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헬스클럽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말이 있다. 저렴한 가격에 정기권을 배포해 많은 고객을 확보하지만, 실제 고객들이 찾아오도록 적극적인 유인활동을 펼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정기권으로 수익을 확보한 후 실제 고객들의 참여를 유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득을 얻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몸짱이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마음으로 헬스클럽 정기권을 결제하지만, 막상 별로 가지 않았던 우리의 나태한 마음을 연상하면 '그럴듯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장면. 출처=픽사베이

헬스클럽 비즈니스 모델은 온디맨드 서비스와 관련이 있는 월정액 비즈니스 모델로 여겨진다. 그런데 최근, ICT는 물론 다양한 산업에서 새로운 방식의 월정액 비즈니스 모델이 부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헬스클럽 비즈니스 모델을 정면으로 부정하지만 방식은 유사한 독특한 발상이다.

글로벌 OTT(오버더탑) 서비스인 넷플릭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넷플릭스의 강점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개인화 큐레이션 전략, 폭식시청을 유도하는 시청패턴의 변화 등 다양하지만 월정액 비즈니스 모델의 매력도 상당한 편이다. 건별로 VOD를 결제하는 방식이 아닌, 월 얼마의 돈을 내면 무제한으로 VOD를 시청할 수 있게 만들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가입자가 많아지면 구독료 수익이 올라가기 때문에 유리하지만, 많은 고객이 몰릴경우 데이터 트래픽 인프라 강화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진다. 그런 이유로 헬스클럽 비즈니스 모델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1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면서 한 달에 몇 번 들어와 영화 한 편 보는 것으로 끝난다면 유지비용 등을 고려하면 넷플릭스는 '남는 장사'를 하기 때문이다.

▲ 넷플릭스가 구동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그런데 넷플릭스는 정반대의 접근법을 보여준다. 최대한 고객들이 넷플릭스 플랫폼에 머물며 드라마와 영화를 시청하도록 유도하며,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통해 알고리즘으로 계산된 사용자 경험까지 제공한다. 하나의 시즌을 통째로 업로드해 고객들이 10시간 넘도록 넷플릭스의 바다에 빠져 헤엄치기를 바란다.

넷플릭스의 전략은 헬스클럽 비즈니스 모델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객들이 넷플릭스 플랫폼에 들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며 특정한 시청패턴을 기록할수록 넷플릭스 생태계는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헬스클럽 비즈니스 모델로 '운에 모든 것을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빅데이터 확보를 통한 플랫폼 생태계 팽창을 택한 셈이다.

넷플릭스는 광고없이 운영되는 OTT 서비스다. '구독자 증가-고객의 증가-생태계 팽창'의 길을 택한 넷플릭스의 전략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넷플릭스의 전략을 오프라인 극장체인으로 가져온 것이 바로 미국의 무비패스 서비스다. 월 9.95달러만 내면 한 달 내내 무료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시청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월 최대 50달러이던 요금을 파격적으로 내린 결과 최근 200만명 가입자를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무비패스의 성공은 월정액 비즈니스 모델이 생활밀착형 서비스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는 점을 증명한다. 외식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며 특별한 날 '마음 먹고' 영화관에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월정액을 내고 영화를 온디맨드 VOD 서비스처럼 즐기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영화관의 문턱이 낮아지고 많은 고객이 유치되면 무비패스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데이터다. 무비패스는 고객의 영화 관람 패턴을 분석해 이를 마케팅 회사에 판매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무비패스의 데이터를 취합한 마케팅 회사는 영화 제작사에게 영화 제작 여부, 상영시간, 티켓 가격 등 다양한 조언을 할 수 있다.

물론 월정액 비즈니스 모델이 모두 빅데이터 취합만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니다. 원가가 낮은 제품의 고정매출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일본 도쿄의 커피 전문점 '커피 마피아'는 월 2000엔을 내면 1잔에 200엔하는 커피를 1회당 1잔 제한으로 무제한 마실 수 있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1회 1잔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하루에 여러 번 방문해도 무방하다. 커피의 원가가 낮은데다 하루 수십 잔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드물다. 커피를 무료로 주문하며 그와 곁들일 수 있는 도넛 등을 함께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자 입장에서도 만족도가 높다. 데이터 확보와는 관련이 없지만, 원가와 서비스의 특수성을 비롯해 파생 유료 서비스 결합 가능성에 주목한 시스템이다.

국내에도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소셜커머스 위메프가 운영하는 W카페다. 한 달 2만9000원을 내면 아메리카노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 3시간 동안 1잔만 주문할 수 있으나 일본 커피 마피아와 비슷한 노림수를 가지고 있다.

▲ w카페 무제한 서비스. 출처=위메프

뷰티 스타트업 미미박스도 비슷한 월정액 서비스를 하고 있다. 특정 화장품 회사와 제휴를 맺고 맞춤형 화장품 세트를 고객에게 보내는 방식이다. 무제한은 아니지만 월 계약을 맺고 화장품 세트를 제공하기 때문에 브랜드와 고객 모두 만족도가 크다.

2017년 초 문을 연 불레틴은 온라인 브랜드와 디자이너에게 매장 공간을 월 단위로 빌려주는 플랫폼 사업을 전개해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월정액 비즈니스의 등장은 온디맨드와 공유경제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에서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고, 전통적인 박리다매 전략은 물론 빅데이터 취합과 운용에도 활용될 수 있다. 강력한 플랫폼이 중심에서 작동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월정액 비즈니스 모델이 구독형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하는 대목이다. 건별로 결제하는 방식까지 포함해 고객에게 직접 콘텐츠와 상품을 전달하는 방식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화된 큐레이션 전략의 발전이 월정액 비즈니스 모델과 만나며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만들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