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싱가포르 기업인 브로드컴이 미국 기업인 퀄컴을 인수할 경우 국가안보에 위협이 생길 수 있다는 논리다.

월스트리트저널(WSJ)를 비롯한 주요 외신은 1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금지하는 명령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명령에 따라 두 회사는 인수합병을 전제로 논의했던 모든 제안을 즉각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가 결국 무위로 그쳤다. 출처=위키디피아

최근 철강과 알류미늄 수입관세 부과에 나서며 ‘국가안보를 위해’라고 주장했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일본 정부가 도시바 매각 정국에서 기술유출에 따른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동을 걸고, 미국 하원이 올해 초 현지 스마트폰 시장 진출에 나서는 화웨이의 발목을 잡았던 것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막는 대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전쟁에 나서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격변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는 점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브로드컴이 싱가포르 기업이며, 범 중화권 기업에 속한다는 점이 트럼프 행정부의 퀄컴 인수 금지 명령을 끌어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브로드컴 입장에선 뒷통수를 맞았다. 지난해 11월 퀄컴 인수합병을 제안하는 한편 본사를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옮기며 트럼프 대통령의 극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브로드컴이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할 당시 “브로드컴은 매우 훌륭한 기업”이라고 추켜세운 바 있다. 그러나 몇개월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입장을 180도 바꿔 퀄컴 인수에 제동을 걸어 브로드컴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가 막히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다시 혼란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강력한 합종연횡을 바탕으로 몸집을 불린 업체들이 정치적 논리에 갇혀 운신의 폭이 좁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약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한다면, 지식재산권 분쟁을 치르는 애플과 퀄컴의 소모적인 논쟁도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최근 인텔이 브로드컴 인수 가능성을 흘리며 애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시도를 보이는 것도 생태계 전반으로 보면 긍정적인 시그널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브로드컴과 퀄컴이 인수합병 금액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사이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나서며 두 회사의 합병에 제동을 걸었고, 결국 미국으로 본사까지 이전하는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소망도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