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의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펼쳐낸 감동적인 드라마를 잊지 못한다. 아마추어로 분류되지만 실력만큼은 미국을 뛰어 넘어 변함없는 세계 1위로 인정되는 쿠바를 상대로 두 번이나 승리를 거두었는데, 마지막 결승전에서는 시합을 뛰는 선수들도 손톱을 물어 뜯는 모습이 화면에 잡힐 정도로 긴장감이 역력했다.

 

믿고 기다려 주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확실한 마무리 투수였던 정대현 선수가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국가대표팀 김경문 감독은 이런 선수들의 부상을 밝히지 않고 끌고 갈 수 밖에 없었다. 한 방 터뜨려줘야 하는 이승엽 선수도 계속 부진에 시달렸다. 김감독은 이런 뼈아픈 속내를 숨기고 선수들을 격려하며 믿음을 계속 줬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결정적일 때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예선전부터 금메달 결승전까지 9전 전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상황이지만 서로 믿고 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작고한 하일성 해설위원의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 위원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단장으로 있었기에 당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멋진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드러나지 않은 선배 선수의 배려와 신경 씀씀이가 있었고 덕분에 우승이라는 값진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고 했다. 더운 날씨의 플레이에 지친 선수들은 밤마다 에어컨을 켜놓고 자기 일쑤였는데, 선수들에게 밤새 에어컨 냉기가 컨디션 저하를 불러올 수도 있기에, 고참 선배는 후배들이 다 잠든 후 방방마다 다니며 에어컨을 끄고 후배들의 편안한 잠자리를 살펴주었다고 한다.

한 후배 선수가 밤 늦은 시각에 이 방 저 방 체크를 하고 다니던 그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님도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신경 써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주전 멤버도 아니고 대타로 잠깐 뛰는 정도라, 주전으로 뛰는 너희들 컨디션이 더 중요해.”

하 위원은 우승의 원동력은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잘 뛰어준 선수들 덕분이지만 그런 선수들이 더 잘 뛸 수 있도록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배려한 이런 고참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강의 내내 그 고참 선수의 배려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9전 전승을 이끌어 내며 화려한 플레이로 주목 받았던 그 선수들만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좋은데 다시 해봐’ 같은 무책임은, 독이다

믿고 기다려 주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믿고 맡겨 두는 일이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요즘처럼 세상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가 많은 때에, 믿고 맡겨 두는 것보다는 늘 점검하고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윗선으로부터 복잡하고 많은 주문이 있지만 주문들이 분명해서 이행하기가 어렵지 않은 경우가 있는 반면에 간단한 주문 같지만 사실은 모호해서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헤매는 경우도 있다. 자료나 보고서를 대하고는 쉽게 하는 말들 중의 하나가 ‘좋은데 다시 해봐’다. 좋으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어느 부분을 수정 보완하라고 하면 문제가 아니겠으나 좋기는 한데 다시 하라고 하면 쉽지가 않다.

일을 맡기긴 했지만 신뢰가 반반이어서 뭔가 지적은 하고 싶은데 열심히 한 당사자보다 더 많이 고민한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 한다는 말이 고작 그 정도다. 담당자가 역량을 다해서 모두 분석하고 작성했기에 딱히 지적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두기 뭐해서 가볍게 지시한 것이 오히려 악화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간단한 한 마디에서 열 두 고개 수수께끼가 시작된다. 급하게 수정하여 다시 보고하면 그때부터는 처음에 들었던 ‘좋은데 다시 해봐’ 보다 더 못한 말을 듣기 십상이다.

“어떻게 다시 해 온 자료가 처음보다 못하냐? 다시 해.”

웬만한 사람은 혼돈의 상황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그나마 반이라도 믿고 맡겨 둔 경우에는 다르겠지만, 신뢰가 바탕이 되지 못할 경우 지시는 더욱 모호해 진다. 담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안을 줘서 다른 모색이 가해질 수도 있다. 실무진은 하나의 사안에 주어진 여러 갈래의 방향에 혼란만 가중된다. 종종 윗선의 문고리가 누구냐에 따라 향방이 결정되는데, 위에서 볼 때는 더 잘 할 수 있도록 경쟁을 붙이는 꼴이지만 실무 담당자는 모르모트처럼 이리저리 우왕좌왕을 거듭한다.

