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새로운 기술이 나와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당연히 좋다. 문제는 그 서비스가 등장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 문제지.”

 

최근 사석에서 들은 말이다. ICT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최근 정치물을 조금 먹은 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철저한 시장주의자에서 신중한 중재자로 변했다. 그는 기자들의 역할에도 나름의 주문을 했다. “화려하고 신기한 기술, 특히 이상적으로 보이는 기술들이 당장 사회에 적용되면 좋을 것 같지? 그런 기술은 세상에 없어. 어디든 피해가 생기거든. 기자들도 잘 판단해야 해. 진보만 추구하다가 그 아래에 밟혀 죽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카풀앱과 핀테크 시장을 둘러싸고 규제 개선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IT 스타트업 업계는 이구동성으로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열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행사에 모인 100여명의 스타트업 관계자들도 이 부분을 우선적으로 지목했다. 카풀앱 풀러스를 운영하고 있는 김태호 대표는 “필요하다면 특별법을 제정해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규제 개혁은 양날의 칼이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무리한 규제 개혁은 ‘사회를 좀먹을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글에서 규제 개혁에 대한 이야기는 빼겠다. 그보다 더 내밀한, 규제 개혁의 뒤에 숨은 우울한 그림자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최근 여의도 정계는 사실상 본격적인 지방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당이 합쳐지거나 갈라지고, 중요 정치인들의 행보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이다. 그 연장선에서 국민의 마음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문제는 규제 개혁의 당위성과는 별개로, 장기적 관점에 진지한 고민도 없이 포퓰리즘과 비슷한 분위기가 ‘규제 개혁 담론’에 스며드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드는 점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카풀앱 시장을 보자. 현행법으로 보면 카풀의 유상운송은 금지되어 있으나 운행시간에 대한 기준은 모호하다. 그 모호한 기준에 대한 확실한 가이드라인 설정과 ICT 기술의 발전, 이에 따른 기존 택시업계의 피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생을 찾는 것이 방법이 아닐까? 그런데 국회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오로지 택시기사들의 입장만 반영된 개정안 발의만 쭉쭉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ICT 뉴노멀 법안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한쪽의 의견만 듣고 포털에 대한 전방위적 규제에 나서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규제를 강화하는 것과 풀어버리는 것 모두 중요하다. 신중해야 하며 당연히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핀테크, 카풀앱, 포털, 배달앱 등 ICT 기술의 발전으로 판이 바뀌고 있는 시장의 최근 상황을 보면 대부분 ‘규제’로 가닥이 잡히는 중이다. 이를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더 많은 유권자가 해당된 집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면 너무 나간 해석일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규제 개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빠져 있는 느낌이다. 100미터 달리기 경기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90명일 때, 뛰어가는 사람이 10명이라고 생각해보자. 걸어가는 90명은 뛰어가는 10명을 이길 수 없다. 이럴 때 100명 모두 달릴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무리한 달리기에 대한 신체적 고통 등을 종합해 더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의 행태는, 90명의 걷는 사람들을 위해 10명의 달리는 사람 발목을 걸어 넘어트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부디 이런 행태가 90명이 가진 표 때문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와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좋지만, 그 서비스가 등장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