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느새 억울하게 두 살씩 더 먹는 ‘한국 나이’로 오십을 넘기고 말았지만, 삼십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의사였을 때, 필자는 평생 가슴수술만 하는 성형외과 의사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 유행하던 식염수 보형물은, 겨드랑이를 단 2~3㎝ 정도만 절개해도 식염수 백을 돌돌 말아 쏙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양쪽 가슴을 보면서 식염수를 주사기로 주입하면, 차츰차츰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수술 중 가슴이 예뻐지는 과정을 목도하는 셈이다. 의사도 간호사도 감탄사가 나올 만한 가슴이 되면 수술이 완성된다.

베이글녀가 대세인 요즘, 동안 얼굴과 함께 자신감 충만한 가슴은 글래머의 필수조건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가슴 확대 수술은 특히 가슴이 빈약해서 고민인 여성들에게는 아주 보람찬 수술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물론 부작용도 있으니 신중히 선택해야겠지만 말이다.

가슴수술만 하고 싶었던 필자의 희망은 결국 빗나갔다. 대신, 지금은 필자에게 천직이라고 깨닫게 된 돌출입, 광대뼈, 사각턱 양악수술만 하며 살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를 찾아온 환자들이 미리 차트에 체크한 수술종목은 거의 예외 없이 돌출입, 무턱, 사각턱, 광대뼈, 양악(주걱턱) 중 한두 가지다.

그런데 언젠가 필자를 찾아온 B양의 차트에는 돌출입과 가슴, 두 군데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돌출입과 무턱은 확연히 수술의 대상이었다. 안면계측 엑스레이를 찍어 확진을 해보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돌출입 수술과 턱끝 수술이 필요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가슴을 진찰했다. 사실 가슴을 진찰하는 것은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선량한) 의사라면 여성 환자의 ‘부끄러운’ 부위를 진찰하는 게 아무렇지 않고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의사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 오히려 무딘 편이다. 언젠가 모 개그맨은 ‘남자는 다 검은 동물입니다’라고 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었지만, 의사가 수술이나 처치를 할 부위를 진찰하는 것은 산부인과나 성형외과나 모두 업무의 연장선상이다.

여하튼 B양의 가슴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가슴이 빈약한 여성이라도 약간의 볼륨은 있기 마련인데, 그녀의 가슴은 아예 없다고 해야 옳았다. 게다가 마른 몸매로 갈비뼈가 드러나서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슴만 놓고 보면, 남자의 흉곽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B양은 필자에게 돌출입 수술과 함께, 가슴 확대 수술을 받기를 원했다. 그녀는 필자에게 정말 가슴수술까지 맡기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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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의 발달로 요즘 환자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빠져 있다. 검색창에 어떤 수술명을 치면 전문병원이라고 하는 곳이 너무 많다. 그중에 환자들은 몇몇 병원을 선택하고 찾아간다. 요즘은 무작정 지나가다가 이 병원은 어떨까 하고 들르는 소위 워크인(Walk-In) 환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요즘 의료 소비자들은 요모조모 알아보고 병원을 선택한다.

한편 필자는 10년 전까지는 모든 수술을 다 하는 만능 성형외과 전문의를 자처했다. 즉, 당시에도 돌출입 수술과 얼굴뼈 수술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눈, 코, 가슴, 지방흡입 등 다른 수술도 모두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솔직히 이제는 하나둘씩 더 이상 하지 않는 수술이 생겨 버렸다. 눈, 코, 가슴 수술은 여전히 하고 있지만, 예를 들어 지방흡입은 더 이상 필자가 하지 않고 있고, 하고 싶지도 않다.

B양도 가슴 확대 전문병원을 알아봤을지 모른다. 가슴수술은 가슴만 전문으로 하는 다른 의사에게 맡기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필자는 가슴수술만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B양이 필자에게 가슴수술까지 맡긴 것은 어떻게 보면 무한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었다.

수술 날이었다. 돌출입 수술이 잘 끝나고 연이어 가슴수술에 들어갔다. 코히시브젤 백을 한쪽에 먼저 삽입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백을 넣고 보니 모양이 필자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B양의 유방실질 조직은 생각보다 더 적었고, 가슴근육도 거의 두께가 없이 너무나 얇았다. 그런 이유로 일반형의 납작한 백을 근육 하에 넣으니, 없던 가슴이 조금 생기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볼륨과 모양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필자의 선택은 그 백을 다시 꺼내버리고 더 구(球) 형태에 가까운 특수형 백을 쓰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다시 꺼낸 백은 그냥 버려야 한다. 즉 일반적으로 가슴 확대 수술 환자에게 두 개만 쓰면 되는 백을 B양에게는 세 개를 쓴 것이 되고, 한 개의 비용은 필자가 떠안은 셈이다. 필자를 믿고 맡겨준 환자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돌출입과 가슴수술을 동시에 한 후 6주가 되어 B양이 병원에 왔다. 성형외과 전문의로 개원한 이후에 케익, 커피, 차, 초콜릿, 양주, 와인, 홍삼, 편지 등 별별 선물을 다 받아봤지만, 환자에게 유가증권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선물받은 것은 처음이다. 가슴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백 세 개를 썼노라고 생색을 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와야 할 가슴은 나오지 않고, 나오지 말았어야 할 입이 돌출되었던 B양은 필자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수술이 그녀에게 좋은 선물이었고 삶의 큰 변화였다고 한다. 변화된 그녀의 삶, 제 2막 1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