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데 회사에서 어떤 지시를 내리면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 부서장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상황관리가 안 되고, 계속 문제가 증폭되기만 합니다. 제가 CEO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부서장들이 협조하지 않아 정말 힘이 듭니다. 리더십이 부족한 거겠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우리가 일반적으로 CEO에게 최고의사결정권이 주어져 있다고 하지만, 기업이나 조직 유형에 따라 그런 권한이 피상적이고, 실제 리더십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일부 조직의 경우 조직 특성상 CEO 역할을 하는 사람이 모든 부서를 대표하지 못하거나 각 부서장을 대상으로 강력한 강제력을 발휘할 수 없는 체계도 있습니다.

대학이나 병원, 종교단체 같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그룹들이 바로 그런 부류입니다. 여러 회원사가 모여 하나의 조직을 이루는 ‘협회’ ‘조합’ 같은 곳도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조직된 곳이지만, 무언가를 하기에는 그 조직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입니다.

위기가 발생하면 우리가 생각할 때 위로는 CEO에서 아래로는 일선직원에 이르기까지 위기관리를 위한 하나의 마음을 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조직에서는 CEO를 비롯한 거의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각기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상당히 정치적이거나 아니면 아주 반정치적인 내부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위기 시 CEO가 이런 지시를 합니다. “빨리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해야 하겠습니다. 실무단에서 OOO부서장께서 기자회견 질의응답을 진행해 주세요.” 이런 지시에 해당 부서장은 “못 합니다. 제가 그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얼굴 팔릴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답변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CEO는 사실 이런 반응에 대해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 CEO가 외부자문이나 전문가 그룹을 고용해 위기관리팀에 조언해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외부자문 그룹에 대한 공격만 더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조직의 경우 대부분 논의만 지루하게 이어지고 실행은 없습니다. 실행을 하더라도 아주 일선 차원의 단순 실무자 대응이 주를 이룹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모든 대응은 위기관리를 실패로 이끕니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조직에서 당면한 위기를 그나마 관리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최고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위기관리 전반을 리드해야 합니다. 평소에는 형식적 CEO를 통해 경영을 위임해 왔다 하더라도, 위기가 발생하면 조직원 전반을 강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위기관리에 나서야 합니다.

필자는 이와 같이 평시 리더십과 위기 시 리더십이 분리되어 있는 조직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 중 위에서 조언한 바와 같이 실질적 리더십이 위기 시 위기관리에 직접 관여하는 경우는 그들 중 열에 하나도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는 경우에는 여러 정치적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대신 상당수가 배후에서 해당 CEO에게 조언하고 이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려 하는 간접적 노력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 경우 더욱 더 난맥상은 커가게 됩니다. CEO가 지시하는 것이 CEO자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배후에 머무르는 실질적 CEO의 것인지 부서장들이 헷갈려 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더 많은 부서장들은 그 배후에 있는 실질적 CEO의 의중을 점치는 데 시간과 정보력을 활용합니다. 말 그대로 불필요한 집안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CEO는 위기 시 가시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먼저 내부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내부적으로 누가 위기관리 리더십을 쥐고 있는지가 정해져야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직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그 생각을 버려야 위기는 관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