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미투’선언은 법조계를 넘어 문화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2002년 이후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던 고은 시인은 최근 최영미 시인이 쓴 시 ‘괴물’을 통해 후배 여자 문학인들에 대해 상습적으로 강제 추행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또 ‘연극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던 이윤택 연출가 역시 그로부터 피해를 당한 연극인들의 잇따른 ‘미투’선언으로 십 수 년 전 자신이 대표로 있던 연희단거리패 여자 단원들을 상대로 한 강제 추행 및 강간 등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 지난 19일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계 내 ‘거장’들의 ‘갑질’ 성폭력에 대한 피해자 및 대중의 분노와 충격은 여전히 가시지 않아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두 사람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일까.

형법상 강간, 강제추행, 간음에 해당하지만...'친고죄' 난관   

우선 사실관계부터 살펴보면, 현재 수면 위로 드러난 두 사람의 성 범죄는 형법상 강간(제297조), 강제추행(제298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제303조)에 해당한다. 현행법에 따른다면, 이들의 강제추행에 대해서는 형법상의 강제추행이 아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특례법) 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제10조)이 우선 적용될 수도 있지만, 위 특례법은 2010년에서야 입법된 것인 만큼 그 이전에 발생한 범행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건의 발생시점도 문제다. 현재 두 사람이 범한 것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건은 대부분 십 수 년 전에 발생한 것이고, 이 당시는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이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별도의 고소 없이도 직권으로 검찰이 조사를 개시할 수 있는 현행 제도와 달리 반드시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정식으로 고소장을 접수하여야만 비로소 수사가 시작된다. ‘미투’ 선언을 한 것 자체를 고소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나, 고소는 ‘수사기관’에 대하여 소추·처벌을 요구하는 적극적 의사표시이어야 하므로, 단순히 범죄피해 사실이 발생하였음을 언론과 대중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욱이 친고죄가 적용되는 성폭력 범죄는 구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고소해야 한다는 규정(제19조)을 두고 있어 현 시점에서 피해자들이 고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개시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너무 늦은 '미투' 운동...공소시효 '7~10년' 완성돼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각 범행에 대한 공소시효 자체가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처벌가능성과 관련해서는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한데, 형법상 강간은 3년 이상의 징역, 강제추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하여, 각 범죄의 공소시효는 각 10년, 10년, 7년에 해당한다(형사소송법 제249조 참조). 그러나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기 전에 발생한 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각 7년, 7년, 5년이어서 십 수 년 전에 발생한 두 사람의 성범죄는 이미 2010년 이전에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어 어느 모로 보나 처벌이 불가능해 보인다.

너무 늦어버린 ‘미투’선언은 민사적인 책임 추궁과 관련하여서도 문제가 된다. 두 사람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형사적 처벌과 별개로 이들의 불법행위(민법 제750조)에 대한 민사적 책임, 가령 위자료 청구도 가능하지만,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발생사실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간 행사해야 하는 만큼 손해발생 시점이라 할 수 있는 각 범행 시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현 시점에서는 청구가 불가능하다. 이른바 불법행위 채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된 것이다(민법 제766조 참조).

결론적으로 피해자들로서는 자신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가해자들에게 민형사상의 책임 어떠한 것도 묻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보는 입장에서는 왜 진즉에 문제 삼지 않았느냐며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피해자들이 왜 이제야 ‘미투’선언을 하게 됐는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라도 왜 진즉에 그들의 목소리에 관심 갖지 않았느냐는 비난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