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기창 프리랜서 에디터 ] 내가 일본에 처음 온 게 2007년이니 이제 방문 한지는 10년째고, 살기 시작한 것은 14년 4월부터니까 거주로는 5년차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어릴 적부터 먹거리 잠자리 가려 본적이 없는 몸이라 일본에 와서 한국음식이 그립거나 지금 당장 먹고 싶어 죽겠다는 음식은 굳이 없었다. 예컨대, 한인촌도 가까이 있으며, 한류 열풍에 도쿄 번화가 마다 있는 것이 한국 음식점인지라, 먹고자 하면 또 쉽게 먹을 수 있어 더더욱 고향의 맛을 그리워할 여유가 없었다. 그 종류도 다양하여 삼겹살집이니 치킨집이니 삼계탕, 순대, 떡볶이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다. 맛도 오리지널 한국맛은 아니지만, 그 비슷하게 맛을 내어 가끔 한국이 그립거나 할 때 먹으면 외로운 마음도 심심찮게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음식 안 가린다는 나에게도 도쿄 어딜 가도 그 맛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리움이 사무치는 맛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국밥이다. 순대국밥에 한잔 걸치고, 감자탕에 한잔 걸치고, 다음날 일어나면 설렁탕으로 해장하고 - 술 마시고 난 뒤에 해장은 항상 국밥 이였는데 말이다 - 이 국물 없이는 못 사는게 나라서, 시장통 국밥도 좋고 하동관의 20공도 좋고 국밥이라면 뭐든지 다 좋아한다. 그런데, 이 국밥맛이 도쿄에서는 영 개운치 않다. 분위기 탓도 있겠으나, 그 국물맛이 가벼운게 먹을 때 마다 뭔가 참 아쉽다. 아무래도 직접 국물을 우려 내지 않아서 일 것이다. 고기도 좋고 뼈도 좋고 그것이 소가 됐든 돼지가 됐든 그저 몇 시간 푹 고아서 진한 국물에 밥 한 공기 말아서 개걸스럽게 먹고 싶은데 참 그맛이 도쿄에서는 찾기가 어려웠다.

술 참 좋아하는 나라서 속풀이한다고 국밥 대신 이것저것 참 많이도 먹어봤다. 오차쯔게도 먹어보고 컵라면 국밥도 먹어보고, 일본 편의점 육개장도 먹어 보고, 마지막에는 집에서 소고기 사다가 미역국도 끓여 먹어 봤다. 먹다 보면 또 익숙해져서 ‘이것도 해장으로 좋구나’ 하지만, 쏙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깍국 말아서 한국식 국밥 한그릇 하고 싶다’하는 아쉬운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일본인들은 술 마신 다음날 해장을 하진 않는다. 다만, 술자리가 끝나고 끼리끼리 ‘締め’(시메)라고 하여 라멘을 먹기도 하고 이자카야에서 자그마한 샤브샤브를 시켜 거기에 밥을 말아 죽처럼 끓여 먹기도 하는데 이게 바로 일본 사람들에게는 ‘해장’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은 나도 술자리가 파하고 그냥 집에 가기 아쉬워 ‘시메’나 좀 해볼까 하고 친구 따라 라멘 먹으러 가본 적이 있다. 그날 친구말로는 지금 가는 라멘집이 요즘 도쿄에서 가장 유행하는 종류의 라멘이라 했다.

평일 밤인데도 가게 안은 꽤나 붐볐다. 양복 입은 샐러리맨들이 많았는데, 우리처럼 바로 집 가기엔 아쉬웠는지 다들 라멘 한그릇에 맥주 한잔 걸치고 있었다. 밝은 조명과 약간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육수 삶는 ‘김’과 ‘냄새'가 연말 분위기를 더해 줬다. 자리에 앉아 식권을 주니 면발의 익힘 정도, 맛의 강도, 기름의 양을 고르라한다. 처음이라 ‘보통’으로 하고 가장 기본적인 라멘을 받았다. 짙은 농도의 갈색 육수에 곧고 굵은 면발이다. 토핑은 김 세장에 챠슈, 호렌소(시금치)가 얹어있었다. 겉보기에 특별할건 없는 라멘인데 숟가락으로 국물 한 숟가락 뜨기가 왜 그렇게 설레였는지, 한 숟가락 맛보고는 그야말로 정말 정신없이 먹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처음 먹어본 ‘家系ラーメン’(이에케이라멘)이였다. 내가 그토록 찾던 맛이다. 이 깊은 맛이 참 먹고 싶었는데 말이다.
 
