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집행유예 형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을 두고 찬반 여론이 뜨거운 가운데, 이 부회장의 운명을 결정지을 대법원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에서 특검과 이 부회장측 변호인이 다투게 될 주된 쟁점은 ‘채증법칙 위반’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채증 법칙`은 법관이 사실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증거를 선택할 때 지켜야 할 논리칙과 경험칙을 의미한다.

예컨대 목격자가 구름 낀 날 심야에 달빛 아래에 있는 범인의 얼굴을 뚜렷이 봤다면 그 진술을 증거로 선택하는 것은 채증법칙에 위반된다. 경험칙상 범인을 뚜렷이 볼수 없는데도, 진술을 증거로 채택했기 때문이라는 것. 반대로 당연히 선택해야 할 선명한 증거를 선택하지 않은 것도 채증법칙에 위반된다.

대법원 상고이유는 사실관계를 새롭게 주장하거나 다툴 수 없고 법률관계만을 다툴 수 있다. 채증법칙 위반은 대법원 상고이유 중 하나다.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항소심 재판부가 안종범 전 청와대경제수석과 김영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채증법칙에 위반됐다는 주장을 특검이 제기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남근 부회장(법무법인 위민)는 “항소심이 경영권 승계의 현안이 없었다거나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인에는 핵심적 증거인 안종범과 김영환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인한 것”이라며 “이 증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대법원 상고이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안 전수석은 이 수첩에 대해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수석으로 근무하면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매일매일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적은 것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안 전수석의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뿐 아니라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간 대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항소심은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모두 부인했다.

앞서 특검은 판결 직후 “항소심 판결은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유죄판결을 선고한 국정농단 사건(이대 입시 비리, 차은택, 안종범 뇌물사건, 김종, 장시호 사건)과 다른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상고이유로 거론되는 또 하나 쟁점은 ‘사실인정’ 부분이다.

사건의 사실관계는 대법원 재판의 대상이 아니지만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판단 방식은 대법원 판단 대상이다. 즉 채증법칙에 위반해 사실관계를 잘못 확정하고 그 사실관계를 근거로 판결을 했다면 대법원의 상고이유가 된다.

김 변호사는 “부정한 청탁과 관련해 1심 법원이 개별 현안마다 부정한 청탁을 판단하지 않고 포괄적인 현안으로 뭉뚱그려 판단한 점도 잘못이지만 2심은 더 나아가 특검이 제출한 증거를 부정해 포괄현안은 물론 부정한 청탁도 없다고 판단했다”며 “재판부의 이 같은 사실인정은 채택해야 할 증거를 채택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관해 일부 법조인은 부정적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법무법인 천율의 이용운 대표변호사(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는 “뇌물죄에서 말하는 ‘부정한 청탁’은 어떻게 보면 법률 해석의 문제이고, 또 다르게 보면 사실관계의 문제”라며“대법원이 사실관계로 판단하면 이 점에 대한 상고는 기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석방, 대법원 재판 화근 될 수도

법조인 중 일부는 이 부회장의 석방이 법원 재판에 꼭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대법원이 불구속 재판인 점을 감안해 상당 기간 사건을 끌고 갈 경우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구속 사건의 경우 대법원이라도 법률에 정해진 구속 기간안에 판결을 해야 하는 만큼 기간의 압박을 받게 되지만, 불구속 사건의 경우에는 장시간 사건을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그 기간에 안종범 수첩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다른 사건들이 대법원으로 집중된다면 재판부가 이 점을 간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이 변호사는 “대법원 대법관중 양승태 대법원장이 제청한 4명의 대법관 임기가 올해로 만료된다”며 “새로 임명된 대법관이 진보적 성향을 갖는다면 이 부회장의 사건은 다시 긴 터널을 지날 수 있다”고 말했다.

6년 임기인 대법관은 지난 2012년 8월 임명된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은 오는 8월 만료이고, 김소영 대법관인 11월 만료된다.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와 교수가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지난 6일 서초동 민변 대회의실에서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판결에 대한 규탄 긴급 기자 간담회’를 갖고 판결의 내용을 비판했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전국금속노종조합 법률원의 노종화 변호사(법무법인 여는)“이재용을 위한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건과 관련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의 행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고 비판했다.

항소심의 판결이 평등권을 침해해 위헌적이라는 비판도 가해졌다. 서강대 법학대학원 임지봉 교수는 “이 부회장의 삼성 재벌총수 승계자, 즉 ‘부자’라는 지위는 헌법 11조가 금지하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며 “항소심의 판결은 사회적 신분을 필요 이상으로 고려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가혹하게 중형을 선고한 소규모 기업의 임직원들과 비교해 현저한 차별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