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의 실적이 날로 호조를 거듭하고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중대한 리스크도 잠재하고 있어 삼성의 대응이 주목된다. 특히 하드웨어 생산에  의존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소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액 240조원, 영업이익 53조원을 넘기고 당기순이익에서는 40조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4분기만 봐도 영업이익 15조1500억원을 올리는 배경에는 매출액 65조9800억원이 주효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4%, 영업이익은 64.3% 증가했다. 

이같은 호실적에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단단한 배경이 됐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해 4분기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전체 매출액은 32조500억원, 영업이익은 12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반도체는 매출 21조1100억원에 영업이익 10조9000억원을 기록하며 '10조원 벽'을 넘었다. 디스플레이 사업은 매출 11조1800억원에 영업이익 1조4100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계절적 비수기와 패널 가격 하락이라는 악재를 만났지만 전분기 영업이익 9700억원과 비교하면 소폭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귀환, 이사회 중심 경영을 통해 콘트롤 타워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그러나 내밀한 속사정을 살펴보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대한 리스크도 여럿 감지된다.  

▲ 참관객이 갤럭시S9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지난해 4분기 낸드플래시 시장은 모바일 제품의 고용량화와 서버용 SSD의 성장세에 따라 전반적인 수요 강세가 지속됐다. 이런 고무적인 흐름속에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본격 가동에 들어간 평택 반도체 라인에서 64단 3D V낸드플래시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중이다.

D램도 클라우드 서비스와 신규 데이터센터 확대, 플래그십 모바일 신제품 출시 등으로 수요가 증가했는데, 삼성전자는 1X나노 제품 공급 확대를 바탕으로 고용량 서버 D램, LPDDR4x 등 대부분 영역에서 시장 지배력을 유지했다는 평가다. 두 영역 모두 삼성전자가 1등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덕에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는 한편, 파운드리 시장 진출 등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도 창출한다는 각오다. 전통적으로 1분기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비수기로 꼽히지만, 삼성전자는 무난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AP와 이미지센서 공급을 확대하고 다양한 응용처에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한편 AP와 이미지센서 판매를 확대할 전망이다. 7나노 EUV 시험 양산을 통해 기술 리더십을 이어가고 다양한 응용처에 신규 제품을 수주할 방침을 세웠다. 일각에서는 시스템 반도체에서 삼성전자의 존재감이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주요 스마트폰 업체의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저온폴리실리콘(LTPS) LCD와의 기술 차별화를 강화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LCD 부문은 경쟁 업체들의 생산량 확대와 경쟁 심화에 따라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려운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다.

미래 디스플레이 기술인 AMOLED 시장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비리서치는 2일 보고서를 통해 "전체 AMOLED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매출과 출하량 점유율은 91.6%와 94.5%"이라면서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스마트폰용 AMOLED 시장은 1억2000만대 출하를 기록해 전체 시장에서 95.5%를 차지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판매한 스마트폰용 AMOLED는 무려 1억1900만대로 점유율로 보면 97.5%에 달한다.

미국, 일본, 중국 견제 갈수록 증가...격차 좁아져

그러나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시장 공략이 '올해도 당연히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도체의 경우 수퍼 사이클 주기에 대해 이견이 나오고 있다. 기록적인 수퍼 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수퍼 사이클이 종료되면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요와 공급이 유지되면 수퍼 사이클이 연장될 수 있겠지만,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공격적인 설비투자를 통해 시장 장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세운 상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가 발표한 '글로벌 반도체 장비 출하량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와 비교해 7.5% 증가한 601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반도체 장비 매출은 2014년 68억달러, 2015년 74억달러, 2016년 76억달러 등 완만한 성장세를 보여줬으며 지난해에는 178억달러에 이르렀다. 공격적인 설비투자와 장비투자로 치킨게임이 시작되면 수요와 공급 균형이 파괴되고, 수퍼 사이클이 종료되면 삼성전자의 핵심 먹거리인 반도체 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수요증가가 기업의 투자확대와 공급과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무리하게 성장과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것 보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의 공략도 문제다. 시스템 반도체에서 몸집을 키운 중국은 최근 메모리 반도체 시장 장악에도 나서는 중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삼성전자 등 국내 제조사들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충분히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중국 반도체 장비 시장도 급속도로 커지면서 한국을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중국 반도체 장비시장은 75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 113억달러로 성장해 112억달러의 대만과 치열한 2위 쟁탈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각국의 견제도 변수다. 지난해 12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현지 삼성전자 관계자를 불러 반도체 독과점 이슈로 면담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동시에 중국 언론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가격 담합설을 흘리며 분위기를 띄웠다.

중국 관영언론인 신화통신은 지난해 12월21일 "D램 가격이 199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IT 매체 전자공정세계도 비슷한 논리를 들어 가격담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글로벌 D램 가격이 치솟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독과점에 따른 가격담합이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일부의 현상만 본 '거짓'으로 결정났지만, 중국 반도체 업계의 국내 제조사 견제를 보여준 적나라한 단면이다.