‘家系ラーメン’(이에케이라멘)의 신흥강자 ‘武虎家’(케라토라야)

이에케이라멘은 우리나라 감자탕 육수 같기도 돼지국밥 같은 맛을 내는데, 그 이유는 육수의 주재료가 돼지뼈이기 때문이다. 가게마다 그 비율은 다르지만 보통 돼지 등뼈, 갈비뼈, 도축 후 남은 잡뼈를 1: 1: 8의 비율로 섞고 육수를 우린다. 그다음에는 닭뼈 육수를 8:2 비율로 조금 섞어 마무리한다. 원래 후쿠오카의 돈코츠 라멘 - ‘하타카라멘’-이 이 ‘돼지뼈 육수+닭뼈 육수’ 라멘의 원조격인데 ‘하카타라멘'과 ‘이에케이라멘’의 가장 큰 다른점은 바로 ‘쇼유(간장)라멘'이라는 것이다. 이 ‘이에케이라멘’은 ‘요코하마’의 ‘吉村家’(요시무라야)가 원조인데, 트럭운전수 였던 요시무라상이 어느날 후쿠오카에 들렸다가 ‘하카타라멘에 됴쿄의 쇼유(간장)를 섞으면 맛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태어난 것이 이 ‘이에케이라멘’이다. 요시무라상은 1974년 9월 요코하마에 라멘야 ‘吉村家’(요시무라야)를 개업하였고 여기에서부터 이 ‘이에케이라멘’이 퍼져나가 현재는 도쿄내에만 1000개의 점포가 있다. 이 점포들은 지난번에 소개했던 지로라멘 처럼 체인점의 형태가 아니라 여러 ‘이에케이라멘' 전문 점포에서 수료를 받고 개별적으로 개업한 가게들이다. 그래서 모두 맛이 조금씩 다르고 스타일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 이에케이라멘이라는 것은 그 형태가 정해져 있고 서로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어떤 룰을 지키고 있다. 이 룰에 대해선 다음에 이에케이라멘 특집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여러 이에케이라멘 중 최근 신흥강자로 떠오르고있는 ‘武虎家’(타케토라야)를 소개하고자 한다.

▲ 가게전경. 사진=이기창 프리랜서 에디터

타케토라야는 ‘무사시야’라는 이에케이라멘 강자 중의 강자로 꼽히는 라멘야에서 7년간 수료를 마친 ‘키라바야시상’의 라멘야로 2012년도 ‘츠나시마’ 역 근처에 처음 문을 연다. 지금은 ‘츠나시마’ 본점과 ‘니시코야마’ 2호점, 그리고 오야마마다역 3호점 이렇게 세 곳이 영업 중이다. 오늘 소개할 곳은 시부야를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3호점 오야마다이역점이다.

▲ 타케토라야 라멘. 사진=이기창 프리랜서 에디터
▲ 돼지고기. 사진=이기창 프리랜서 에디터

이에케이라멘은 기본적인 형식이 있다. 돼지뼈 육수를 베이스로 하고 면발은 굵고 곧은 면발을 쓰며 토핑으로는 김 세장, 차슈, 익힌 시금치를 올린다. 이것이 기본적인 이에케이라멘 이다. 여기에 토핑을 더함으로써 차슈멘이 되기도 하고 메가맥스라멘(양배추, 계란, 파 등을 토핑으로 올린 라멘)이 되기도 한다. 이 기본적인 룰을 지키지 않으면 이에케이라멘이라고 할 수 없다. 타케토라야는 이 이에케이라멘의 룰을 잘 따르고 있다. 챠슈는 지방이 적은 돼지고기를 두껍게 썰어 끈으로 묶고 마늘, 생강, 대파, 양파와 함께 3시간을 삶고 다시 1시간 30분을 특제 간장에 재운다. 돼지고기의 잡내를 없애고 맛을 입히는 것이다.

