도전했다가 귀한 기회를 얻게 됐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보올림피아드에 출전하는 등 흔히 말하는 아마추어 SW업계에서는 전문가급으로 통한다. 1단계에서 덜컥 합격하면서 고난은 시작됐지만 오히려 즐거움이 더 앞섰다.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분야를 항상 고민해왔어요. 멘토를 만나면서 제가 무엇을 개발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지를 알게 된 셈이죠.” 그가 낸 프로젝트 결과물은 노인 복지 업무를 지원하는 ‘노인 케어’다. 기존의 수기식이 아닌 업무를 통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산화로 가능하게 만들었고 클라우딩 서비스를 붙였다. 모바일 기기를 지원하고 급여 서비스, 누락 방지 시스템도 적용했다. 현재 15개 노인복지시설에서 이 프로그램을 수개월째 사용 중이다. 평가 점수도 좋은 편이다.

“아버님이 노인 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셔서 시스템을 이해하기는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결과만 놓고 보면 이 아이디어는 항상 잠재의식 속에 있었고 결국 SW마에스트로 과정을 거치며 ‘노인 케어’라는 결과물을 끄집어낸 것이니까요.”

김씨는 현재 창업 준비 중이다. 벌써 인하대 내에 있는 창업 보육센터에 입주한 상태다. 친구들과 함께 벤처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을 나타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 만큼 창업에 도전해보려고요. 저 혼자서 무리겠지만 실력 있는 친구들이 있어 기업을 키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최재영 기자 som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