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회사에서 큰 소송을 하고 있는데요. 언론과 온라인에서 이와 관련해 여러 논란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입장문을 써야 하는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법정에 제출했던 변론서 내용을 편집해서 입장문에 넣어볼까 합니다. 괜찮겠죠?”

[컨설턴트의 답변]

상당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변론서라는 것 자체를 그나마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사건의 자초지종이 잘 정리되어 있고, 우리 측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송의 특성상 분명 상대방이 존재합니다. 만약 언론과 온라인에서의 논란도 그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그 상대방의 주장이 일부 또는 상당 부분 언론이나 온라인 공중을 자극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사의 변론서를 한번 봅시다. 우리 측의 주장이 들어 있어서 그러한 논란에 맞선 우리의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변론서를 읽어 보거나, 상대방 입장에서 읽어 본다면 받아들여지는 사실관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원래 변론서란 그런 것입니다.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들어 있습니다. ‘상대방이 틀리고, 우리가 맞다’는 내용입니다. 거기에 또 법적 다툼의 입장이 들어가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의 행동에는 상대방 측에서 주장하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요지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는 법적 문제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상대방의 것과 상당 부분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차이가 법정에서는 다툼의 소재가 되곤 합니다. 재판장이 비교해서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절차를 거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리 큰 문제는 없어집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안정적이지 않은 변론서를 그대로 줄여 자사의 공식 입장문에 싣게 된다면, 앞서 이야기한 여러 사실관계의 차이와 상대방 주장에 대한 공격성은 그대로 포함되게 됩니다. 최초 상대방이 원했던 논란을 줄이기보다 더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원래 소송이 진행 중인 법정과 별도로 여론의 법정이 하나 더 차려져, 여기에서도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프로세스가 더해집니다.

기업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입장문을 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변론서 기반의 입장문을 내면 그 목적은 물 건너 가게 됩니다. 여러 다툼의 여지를 가지고 다시 여론의 법정에서 논쟁을 시작해야 할 뿐입니다. 상대방은 그 차이와 다름에 대해 다시 반박할 것입니다. 그에 대해 기업 측에서는 다시 한 번 그에 대한 재반박을 고안하게 됩니다. 끝없는 공방이 의미 없이 지속됩니다.

보다 성공적인 입장문은 언론 및 온라인 공중의 입장에서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포함된 것이어야 합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와 상대방 둘 중 누가 맞고 틀리고를 알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과 직접 상관이 없는 논란이면 더더욱 기업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주목합니다. 만약 기업이 생각보다 공손하고, 배려 깊고, 괜찮은 생각과 원칙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면 논란은 상당 부분 해소되거나 급속히 사라집니다. 기업 입장문의 목적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죠.

소송 관련 논란에 있어서는 최대한 간단하게 소송 내용에 대한 핵심을 정리한 후, 그에 대해 자사의 입장을 담담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와 함께 언론이나 온라인 공중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으로 대부분을 채우는 것이 전략적입니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입장으로 삼는 그 프로세스가 전략적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