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한국GM이 국내 시장 철수를 앞두고 중대 결정을 내리겠다는 2월 말 시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정부와 GM은 이번 주 내로 본격적인 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GM 본사는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라는 강수를 내던진 상태다.

그러나 한국GM 경영실사수용과 투자계획 제시 등 GM은 선결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와 GM측간 협상 테이블은 치열한 공방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은 벌써 실사의 시기와 방법 등에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19일 산업은행과 업계에 따르면 양측은 본격적인 실사에 앞서 실사 시기와 범위, 방법 등을 정하기 위해 협의 중이다. 이번 실사는 정부와 산업은행이 한국GM의 경영상황을 확인하고 GM 본사와 정상화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진행됐다.

GM “협상 결과에 따라 중대결정 발표할 것”

앞서 배리 엥글 GM 총괄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13일 한국GM 군산공장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엥글 사장은 “한국GM과 주요 이해관계자는 사업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를 해야 한다”면서 “2월 말까지 한국GM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이해관계자와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GM은 군산공장 폐쇄 이전에 정부에 여러 지원책을 요구해 왔다. 엥글 사장은 최근 방한해 우리 정부에 지원을 요구한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답변을 거절했다. 그러자 엥글 사장은 “글로벌 신차 배정을 위한 중요한 갈림길에 있다”면서 “한국GM의 경영 정상화와 관련해 지엠이 다음 단계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이달 말까지 한국 정부, 노동조합, 주요 주주 등 이해 관계자와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후 엥글 사장은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GM이 국내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자리와 신차물량 배정을 무기로 한국 정부와 노조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GM은 지난 2013년부터 실적이 부진한 해외사업부를 정리해왔다.

GM측 요구사항은 자금 지원과 세금 감면 혜택 등이다. 한국GM의 최근 4년간 적자 규모는 2조6000억원이다. 이에 GM은 한국GM 정상화를 위해서는 약 3조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필요하며 여기에 산업은행이 5000억원 이상 공적자금을 투입해달라는 입장이다. 한국GM은 GM본사가 77%, 산업은행이 17%, 중국 상하이차가 6%의 지분을 갖고 있다. GM은 또 정부에서는 세금감면 혜택을 추가로 요구하면서도 노조에는 임금 조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M측은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2월 안으로 부평공장 철수뿐 아니라 한국 철수도 불사르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댄 암만 GM 사장은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 그리고 노조와의 협상 결과에 따라 몇 주 안에 한국 내 다른 공장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시간이 없고 모두가 긴박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실사 카드 빼든 한국 정부

한국 정부는 “한국GM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지속해서 협의해 나갈 것”이라며 GM측과 협상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한국GM의 경영 상태에 대한 투명한 실사와 GM의 신규 투자 계획을 먼저 내놔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GM이 운영자금 부족과 관련해 여러 의혹을 사 왔기 때문이다.

의혹을 받는 고금리 대출은 한국GM이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GM관계사에 462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한 부분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 차입금 이자율의 2배가 넘는 연 5%가 넘는 이자율이 적용됐다.

이복남 금속노조 한국GM지부 부지부장은 “국내 기업이 운영하면서 대출을 받는 이자는 적게 0%에서 많게 3% 정도”라면서 “그런데 한국GM은 GM홀딩스라는 금융 자회사에서 이자를 5.3~5.7%대로 빌려온다. 시중보다 2배 정도의 이자를 냈고 이게 4년간 4800억 정도”라고 설명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바른정당 지상욱 의원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국GM 이자율은 국내 완성차 업체의 차입금 이자율(기아자동차 0.19~2% 중반·현대자동차 1.49~2.26%·쌍용자동차 0.3%~3.51%·르노삼성자동차 0%)의 2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국GM은 국내 은행권이 대출을 거절한 데 따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연구개발 비용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GM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누적적자보다 많은 1조8580억원을 연구개발 비용으로 지출했다. 그런데도 GM은 한국GM에 신차를 단 한 대도 배정하지 않았다. 한국GM은 연구개발비를 보수적으로 비용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위원장은 "한국GM이 지출한 연구개발비 가운데 상당액은 미국에서 주로 생산 판매되고 있는 전기차 볼트 관련 기술개발비로 추정된다"면서 "노조측이 여러차례 기술개발비 사용내역 등 회계자료를 요구했으나 사측은 묵묵부답이어서 현재 모든 것은 추정일 뿐 확실히 밝혀진 것은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측은 현재 높은 임금으로 인해 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동안 파이낸싱이나 연구개발비 사용내역 등은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에 지원금 요청을 하는 것 보면  사측이 지나치게 후안무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GM은 그간 부품을 고가에 수입해 반제품(CKD) 형태의 차량을 만들어 수출했다. 이때 원가 수준의 싼 가격으로 팔아 매출 원가율이 90%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한국GM의 반제품 수출은 차량 대수에서 완성차 내수·수출 판매와 맞먹는다.

정부는 한국GM에 이러한 의혹을 검증할 수 있는 116개 자료 제출을 요청했으나, 한국GM은 6개 자료만 제출해서 점검에 난색을 보였다. 한국GM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 등으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은 지난 2014년부터 누적된 적자에도 경영간섭은 물론 경영자료도 산은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정부는 먼저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GM측과 협의해 경영 실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한국GM에 대한 실사가 끝나는 대로 정부가 대출, 증자 등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한국GM이나 GM본사가 경영실사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고금리 대출 등 각종 의혹도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GM측은 경영실사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3일 “정부 지원 여부는 GM이 어떤 내용의 신규 투자 계획을 들고 오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GM이 한국GM에 대한 신규 투자를 하더라도 무조건적인 정부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장관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에 대해 "군산은 지난 3년간 가동률이 한 20%였기 때문에 저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 군산공장 폐쇄도 하나의 시나리오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산공장 폐쇄는 충분히 이해하고 외국인투자기업이 한국에 와서 최소한의 이윤 구조를 가져가는 방향이 물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렇지만 전체적인 경영의 투명성이나 경영개선의 방향도 같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GM 협력업체 모임인 협신회의 문승 부회장은 이날 인천시와의 간담회를 통해 “협상은 GM과 정부 간 문제”라며 “협력업체인 우리가 구체적 요구 사항을 말할 순 없지만 빨리 협상이 이뤄져 공장이 정상 가동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문 부회장은 “한국GM은 정부에서 제대로 지원해준다면 부평공장에도 연간 300만대 이상을 판매할 수 있는 신차를 가져오겠다는 것”이라며 “신차를 계속 가져와서 개발해야 협력업체가 살 수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아울러 정부 협조나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GM 부평공장이 축소될 경우, 협력업체에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며 공장 축소는 폐쇄와 다를 바 없다고도 강조했다.

2016년 사업보고서 기준 한국GM의 고용 인력은 모두 1만6031명이다. 매출 100억원이 넘는 1081개 자동차 관련 업체 전체 직원 수(33만5745명)의 4.8%에 이른다. 여기에 한국GM과 거래하는 협력업체(1~3차) 수가 3000여곳이나 된다.

인천시는 이날에 이어 오는 22일에도 한국GM 노조 집행부와도 간담회를 마련하는 등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에 따른 피해 최소화 방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