미국도 반도체 코리아를 견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반도체 패키징 시스템 업체인 테세라는 삼성전자가 패키징 기술과 같은 24개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연방지방법원, 국제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테세라의 모기업인 엑스페리도 삼성전자 반도체 제품이 들어간 갤럭시 스마트폰이 10개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며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압박이 거세질 전망이다.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중소형 OLED 중심의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지만 대형 디스플레이까지 아우르는 시장 장악력은 낮아지고 있다. 당장 TV만 봐도 OLED 진영의 입김이 강해지며 소니가 지난해 4분기 프리미엄 TV 시장 1위를 반짝 차지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LCD에서 OLED로 넘어가는 과도기, 삼성전자가 중소형 OLED 시장을 장악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완전히 방심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하드웨어 생산에 의존하다 위험 커질 수도, 어떻게 탈출할까

삼성전자의 부품 중심 경쟁력, 하드웨어 제조 기반의 존재감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기술력과 각국의 견제 등 다양한 리스크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있다. 종속성이다.

일본의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지난달 18일 애플이 중국 YMTC(Yangtze Memory Technologies)와 낸드플래시 구매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계약이 성사되면 YMTC는 중국 기업 중 처음으로 애플에 낸드플래시를 제공하게 된다. 2016년 7월 설립된 YMTCs는 한 때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인수를 추진했던 중국 반도체 업계 거인인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로 알려져 있다.

애플은 전 세계 낸드플래시 수요의 15%를 차지하고 있는 큰 손이다. YMTC와의 협상은 공급처 다변화를 위한 전형적인 ‘애플식 전략’으로 보인다. 문제는 애플의 전략이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재앙이라는 점이다. 당장 중국 제조업체가 빠르게 생산력을 키우고 있어 전체 낸드플래시 시장의 공급 과잉 현상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며 제작 난이도가 낮은 시장부터 차근차근 공급을 확대하면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끝날 수 있다는 경고음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3D 낸드플래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인텔은 중국 다롄에서 2단계 팹을 확장하고 올해 말까지 3D 낸드플래시 생산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SK하이닉스도 청주의 신규 공장 M15에 투자를 진행하며 96단 이상 3D 낸드플래시 생산에 나서는 한편 도시바는 일본 욧카이치(Yokkaichi) 공장에 이어 기타카미(Kitakami)에 팹7을 설립하며 2019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이 애플의 지원을 받아 시장에 참전하면, 수퍼 사이클 종료는 더욱 빨라진다.

수퍼 사이클의 종료를 원청업체격인 애플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도시바 인수전에 나서기도 했던 애플은 최근 하드웨어 수직계열화 전략은 물론, 하청업체를 두 개 이상 유지하는 전략을 확장시키고 있다.

결국 장비와 시설 점유율을 올려도 선택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하청업체의 정체성이, 장기적으로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 최대이익을 거두며 자축해도, 이를 활용하고 구입해야 하는 원청업체의 전략에 끌어가는 이상 존재감을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하드웨어 동맹군으로 활동하며 제조 인프라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 삼성전자의 과거 역사가 데자뷰되는 순간이다.

▲ 애플이 중국 업체로부터 낸드플래시 부품을 공급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물론 최근 ICT 전자 업계를 보면, 하방산업에서 시작된 ICT 솔루션이 원청업체를 좌우하는 일도 있다. 독일의 보쉬가 부품을 납품하며 자사의 클라우드를 통한 단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이미 시장이 비대하고 정교해진 상태라면, 플랫폼 생태계의 주도권은 상위 사업자가 가져가는 것이 보통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에서 압도적인 실적을 거뒀다고 기뻐할 순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해 하반기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X가 의외로 낮은 판매고를 올리며, 애플에 OLED를 제공한 삼성디스플레이의 실적이 부진하다는 말이 나온다. 같은 타격이지만 애플은 거대 플랫폼을 통해 생태계의 유기적인 전략으로 손해를 메우는 반면, 하드웨어에 매몰된 삼성은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것.

당장은 하드웨어 사업에서 철저하게 수익을 올리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지만, 갤럭시S9의 정체된 하드웨어 폼팩터가 보여주듯 소프트웨어의 발전은 하드웨어의 진화보다 더 급진적인 행보를 보여준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바꿔 말하면 하드웨어 종속성을 벗어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최근 폐막한 MWC 2018에서 모습을 드러낸 스마트시티 기술 중, 업계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일종의 플랫폼이다. 스마트시티 기술을 지원하는 하부요소에 대한 기술도 훌륭했지만, 그 기술들을 모아 큰 그림을 그리는 스마트시티 플랫폼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바를 사용하는 모빌리티 에널리틱스 포 시티를 공개한 노키아와 사물인터넷 액설러레이터를 커넥티브 시티로 풀어낸 에릭슨이 대표적이다. 이제 삼성전자도 '본업에도 충실'하면서 소프트웨어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플랫폼 전략으로, 하드웨어를 비롯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