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석중 금융전문기자 겸 고문]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사임했다.

그동안 1)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의 3연임 추진으로 촉발된 금융당국과 하나금융지주의 신경전이 2) 금융감독원 및 금융위원회의 ‘지배구조 문제점 지적’을 통한 3연임 경고에도 불구하고 3) 하나금융지주는 김정태 회장의 3연임 밀어붙이기로 응수하더니 4) 금융감독원은 하나금융지주의 각종 비리에 대한 검사 및 고발 조치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와중에 5) 나만 죽을 수 없다는 듯 ‘최흥식 원장의 하나금융지주 근무 당시 인사 추천 건’이 모 언론사의 단독보도에 의해 카운터펀치로 날아오자 감독원장이 그만 며칠 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금융당국과 금융기관 관계에서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이번에 벌어진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예금을 받는 정부의 특혜로 인해 공익성에 대한 감독을 받는 금융기관이 주주민주주의를 잘못 해석해서 ‘대주주가 없으면 경영진이 주인이다’는 짝퉁 민주화에 대한 확신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권위가 추락한 것인지 해석할 방법이 없다.

당연히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금융당국이 여기서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고 곧바로 특별검사단을 꾸려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정밀검사에 착수했다. 정권을 흔들 수 있는 카운터펀치가 없는 한 하나금융지주가 금융당국을 굴복시키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당장은 부원장 대행체제로 끌고 가더라도 조만간 새로운 금융감독원장을 임명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금융감독원장이 사임하자마자 곧바로 언론에서는 하마평을 쏟아내고 있다. 여전히 관행처럼 출신을 기준으로 관료출신이 해야 한다느니, 그래도 다시 민간인 출신이 해야 한다느니 등으로 얘기할 뿐 차기 금융감독원장의 자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직도 금융감독원장을 그저 자리로만 인식한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금융감독원장의 역할과 책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어떠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금융감독원장이 되어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임명해야 한다.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사가 관료출신이든 민간출신이든, 고시출신이든 비고시출신이든, 남자든 여자든, 젊든 늙었든 무슨 상관이며 형식적인 조건이 실질적인 조건을 지배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금융감독원장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첫째,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내부 뿐 아니라 감독당국, 금융제도 등 폭넓게 금융권 전체의 문제점 및 적폐 그리고 역할관계가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즉, 문제인식도다.

사실 우리나라 금융감독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감독이나 규제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감독하고 규제하여 금융기관의 자율성과 선진화를 가로막는 분야도 많고(예를 들어, 가격규제, 영업규제, 신상품 개발규제, 취급업무규제 등), 꼭 규제하고 감독해야 할 것은 제대로 제도화 되어 있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자율로 맡긴 부분도 많다(예를 들어, 지배구조감독, 회계감독, 소비자보호감독 등).

우리나라 금융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감독원장이 되면 임기동안 공부하다가 끝나거나 기득권 금융기관 및 내부조직의 장막에 가려 끌려 다니다 임기가 끝날 소지가 다분하다.따라서 이미 우리나라 금융권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인식이 충분히 갖추어진 사람이 임명되어야 한다.

둘째, 금융기관과의 유착 및 기득권 금융사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즉, 독립성이다.

감독업무는 양면의 칼날과 같아 필연적으로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은 한편으로는 칼과 방패의 상반된 입장으로 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봐주고 도와주는 유착이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며 적폐이다.

또 학연 지연 혈연 등의 네트워크와 소위 사단으로 불리는 금융권 이너써클(Inner Circle)은 공공연한 비밀인 바 이들 유착과 기득권으로부터 자유롭고 떳떳한 사람이 신임 감독원장이 되어야 한다. 이미 금융기관과 유착되어 있거나 기득권 사단에 속한 사람이 감독원장이 될 경우 금융개혁 및 혁신은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금융기관에 약점이 잡혀있는 사람이 어떻게 금융기관을 감독할 것이며, 기득권사단과 인연에 엮여있는 사람이 어떻게 기득권을 타파하는 개혁과 혁신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

셋째는, 소신과 장악력 그리고 추진력이다. 아무리 우리나라 금융의 문제점을 많이 알고 있고 기존의 금융기득권에 대해 독립성이 있어도 문제점과 적폐를 개선하여 우리나라 금융감독의 선진적인 체계를 획기적으로 잡아놓고야 말겠다는 소신이 없으면 보신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최흥식 전임원장의 사임에서 보듯이 혁신과 개혁에는 만만치 않은 기득권의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저항은 금융권의 저항뿐 아니라 감독조직 내부의 저항과 관료조직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수십 년 동안 쌓여온 관행과 타성에 젖은 조직문화에서 조직의 이해와 상충되는 개혁을 추진하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것이 조직내부의 저항이고 이를 이겨내고 조직을 장악하는 장악력이 부족할 경우 결국 동력은 떨어지고 잃을 것이 많거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소신보다는 타협과 경력관리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소신과 장악력과 더불어 혁신을 추진하는 추진력이 필수 조건이다. 추진력 없는 소신과 장악력은 결국 결과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조건과 자질을 두루 갖춘 인물을 찾기가 일면 어려워 보일 수 있으나 출신, 배경, 경력, 지역, 성별, 나이 등의 비실질적인 기준을 버리고 자질에 대한 평판조회와 검증을 통해 찾아본다면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부디 제대로 된 금융개혁을 통해 우리나라 금융을 한 단계 도약시켜 선진금융으로 이끌 수 있는 인물이 새로운 금융감독원장으로 임명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