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초 삼성전자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사안이 화제가 됐다. 언론과 여론은 쉽지 않았을 그 결정에 지지를 보냈다. 새로 출시한 스마트폰 폭발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자 ‘전량 신제품으로 교환하거나 제품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환불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종이라는 극약 처방을 했지만 말이다.

이 결정 하나로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100만대 이상 팔려 나간 뒤라 대당 100만원씩만 잡아도 1조원이다. 교환이나 환불에 따르는 절차적인 비용 또한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이었다. 게다가 일련의 폭발 사건으로 인해 주가나 신용도의 하락으로 날아간 돈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금전적 위기는 신뢰로 극복돼도, 신뢰 위기는 돈으로 안 돼

하지만 반대로 이를 통해 엄청난 무형적 가치를 쌓았다는 측면도 있다. ‘사람들에 대한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삼성전자 측에 따르면 그 제품의 불량률은 100만대 중에서 24대 정도로 0.0024% 수준으로 작으면 작다고 할 수 있지만 전체 물량 교환, 환불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언론에서 이런 상황을 놓고 한 말 중에 ‘돈이 부족해 발생한 위기는 신뢰로 회복할 수 있지만 신뢰를 까먹어 생긴 위기는 돈으로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이 눈에 띈다(9월 9일자 중앙일보 사설). 하지만 이런 대처에도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20세기가 낳은 천재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만큼 유명한 명언들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우주와 인간의 어리석음, 그 두 가지가 무한하다. 그런데 우주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끝이 없어 보이던 우주도 이제 그 한계가 드러날 것도 같은데 인간의 어리석음은 아직도 밑도 끝도 없다는 의미다.

조직이든 사람이든 일을 하면서 잘못된 점이 발견될 때는 꼭 일이 70~80% 정도 진행되었을 때다. 끝이 보이려 하는 시점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점, 인간의 속성상 숨기고자 하는 것이 일차적인 반응이다. 이미 많은 돈과 사람 그리고 시간이 투자된 뒤라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들어간 비용 한 푼 두 푼에 벌벌 떨어야 하는 기업 입장이라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예전 회사에서 계속 고민거리로 가지고 있던 사안이 하나 있었다. 이미 새 공장을 지어서 이전한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예전 공장 부지와 관련된 문제들이 계속 속을 썩였다. 1970년대 당시는 개인이나 회사는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도 환경 의식 수준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웬만한 공장 폐기물이나 쓰레기는 태워서 공장 마당에 파묻기도 했다.

그 땅을 보유하고 있을 때는 별 문제 아니었는데, 팔려고 보니 땅속에 묻혀 있던 폐기물이 마음에 걸렸다. 매각되면 틀림없이 개발이 진행될 텐데, 자칫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결국 회사는 부동산을 팔아서 빚을 갚아야 하는 딱한 상황이었음에도 비싼 돈 들여 폐기물부터 처리해야 했다.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필자는 줄리아 로버츠의 팬이어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 몇 편은 아예 비디오 테이프를 샀다. 첨에는 그녀 때문에 봤지만, 영화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에 놀랐고, 당시 3억3300만달러라는 배상금 규모로 단일 사건 최대 금액에 두 번 놀랬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정식 변호사도 아니고 로펌의 기록조사관에 불과했던 여성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1996년 미국 서부의 에너지기업인 ‘퍼시픽 가스 앤드 일렉트릭(Pacific Gas and Electric, PG&E)’이라는 회사에서 압축공장의 부식을 막기 위해 오랫동안 냉각탑에 발암물질인 ‘중크롬 (Hexavalent Chromium)’을 첨가해 왔는데, 이것이 지하수에 침투되어 주변 주민들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를 유발한 데서 시작됐다. 이 문제가 세 아이를 키우는 법률회사 기록조사관에 불과했던 에린 브로코비치에 의해 소송으로 간 것이다.

그 회사는 중크롬이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조직적으로 숨겼다. 의사들도 한통속으로 암에 걸리고 병이 생겨도 중크롬과 무관하다며 진실을 은폐했다. 결국 에린이 결정적인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당시 자산규모 28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대기업을 굴복시켰다.

 

기업에 돈은 절대적이지만 돈에도 非情의 자세가 필요해

이 영화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힌 사건이 국내에서 벌어졌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이른바 ‘옥시 사태’다. 1994년 당시 유공(현 SK케미컬)에 의해 세계 최초로 폴리헥사메틸구아니딘(PHMG)이 가습기 살균제로 개발됐다. 2011년에 처음으로 피해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지만, 2016년까지 옥시를 포함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전국적으로 접수된 피해자가 무려 5226명, 사망자는 1092명의 초대형 인재는 충격이었다.

