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보에 이어 다임러까지 품은 지리자동차의 리수푸 회장          출처= Motor Trade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20여년 전, 지리(吉利)라고 하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오토바이 회사 기술자들이 자기 회사 사장(리수푸, 李書福)이 아끼는 메르세데스 벤츠를 한 조각씩 분해하며 자동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호기를 부렸다.

결국 그들은 사장의 차를 다시 조립하지 못했지만, 자동차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고 마침내 1996년에 메르세데스의 짝퉁인 ’지리 1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20여년이 지난 후 메르세데스 연구가 다시 한번 지리 전략의 중심으로 떠 올랐다.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은 지난 2월 24일, 메르세데스의 모회사인 다임러 AG(Daimler AG)의 9.7% 지분을 약 90억 달러에 취득해 독일 자동차 회사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로 항저우에 본사를 둔 ‘저장지리(浙江吉利) 홀딩스’(Zhejiang Geely Holding Group Co.)는 중국 최초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반열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지리 자동차의 리수푸 회장과 지리 자동차의 스토리를 게재했다.

'구제불능의 구식 차'라는 오명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지만 중국 기업은 아직 세계 무대에서 경쟁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자동차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리자동차가 해외로 진출하려는 그동안의 노력과 외국 기술의 흡수로 세계 시장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2010년에 지리가 인수한 스웨덴 볼보 자동차의 하칸 사무엘슨 CEO는 "3년 전만해도 중국 최초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가 지리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리의 리수푸 회장은, 지난 2001년 중국 국영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 나와 "GM이나 포드같은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확연하게 쇠퇴하고 지리나 몇몇 신규 진입자들이 떠오를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자신의 성공을 예언해 왔다.

그러나 꽤 오랜 기간 동안 그의 그런 예언은 말 그대로 공허한 약속처럼 보였다. 지리의 판매는 최근 까지만 해도 년 50만 대도 안 되는, 중국에서 조차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2006년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해외 시장에 첫 선을 보였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라이브>(Car and Driver)는 지리의 자동차를 "구제 불능의 구식”이라고 표현했다.

지리는 2010년에 포드자동차로부터 볼보(Volvo)를 인수하면서 미래의 성공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고급 자동차 기술에 접하게 됨으로써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들 사이에 한 발 앞서 나가게 된 것이다.

지난 2017년은 회사로서도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125만 대의 자동차를 판매함으로써 판매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성장하면서 중국의 베스트 셀링 토종 브랜드가 된 것이다.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의 주가는 3배로 뛰어 올랐다. 추가적인 인수 합병과 새 브랜드 출시로 지리의 포트폴리오는 현재 트럭에서 수퍼카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새로운 인수 합병 목록에는, 지난 해 지분 49.9%를 취득한 말레이시아의 프로톤(Proton), 영국 경주용 자동차의 전설 로터스(Lotus), 그리고 영국의 상징인 블랙 택시 제조사 런던 EV(London EV Co.) 등이 포함되어 있다.

▲ 2017 년 상하이 오토쇼에서 전시된 지리의 컨샙트카 ‘링크(Lynk) 03’. 출처= Evo

2017년 지리와 볼보는 ‘링크 앤 코’(Lynk & Co.)와 ‘폴스타’(Polestar)라는 두 개의 새로운 브랜드를 공동 출시했다. 링크는 지난 해 가을부터 중국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모바일 인터넷 앱이 내장돼 주로 도시의 젊은 구매자를 타깃으로 한 자동차 회사이고, 폴스타는 미국의 테슬라를 따라잡기 위해 설계된 프리미엄 전기 자동차 회사로 2019년에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지리는 또 매사추세츠주 워번(Woburn)의 ‘하늘을 나는 자동차’ 개발 스타트업 테라퓨지아(Terrafugia)에도 투자했다.

아직 판매량이 2백만 대도 되지 않는 지리자동차는 매년 1000만 대 이상을 판매하는 폭스바겐, 도요타, GM 보다는 한 참 뒤떨어져 있다. 리 회장의 다임러 인수로 지리가 메르데레스의 노하우에 접근함으로써 그 격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리 회장은 지난 달 28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임러의 감사회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우선 순위가 아니라고 말했다.

아직 세계 시장에서인정받지 못하는 중국 자동차

그러나 지리가 품질을 향상시킨다 하더라도 중국 자동차는 아직 시장에서는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많은 지방 자동차 회사들은 정부 지원을 통해 연명하는 수준이며, 외국과의 합작회사에서 생산된 유명 브랜드들이 중국 토종 브랜드보다 훨씬 많이 팔리고 있다.

