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쉽게 풀지 못할 문제에 봉착했을 때,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물어보는 것 또는 현재 자기 상황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도 일정 이상의 위로를 받고, 그의 공감에 힘입어 문제를 풀 만한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는 이렇게 느낀다. “별 거 아닌데….”

일상 속 문제는 이렇게 쉽게 해결 가능하거나, 위로받기 쉽다. 늘 자기보다 먼저 그 문제를 겪은 이들의 무용담으로 가득하고, 그래서 한 가지 문제에 다양한 솔루션이 즐비하다. 우리는 그중에 자기에게 적합해 보이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었다.

직장 속 주니어 시절에는 어떤 문제든지 충분히 대응 가능했다. 하는 일의 책임, 그에 따른 무게나 범위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사고를 쳐서 문제를 만들어도 많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지혜가 있는 시니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물어 볼 사람이 충분했기에, 함께 일할 사람들이 자기보다 높은 숙련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진짜 문제는 점차 나이가 쌓이고 연차가 높아지면서, 그 문제를 혼자 해결하지 못한 수준의 문제이거나 또는 함께 해결하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지(衆智)를 모으려고 해도 처음 겪기 때문에 무엇이 진짜 문제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국에는 대부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더 키우지 않으려는 미봉책 또는 더욱 큰 문제로 덮는 것으로 마치 그 문제가 해결된 상태로 놓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문제로 덮거나, 문제를 더욱 키우지 않는 것이 곧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믿게 된다. 그러다가 더 큰 문제가 터지면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자세 말고는 답이 없다.

왜 그럴까를 가만히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행위’ 자체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혼자 해결해왔던 습관으로 계속 혼자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마치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 최고의 솔루션이라고 믿고,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를 알아보지 못했기에 문제를 문제로서 이해하지 못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직장에서 더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모든 조직에서 매년 ‘소통’을 강조하지만, 실제 조직에 그러한 DNA가 없는데도 말로만 그렇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표면적인 소통이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할 사람을 찾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소위 물어볼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의 책임과 그에 따른 무게가 자기를 짓누르고, 그렇게 문제를 덮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게 곧 생존의 방법이라고 여기고 그렇게 살아간다.

애석하게도 그건 생존이 아니다. 오히려 연명에 가깝다. 그저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성장을 위한 생존이 되어야 하는데, 진짜 실력이 늘기보다는 당장의 눈에 보이는 성취를 늘리기 위한 수단의 숙련도만 증가한다.

그래서 늘 물어볼 상대가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시니어도 주니어도 마찬가지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이라도 좋다.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위해 마음을 열고, 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누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우선 우리 목적을 우선적으로 피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늘 코칭을 받는 사람들에게 본인이 몸 담고 있는 업계에서 꼭 롤모델뿐만 아니라, 멘토, 코치, 선생님, 교수님 등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놓으라고 신신당부한다. 간혹 없다면 필자가 임시방편으로 되어주기까지 한다. 그들을 곁에 두고 수시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현 상태에 가게 되었고, 혹시 필자에게도 같은 시절이 없었는지도 살펴보고 어떤 노력을 통해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물어볼 상대가 있어야만, 그(녀)에게 물어보기 위해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고, 그러한 움직임만으로도 스스로가 성장할 기회를 잡고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성공공식을 그대로 따라서 해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종의 표석 또는 지향점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성장을 위해 그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연락을 끊는 얌체 같은 짓은 용납할 수 없다. 상부상조의 목적을 가지고, 자기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일정한 관계 속에서 부끄럽지 않은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면 된다.

기업들의 현장 속 역멘토링도, 보다 진실된 소통을 위한 움직임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생존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들의 생존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물어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면서 아는 척 하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물어보는 분야, 상대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배움을 위한 목적성과 유연성이 오래도록 생존을 꿈꾸는 우리 모두에게 더욱 필요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