▲ 사카이제면소의 박스. 사진=이기창 프리랜서 에디터

이에케이라멘을 제대로 전수 받은 라멘야라면 사카이제면소의 면을 받아쓴다. (사카이제면소 이외에도 이에케이라멘의 면발을 만드는 제면소가 약 8곳이 있는데 가장 오래됐으며 가장 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 이 사카이제면소 이다.) 제대로 된 몇 년 간의 수료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업한 사람들에게는 사카이제면소에서 면발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이에케이라멘야는 이 제면소의 면박스를 가게 안에 쌓아둔다. 우리는 제대로 된 이에케이라멘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타케토라야는 키라바야시상이 무사시야에서 7년간 수료를 하였기 때문에 그 수고를 인정받아 사카이제면소에서 공급받고 있다. 가게 안을 보면 사진의 나무 박스가 육수 앞에 나란히 포개져있다. 제대로 된 이에케이라멘야다.

▲ 육수를 삶고 있다. 사진=이기창 프리랜서 에디터
▲ 잘 우러난 육수. 사진=이기창 프리랜서 에디터
▲ 육수를 젓고 있는 라멘야 직원. 사진=이기창 프리랜서 에디터

타케토라야는 큰 가마 두 곳에서 육수를 삶는데 하나는 강한 불에서 8시간 이상 고운 아주 진한 육수이고 다른 하다는 중간불에서 천천히 육수를 우려낸 서브 육수이다. 이 육수를 서로 섞어가며 육수의 농도를 맞춰 나간다. 돼지뼈를 너무 오래 고우면 역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이렇게 두가지 육수를 섞어가며 맛을 내는 것이다. 그 꼬릿한 냄새가 강하면 강할수록 제대로 된 하카타 라멘이라고 라멘매니아들은 말하곤 하는데, 이 꼬릿한 냄새를 잡으면서 진한 육수 맛을 내는 것이 타케토라야의 가장 큰 매력이다.

먹는 방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먼저 주문 방법부터! 이에케이라멘은 주문 방법이 있다. 면발의 익힘정도/맛의 강도/기름의 양을 정해야 하는데 ’普通’(후츠우) 보통으로 시켜먹어도 맛있으나, 한국인 입맛에 맞게 추천을 하자면,

먼저 면발의 익힘 정도.’麺の硬さ’(멘노카타사)
추천은 ‘固め’(카타메) : 덜 익힌 면으로 직역 하자면 딱딱한 면이고 의역 하자면 꼬들꼬들한 면이다.

맛의 강도’味の濃さ’(아지노코사)
추천은 ‘薄め’(우스메) 일본 사람들의 입맛이 보통 짜게 먹기 때문에 우스메를 추천한다. 직역하자면 ‘연함’ 의역하자면 덜 짜게!

마지막으로, 기름의 양 ’油の量’(아부라노료)
이 기름은 돼지기름이 아니라 닭껍질을 물에 끓여 뽑아낸 닭기름이다. 맛이 아주 고소하지만, 열량이 아주 높으므로 ’少なめ’(스쿠나메)를 추천!

이것이 추천 주문이다. 일본식 로컬 라멘을 처음 먹는 한국인 친구들이 가끔 짜고 역해서 다 못 먹겠다며 라멘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렇게 주문하니 국물까지 싹 다 마셨다. 적극 추천한다. 먹는 방법은 먼저 국물과 면을 같이 먹는다. 반 정도 먹으면 마늘을 조금 타서 감칠맛을 내고 그 국물에 김을 적셔서 밥을 싸먹는다. 매운맛을 더 하고 싶으면 중국식 고추장인 토반장을 조금 넣는다. 이렇게 먹으면 국물까지 다 마실 수 있다.

이제는 술을 마셔도 다음날 아침 해장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한국의 진한 국밥은 먹지 못하지만, 이 이에케이라멘이 있기 때문이다.

横浜家系ラーメン 武虎家 尾山台店
요코하마 이에케이라멘 타케토라야 오야마다이점

위치
東京都世田谷区等々力2-18-15
Tokyo, Setagaya, Todoroki, 2 Chome-18
연중무휴 평일 11:00 ~ 15:00 / 17:00 ~ 01:00
주말 11:00 ~ 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