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미국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9일(현지시각) 인텔이 브로드컴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전이 대단히 복잡해졌다.  퀄컴 인수에 나서며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브로드컴을 반도체 칩 메이커 인텔이 노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브로드컴은 지난해 11월부터 퀄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인수금액을 두고 두 회사의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으나 최근 "만나서 대화하자"는 퀄컴의 제안이 있는 등 인수합병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에 발목을 잡았다. 퀄컴이 6일(현지시간) 주주총회를 열어 인수합병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30일 후로 연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퀄컴은 “우리는 CFIUS의 명령대로 연례 주주총회와 이사 선임을 연기해 충분한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 올해 초 CES 2018에서 바로 옆자리에 부스를 차린 퀄컴과 인텔.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인텔이 갑자기 브로드컴 인수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것이 WSJ의 설명이다. 지난해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합병 가능성이 부상했을 때 브로드컴을 인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업계는 의외라는 평가다. 물론 인텔의 시각에서 브로드컴과 퀄컴의 결합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3위 사업자 퀄컴과 4위 사업자 브로드컴이 연합할 경우 반도체 시장의 판이 급변하기 때문에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브로드컴 인수에 나설 필요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인텔 내부사정은 매우 복잡하다. 지난해 초유의 CPU 게이트가 터진 후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최고경영자(CEO) 체제의 인텔은 크게 휘청이고 있다. 당장 무너질 정도의 급격한 변화는 없어 보이지만, 삼성전자의 맹공에 시달리며 글로벌 반도체 1위의 자리도 위험하다는 경고등이 이미 켜졌다.  인텔이 다양한 기업을 인수합병하며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노리고 있지만, 단숨에 업계 4위 사업자를 인수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이번 보도는 인텔이 브로드컴과 퀄컴의 결합을 저지하기 위한 시도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인텔은 반도체 업계의 강자지만 4G부터 5G의 관문으로 가는 시장에서는 퀄컴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퀄컴은 모바일 AP를 중심으로 초연결 시대를 장악하는 한편, 지난해 제정된 5G 논스탠다드얼론(NSA) 표준을 주도하며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인텔은 틈새를 파고 들고 있다. 퀄컴이 애플과 전방위적인 특허소송을 벌이며 사이가 벌어지자 그 틈을 파고 든 것이다. 퀄컴이 장악한 모바일 반도체 시장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인텔은 재빨리 애플과 연합해 시장에 파고들었다.

반전은 브로드컴의 등장이었다. 모바일 시장에 진출하려는 인텔은 지금까지 퀄컴과 애플 사이에서 벌어진 균열을 효과적으로 이용했으나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면 '최소한의 틈'도 사라지기 때문에 인텔은 바싹 긴장했다. 

WSJ의 보도가 CFIUS의 개입으로 브로드컴과 퀄컴의 인수합병 논의가 중단된 직후 나온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두 회사가 인수합병을 두고 빠르게 의견을 좁히고  CFIUS의 개입으로 논의가 멈추자,당황한 인텔이  빠르게 브로드컴 인수 가능성을 제기하며 두 회사의 결합을 훼방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