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합의가 연말까지 연장되면서 중동산 원유의 가격이 오름에 따라 중동산 원유 수입량이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국내 정유사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서부텍사스유(WTI) 등 북미산 원유  수입을 늘린 결과다.

3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원유수입량 중 중동산 원유는 전체의 81.7%인 9억1345만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대비 8.32% 하락한 것으로 2000년 80.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WTI 수입량은 전년 대비 98.12% 증가한 1342만9000배럴을 기록했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0월부터 미국산 원유 520만배럴을 수입했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연간 원유수입량의 1.6%다. 그러나 2016년에는 미국산 원유수입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놀라운 대목이다. 

GS칼텍스도 지난해 미국산 원유 수입을 480만배럴로 늘렸다.

그동안 국내 정유업계는 전체의 80% 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했다. 중동산 원유의 가격이 다른 원유에 비해 저렴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량 확보가 쉬웠기 때문이다.

▲ 출처=SK이노베이션

그런데 OPEC의 감산합의 이행으로 중동산 원유의 공급이 줄어 가격이 상승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반면  미국 셰일업체들이 고유가를 활용해 생산을 늘리면서 WTI가격은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 

감산합의 이전인 2016년 중동 원유의 대표격이자 한국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평균 42.5달러였고, WTI는 배럴 당 44.3달러였다. 그러나 감산합의 이후부터 두바이유의 가격은 치솟아 지난해 연평균 배럴당 53.1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WTI 연평균 가격은 배럴당 50.8달러에 그쳤다.

두바이유의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2일 두바이유의 가격은 WTI보다 배럴 당 0.93달러 비싼 배럴 당 66.73달러를 기록했다. 감산합의 전에는 두바이유가 WTI보다 배럴 당 1.8달러 저렴했지만, 감산합의 후에는 두바이유가 배럴 당 2.3달러 비싸진 것이다.

OPEC은 2016년 말부터 전체원유생산량을 일일 120만배럴 줄이기로 합의했고, 2017년 12월에는 감산합의를 올해 말까지 연장했다. 반면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점점 늘어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WTI 일일 생산량은 1040만배럴에 이를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산 원유 수입이 늘은 것에는 관세 여부도 한몫 했다. 중동산 원유를 수입할 경우 3%의 관세를 내야 하지만 미국산 석유를 수입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관세까지 적용할 경우 중동산 원유는 WTI보다 배럴 당 약 4달러 비싸지는 셈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WTI는 미국 동부에서 생산되므로 남미를 돌아서 수입되기 때문에 운송료가 비싸서 보통 두바이유보다 3달러 정도 저렴해야 수입한다”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OPEC의 감산합의로 미국산 원유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미국산 원유 도입을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 국가별 원유수입 비중. 출처=에너지경제연구원 '2017 에너지 통계 연보'

그러나 WTI 수입 지속여부에 대해 석유업계 관계자들은 유가 변동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한석유협회 측은 "WTI가 도입 된 이유는 오직 경제성밖에 없다. WTI와 두바이유의 가격 차이가 3달러 미만이 된다면 WTI를 도입 할 이유가 사라진다" 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측도 “향후 유가변동 상황에 따라서 결정할 일이지만, 두바이유의 경제성이 더 우수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두바이유 수입 비중을 늘리겠다” 라고 말했다.

한편 감산합의에 참여중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부 장관 칼리드 알-팔리(Khalid al-Falih)는 지난달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 셰일생산의 시장 영향력은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밝혔다. 칼리드 장관은 “셰일오일 일일 생산량이 올해 100만 배럴 증가해도, 세계 석유 수요량 역시 향후 25년동안 일일 1억2000만 배럴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