가습기 살균제를 ‘옥시’라는 브랜드로 국내에 가장 많이 공급한 회사가 ‘옥시레킷밴키저’로 ‘레킷벤키저’라는 영국계 기업이다. 살균제 PHMG가 유독성 물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느 기업도 성분 표시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종 향을 첨가해서 안전한 제품인 것처럼 광고하며 가정 깊숙이 파고들었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인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제품 표면에는 ‘가습기 청소를 간편하게~, 살균 99.9%-아이에게도 안심’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필자 역시 이를 잠깐 사용한 적이 있었다. 둘째 아이 출산 직후 몇 번 사다가 가습기에 넣었던 적이 있는데, 게을렀던 탓에 구입해 두고도 가습기에 한두 번 정도 넣어 쓴 것이 다였다. 그 게으름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렇듯 가습기는 환자나 아기가 있을 때 더 많이 사용하기에 국민적 분노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제조공급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유해하다고 알고 있었는데도 속여왔다. 이제는 어디서건 옥시라는 이름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기업에 있어서 돈은 절대적인 문제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도 하고, 자산이나 계열사도 내다 판다. 구조조정을 위해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나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회사와 함께 사람들을 넘긴다는 의미는 같다. 조직 전체가 살아 남는 것이 우선이기에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피할 수 없다. 일본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대선(大善)은 비정(非情)’이라 했다.

지킬 것은 지켜야 하고, 보편 타당한 상식선을 넘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막 입사한 신입사원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는다든지 여직원을 결혼했다는 이유로 퇴사 조치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다.

비용문제를 대리점주들에게 전가해 조금이라도 손실을 적게 보려는 비겁한 수를 보인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비용을 줄이려 했던 모 유업체는 그해 매출은 10%가 줄고 영업이익은 85%나 급감하면서 업계 1위의 자리를 만년 업계 2위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인 손실은 물론 기업과 브랜드 이미지에도 치명적으로 금이 갔다.

예전에는 기업과 관련한 부정적인 이슈들은 잠시 관심을 받다가 이내 잊히곤 했다. 때문에 사건이 처음 벌어졌을 때는 뜨거워진 냄비처럼 끓어오르다가도 금새 식었다. 기업도 처음 관심이 몰릴 때만 잠깐 납작 엎드려 있으면 금새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소비자들이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기도 하지만, 그들 개개인은 또 다른 뉴스 생산 공급자 역할도 한다. 기업과 제품에 대한 실질적인 감시자가 됐다. 국내 기업이건 외국 기업이건 이런 수많은 감시자들의 눈과 귀를 더 이상은 벗어나기 힘들다. 예전처럼 잠깐 동안 태풍이 지나간 뒤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구태를 재연할 수가 없다.

기업 밖에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영향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기업이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기업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걸어가야 하는 운명이다.

결국 삼성전자는 하반기 프리미엄 스마트폰 신제품을 출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단종을 결행했다. 정면돌파 의지를 불태우며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가 감당해야 할 규모는 우선 당해 분기에 최대 2조원의 영업손실을 반영했다. 하지만 심각한 브랜드 가치 훼손 및 이에 따르는 유무형의 피해를 업계에서는 얼추 20조원으로 추산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과정에서 보여준 조직의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최고 경영자에게까지 이어지는 여론의 질타다.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그득했다. 임직원들의 오랜 신제품 개발 노력이 허사가 됐고, 사태 직후 보여준 허술한 조직력, 금쪽 같이 키워온 브랜드 가치의 상실분은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다. 잘해보려고 하다가 보따리 뺏기고 길 잃고 헤매다가 뺨 맞은 격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의 삼성전자보다 미래의 삼성전자를 더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일이든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해결해야지, 그동안 들어간 비용이 아까워서, 또는 남들은 모르겠지 하고 방치했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불도저로도 막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결국에는 돈도 곱절로 들어가고 뺨은 뺨대로 맞고 두고두고 욕을 먹게 된다.

해군의 한 간부가 사병들을 지도하면서 했던 말 중에서 충격적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배에 물이 차오르고 있어 함실의 문을 즉시 닫아 걸어야 하는데, 전우 한 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전우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틀렸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전체 함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전우를 남겨두고 문을 닫아 걸어야 한다. 한 명의 전우보다는 함정 전체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전우애라 할 수 있는데, 전체 함정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전우도 단호하게 버려야 한단다. 마찬가지로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한 조직이라 돈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조직의 문제에서는 제일 먼저 버릴 것이 돈이라는 단호한 자세도 때로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