지리의 지배 주주인 리회장은 올해 54세로, 중국의 부자 연구소인 '후룬 보고서'에 따르면 보유 재산이 174억 달러(18조 7천억원)로 중국에서 10번째 부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국 동부에 있는 고향의 한 고등학교에서 사진사로 일했다. 그러다가 사진을 파는 것보다 사진 현상 화학 물질에서 은을 추출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980년대에 그는 냉장고 회사를 창업했다가 나중에 지리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알루미늄 플레이트를 생산하다가 오토바이로 업종을 바꿨다.

당시 중국에서는 민간 자동차 제조업이 허용되지 않았다. 리 회장은 정부가 안전을 이유로 메르세데스 복제품 ‘지리 1호’의 생산 중단을 명령한 후에도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당시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던 리 회장은 나중에 자신이 쓴 많은 여러 시(詩) 중 하나에서 당시의 외로운 투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하지만 진실하고 현명하며 용기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네.
그들은 자동차 왕국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얼음 위를 맨 발로 걸었지.”

리 회장은 ‘지리 보잉 자동차’(Geely Boeing Auto) – 이 이름은 미국의 항공기 거인 보잉으로부터 여러 차례 컴플레인을 받았다 - 라는 회사를 통해 교도소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등, 법망을 피하기 위한 방법 모색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2001년에 자동차 생산을 허가 받으면서 중국 최초의 민간 부문 자동차 제조업체가 되었다.

▲ 지리가 포트론 홀딩스(Proton Holdings Bhd)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합의한 후 말레이시아의 나지브라작 총리와 지리의 이수푸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출처= nst.com

앞선 기술 가진 회사 인수만이 살 길

지리는 저렴한 가격의 차량을 생산하면서 국내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2006년 디트로이트로에서의 참담한 여행을 통해 리 회장은 가격 뿐 아니라 품질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한 계획을 마음에 품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앞선 기술을 가진 회사를 인수해야 한다고.

다음 해에 다시 디트로이트 쇼에 참가한 리 회장은 망설이지 않고 포드자동차 부스를 찾아 포드의 임원을 만났다. 그리고는 대뜸 “나는 중국 지리의 리수푸요. 볼보 인수에 관심이 있소”라고 말했다고 지리의 부사장 빅터 양은 회고했다.

포드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그들은 볼보는 팔지 않는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쳤고, 현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포드는 디트로이트에서 포드부스를 찾았던 중국 기업가를 기억해 냈다. 결국 손실을 내고 있던 볼보는 지리의 손으로 넘어갔다. 가격은 18억 달러, 포드가 (볼보를 인수할 때) 지불한 금액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액수였다.

이 계약의 성사에 일조했던 당시 지리의 임원이었던 프리먼 쉔은, 지리의 동료 임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인수가 성사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위태롭다고 생각한 지리의 주주들이나 원로 동료들은 지리 그룹 밖의 회사를 통해 인수를 진행하라고 리 회장을 압박하기도 했다.

중국 회사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유럽 주주들을 설득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IF 금속 노동 조합의 글렌 베르그스트룀 지부장은 “우리는 두려웠다. 중국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중국은 공산국가고 모든 것이 국가 소유라는 것 뿐이었다."고 말했다.

최종 합의에 서명하기 직전에야, 리 회장은 볼보가 여전히 스웨덴에 머물 것임을 보장하는 성명서에 서명하기로 동의했다고 베르그스트룀 지부장은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문서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지적했다. .

"리 회장은 그런 서명을 한 서류는 실효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러나 그는 어쨌든 그렇게 했고, 오히려 1999년에 포드가 인수했을 때보다 더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그 약속을 존중하며 잘 지키고 있습니다."

▲ 리수푸 질리 자동차 회장과 볼보의 하칸 사무엘슨 CEO          출처= wtop.com

지리와 볼보의 만남, 상생

빅터 양 부사장은 포드 시절에 투자에 굶주렸던 볼보는 지리가 인수하면서 110억 달러(약 12조원)의 투자가 이루어져 새로운 모델, 기술 플랫폼, 공장에 지원됐다고 말했다.

볼보는 2017년에 572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이는 지리가 인수하기 전인 2009년 보다 72% 증가한 수치다. 또 17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고의 수익도 기록했다. 볼보의 스웨덴 인력은 거의 2 배로 늘어난 2만 1000명에 달하고, 벨기에 공장도 2000명에서 5000명으로 늘어났다.