그 단계에 들어서면 실무진은 ‘이렇게 해도 싫고, 저렇게 해도 안 된다’는 자기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대기 시작한다. 마감 시한은 다가오고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간단하게 출발한 것이 내용이 추가되고 복잡해지면서 새털처럼 가볍던 보고서가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짓누르게 된다. 마감에 임박해서야 겨우 통과 되지만 미로 속에 갇힌 쥐가 발버둥 치다가 겨우 출구를 빠져 나온 격이어서 경험이 축적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윗선은 늘 이렇게 말한다. ‘맘에 들지 않지만 마감이라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열심히 하고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주위에 빈번하다.

 

마주보지 말고, 한쪽에서 같이 보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

어떤 사물이나 일을 대할 때 마주 보고 대하는 것 보다, 한 쪽에 같이 앉아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태도가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이다. 어떠한 조직이라도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사람들, 소위 잘 맞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한 두 마디만 해도 무슨 의미인지 단박에 파악해 이야기한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서너 번을 거듭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손자병법은 전쟁에서 커뮤니케이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한다. 장군의 명령이 병사들까지 정확하게 전달되어 목표가 공유되고 부대간의 의사가 완벽하게 소통되며 해야 할 바를 명확히 행하면 승리는 당연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소통을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기업경영과 직결시켜 보더라도 딱 들어맞는 예견임에 분명하다.

손자병법은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4가지 단절 유형을 이야기 하고 있다. 첫째 전후불상급(前後不相及), 전방과 후방이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본사와 현장이 소통하지 못 한다. 지인이 한 농담이 생각난다. 그는 회사가 ‘바보와 머저리에 의해서 운영된다’며 자조적인 말을 했는데, ‘본사는 현장 사람들을 바보라 하고, 현장에선 본사 사람들을 현장감각도 없는 머저리라 부른다’는 것이었다. 지인은 본사와 현장을 오가며 일을 했는데, 어떤 날은 바보가 되었다가, 다음날은 머저리가 되어야 한다며 웃었다.

둘째 중과불상시(衆寡不相恃), 정규조직과 TF조직 같은 특수 조직 간의 갈등이다. 한때 내가 근무하던 회사도 다양하고 많은 TF팀들로 인해 한 두 개 TF팀에 가담하지 않은 직원들이 없을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어느 것이 정규업무이고 어느 것이 특수 임무인지를 혼동했다.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셋째 귀천불상구(貴賤不相救), 예전 군대는 신분에 따라 편성이 달랐다. 귀족출신 부대와 천민출신 부대가 반목과 갈등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지금은 노사간의 불화나 라인 별로 파벌이 형성되어서 조직 내부에서도 피아를 나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마지막으로는 상하불상부(上下不相扶)로 상하가 단절된 조직을 말한다.

 

보약은 듣고 싶은 말이 아닌 들어야 할 말이다

자신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라인을 형성해 놓고 정규 보고라인을 통해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자신과 잘 통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뒤를 캐묻는 습관을 지닌 경영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자주 접하기 힘든 내부 직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불편은 없는지, 일하는 분위기는 좋은 지 알고 싶어서 자신의 심복들이 사내 곳곳에서 보고 듣고 온 것을 말하게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이 활력을 잃어갔고 직원들이 말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가 될수록 안달이 난 그 경영자는 자신이 믿는 직원들이 더 많은 것들을 파악해서 알아 오게끔 다그쳤다. 이에 더 많은 보고 거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결국 조직은 모든 것이 단절되었고, 직원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그 경영자는 여전히 조직을 더 일구기 위해서 자신의 사람들만을 계속 다그치고 있다.

조직의 경쟁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다. 잘 나가던 기업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거나 어려움에 견디지 못해 망하거나 피인수 되는 일이 허다한데 알고 보면 조직 내부 결속이 와해된 때문이고, 단절된 커뮤니케이션이 그 원인이다. 돈은 그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