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해당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안에 서명하고 있다.         출처= NBC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조치는 현재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정이 진행 중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 적용되며, 서명일로부터 15일 후인 23일 발효된다. 유럽 연합, 한국은 물론, 그동안 내심 제외되기를 기대했던 일본도 포함됐다.

이번 조치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것이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제품 수입이 미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부과 수입량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관세 부과 대상국 변경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서명에 앞서 '진정한 친구'에겐 융통성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관세 부과 대상이 된 국가들이 수출로 인해 미국에 주는 위협을 해소할 수 있으면 면제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미국의 관세 부과 영향을 받는 모든 국가들이 면제협상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의 복심으로 알려진 폴 라이언 미 공화당 하원의장은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수입산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 발표 직후 "이 조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적용 국가를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이언 의장은 이날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관세 부과를 공식 발표한 직후 낸 성명에서 "나는 이 조치에 동의하지 않으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무역전쟁을 하는 게 좋고 이기기 쉽다"며 사실상 선전 포고까지 해놓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서명식에서도 "미국 산업이 외국의 공격적인 무역관행에 의해 파괴됐다”라거나 "우리나라에 대한 공격", "우리를 나쁘게 대우한 많은 나라가 우리의 동맹"이라는 등의 발언을 통해 다시 한번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의 무역 적자를 심각한 문제로 생각한다. 그는 "재앙"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미국의 수입과 수출에 엄청난 격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해 그 차이가 810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그 냉혹한 숫자에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빠져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적한다. 미국 경제는 더 이상 기본적인 상품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주로 서비스 기반, 즉 금융 서비스, 미디어, 운송, 기술 등 서비스 기반 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다. 그리고 이 서비스 분야의 수입 및 수출에서 미국은 243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서비스 부문 기업은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보다 5배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Moody's Analytic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는 "미국은 단연코 가장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서비스 생산자다. 서비스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이익을 내고 있다. 이 부분 이야말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철강 생산과 알루미늄은 "부차적인 문제"라며 이 산업은 미국 경제의 핵심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도움이 필요하지만, 무역에 철퇴를 내리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역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니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철강과 알루미늄이 미국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산업이기 때문에 관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주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는 "미국이 알루미늄과 강철을 생산할 수 없는 시대가 오면 우리는 나라의 상당 부분을 잃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철강이나 알루미늄 같은 제조업이 미국 경제의 중심에서 벗어난 것은 이미 꽤 오래된 일이다.

▲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버크셔해더웨이, JP모건 체이스 등 미국에서 가장 시장 가치가 높은 기업 10개 중 7개는 서비스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다.       출처= CNN 캡처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버크셔해더웨이, JP모건 체이스, 뱅크오브어메리카 등, 미국에서 가장 시장 가치가 높은 기업 10개 중 7개는 서비스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가 무역 전쟁을 촉발 시킨다면, 이는 수입 상품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는 서비스 부문에게는 진짜 나쁜 소식이 될 수 있다.

스타벅스를 생각해 보라. 이 회사가 판매하는 거의 모든 커피는 수입되고 있으므로 무역 적자에 기여한 셈이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미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서 미국에서만 1만 4000개의 매장에 18만 5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원두 커피를 수입할 수 없다면, 현재의 성공도 이룰 수 없고 지금 만큼의 고용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인 애플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판매하는 대부분의 아이폰과 컴퓨터를 외국 생산 회사로부터 수입한다.

"그러나 부가 창출되는 곳은 그런 전자 제품을 만드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다. 부가 창출되는 곳은 아이폰, 태블릿, 랩톱, 그리고 미국에서 만드는 앱, 음악,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무디의 잔디 애널리스트는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업들을 돕기 위해 무역에 대한 강경 입장을 취하고 싶다면, 서비스 분야가 의존하는 지적 재산권 보호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 대한 관세 부과의 피상적 목적은 (경제적 측면으로 볼 때) 타국에 대한 철강 수입 의존을 줄임과 동시에 자국 내 철강생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두가지 효과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위의 두가지 효과만을 기대하고 이렇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며, 반발이 예상되는 보호관세안을 내놓았을지는 의문이 따른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철강 알루미늄 수입관세가 또 다른 보복관세로 이어져, 미국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고, 아울러 철강 가격 상승으로 인해 미국 제조업체가 겪어야 할 부담도 간과할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과연 진짜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트럼프 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에 따르면 지적재산권 침해로 인한 미국의 경제적 피해는 5990억 달러에 달한다. 철강 및 알루미늄 무역규모인 300억 달러의 무려 20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철강 알루미늄에 집착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의 지지 기반이 철강 제조업 노동자가 많은 소위 러스트벨트(Rust Belt;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미시건등)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이 지역은 소위 세계화 이후  철강산업등 많은 굴뚝산업 들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거의 황폐화된 주들이다. 트럼프는 선거 때부터 이 지역의 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게다가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이 지역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3년 후 재선 또한 장담할 수 없다.

트럼프의 이번 조치는 또 중국을 겨냥한 협박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국도 시진핑 1인 체제를 견고히 하고 있어 미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무역 전쟁의 암운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