질리 인수 후 볼보의 변신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스웨덴에서 자체 공장을 운영하게 하려는 리 회장의 의지 때문이라고 사무엘슨 CEO는 말한다. 그러나 2012년 리 회장이 볼보 S90 고급 세단의 중국 버전에 대한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문화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무엘슨 CEO는, 스웨덴에서 "자동차 뒷자리는 개가 타는 곳"이어서 "우리 엔지니어들은 뒷좌석에는 그다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디자인이 리 회장을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그가 한 마디 내뱉았다. 

"이봐요, 그렇게 만들면 안 돼요. 중국에서는 차 주인이 항상 뒷자리에 않습니다.”

1927년 설립 이래 처음으로 볼보는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중국, 미국 및 유럽)에 생산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여기에는 올해 말부터 생산을 시작하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톤(Charleston) 근처에 5억 달러를 들여 세운 볼보 최초의 미국 자동차 공장이 포함되어 있다.

볼보의 인수는 지리 자신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볼 품 없는 중국 자동차를 욕망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데 볼보의 전문 기술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볼보와 포드의 고급차 디자인 영국 책임자였던 피터 호베리도 지리 인수 이후 지리의 디자인 책임자로 새 임무를 수행하게 된 사람 중 하나다. 그의 새 임무에는 지리의 제품 라인업에 대한 평가를 있는 그대로 리 회장에게 알려주는 것도 들어 있다.

호베리는 북경에서 방을 가득 메운 지리의 최고위 간부들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여러분은 제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을 뗀 후, 그는 지리의 자동차들을,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동물원의 서로 다른 동물들과 비유하는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를 사용하며 혹독한 비판을 시작했다. 그는 서로 다른 종류의 고양이를 보여주는 슬라이드를 화면에 비추면서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지리 자동차도 같은 종(種)의 구성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리 회장은 그 비평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며 개성적인 전면 그릴과 새 지리 자동차 심볼을 갖출 수 있도록 지리의 전 모델에 대한 재디자인을 승인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재탄생한 새 모델의 지리 자동차는 2014년 12월 시장에서 히트를 치며 지난 3년 동안 판매가 3배 이상 늘어나는 개가를 올렸다.

중국 정부가 전기 자동차의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리 회장은 이 흐름에 볼보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볼보는 내년부터 순수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모델만 생산할 예정이다. 지리자동차도 2020년까지 생산하는 모든 자동차의 90%를 전기 자동차로 채우려고 한다.

지난 해 11월 닝보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Ningbo International Speedway)에서 열린 링크의 새 모델 출시 파티에서 리 회장은,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지 않고 지리와 볼보의 기술이 결합된 신모델에 집중되게 하기 위해 자리를 살짝 피해주는 겸손함을 발휘하기도 했다.

▲ 중국 닝보(寧波)의 지리자동차 공장            출처= China.org.cn

지리, 세계 시장에 중국차 돌풍 일으킬까

지리의 경영진은 링크가 북유럽풍의 디자인으로 인해 다소 무겁긴 하지만 중국의 최신 자동차 솜씨를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출시 파티에서 지리의 안 콩후이 사장은 "중국이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최고 수준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리는 2020년까지 중국, 유럽 및 미국에서 매년 50만 대의 링크를 판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링크의 차는 기본 기술의 90%를 볼보의 소형 모델 XC40과 공유하고 있다. 회사는 출시 후 불과 수 분 만에 온라인에서 링크 01s 모델이 6000대나 팔렸다고 발표했다.

링크의 얼라인 비세르 CEO는 "137초 만에 6000대가 매진됐다. 1만 5000 정도는 준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리는 각별한 2017년을 보냈지만, 지리의 순항이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분석가들도 있다. UBS의 폴 공 애널리스트는 "지금 지리가 잘 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과거에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자동차 분야에서의 빠른 기술 변화 속도로 인해 지리나 다른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들은 더 혁신적인 경쟁자들에 의해 퇴색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리 회장은 성명에서, 다임러에 대한 투자는 기술 혁명의 도전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친구, 파트너 및 동맹"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리 회장이 다임러 지분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임러는 이미 중국에서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중국 파트너인 국영 베이징 자동차(Beijing Auto) 를 가지고 있다. 다임러의 대변인은 회사는 리 회장의 목표가 무엇인지, 왜 그가 회사에 투자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리의 빅터 양 부사장은 지리 자동차가 2020년까지 매년 3백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세계 10대 자동차 제조업체의 순위에 포함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냉장고나 만들며 아무런 돈도, 재능도, 시장 인지도도, 기술도 없이 시작한 변방의 자동차 제조사로서는 놀랍게 빠른 발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