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우리는 어떤 은행이라도 지속적이고 만연한 불법행위를 용인할 수 없다. 웰스파고 때문에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강력하고 포괄적인 개혁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전 의장은 지난 3일 의장직에서 물러나며 마지막 용단을 내렸다. 그는 성명서를 통해 미국 최대 상업은행인 웰스파고의 총자산을 동결하고 이사진 4명의 교체를 명령했다. 4년간의 짧은 임기는 끝났지만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옐런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최근 부정부패와 비리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금융권에도 그 의미는 적지 않을 터다.

지난해 우리은행 특혜 채용으로 불거진 은행권 채용비리 문제는 해가 바뀌고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대검찰청은 5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 2개 시중은행과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등 3개 지방은행의 채용비리 수사 참고자료를 넘겨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금융사 지배구조 논란 역시 해를 넘어 계속되고 있는 논란 중 하나다. 지난해 불거진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놓고 금감원은 회장 선임절차를 중단하라는 권고에 이어 적격성 심사 등을 통해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금감원 적격성 심사에서 결격사유가 발견되면 김 회장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임될 수도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과 올 1월 진행한 검사에서 채용비리 의심 22건을 적발했고 의혹이 확인된 5개 은행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채용비리 의심 사례는 KEB하나은행이 13건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과 대구은행이 각각 3건, 부산은행이 2건, 광주은행은 1건이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하나은행은 55명, 국민은행은 20명으로 구성된 소위 ‘VIP리스트’를 만들어 조직적인 채용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나은행의 경우 VIP리스트에 있는 55명 전원이 지난 2016년 공채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했으며 필기전형을 통과한 6명은 임원면접 점수 조작을 통해 전원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리스트에는 계열사인 하나카드 전임 사장과 사외이사 지인의 자녀는 물론,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종손녀 등 혈연∙지연으로 맺어진 부정 청탁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 대검찰청은 5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5개 은행의 채용비리 수사 참고자료를 넘겨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출처=각 사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2018년 업무계획’에서 채용비리가 적발된 금융사에 대해서 최고경영자(CEO) 해임을 건의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은행법상 은행의 임원이 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크게 해치는 행위를 하는 경우 금융당국은 주주총회에 기관장 해임 요구건을 건의할 수 있다.

금융당국의 개입을 두고 일각에선 ‘관치’ 논란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민간 금융사의 인사나 채용비리에 금융당국이 해임건의까지 나서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융회사의 임원이 금고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 임원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이 경우 금융당국은 법에 따라 해임요구 등 관련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

당국은 당국의 업을 수행할 뿐이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안내되는 설립목적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 수행을 통해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한다”고 나와있다.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따르면 금융위 소관 사무는 금융에 관한 정책 및 제도 뿐 아니라 감독 및 검사∙제재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

‘관치’와 ‘감독’은 한끗 차이다. 떠나는 날까지 문제된 금융사에 철퇴를 날린 재닛 옐런 전 Fed 의장에게는 관치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웰스파고는 지난 2016년 고객 동의없이 350여만 개의 유령계좌를 개설한데 이어 지난해 9월 고객들에게 자동차 보험을 강매한 혐의가 적발됐다.

옐런은 “광범위한 소비자 기만을 저질러온 웰스파고가 더 이상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옐런 전 의장의 웰스파고 자산 동결 기사가 나간 후 국내 포털 사이트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아이디 zxc1****는 “한국이라면 가능했을까”, haon****는 “미국다운 강제 집행, 한국이라면 뱀꼬리 감추듯 슬그머니”라는 댓글을 남겼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금융당국의 마땅한 임무수행을 불필요한 논쟁이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