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18일 JTBC 긴급토론에 출연해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의견을 나눈 가운데, 가상화폐의 가치와 투기 열풍은 물론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대중의 시선을 끌고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구별해야 한다'부터 '가상화폐는 투기의 대상일 뿐'이라는 말이 나오는 등 치열한 설전이 벌어진 가운데 자연스럽게 블록체인 기술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 리플, 라이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근간이 되는 기술이며 권력 분산형 기술의 핵심이다.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중앙은행의 무책임한 행태에 분노한 익명의 프로그래머 나카모토 사토시(일각에서는 죽었다는 설도 있고, 개인이 아니라 팀이라는 말도 있다)가 발표한 논문에서 시작됐으며 일종의 장부를 연결해 각자가 기록을 공유, 권력의 해체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풀이된다.

통계 전문 업체 스테티스타(Statista)는 올해 블록체인 시장이 약 5억5000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2021년에는 23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출처=픽사베이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만약 블록체인 기술이 상용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례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변조 불가 블록체인...산업 지형 바꿀수도  

블록체인의 알고리즘이 중앙권력의 해체, 이에 따른 분산형 권력으로 이어진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면 다양한 영역의 적용이 가능하다. 실생활에서 살펴보면 중고차 거래가 단적인 사례다. 현재 중고차 거래는 딜러가 중앙에서 폭리를 취하거나 주행기록을 조작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곤 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이러한 부작용은 해소된다. 자동차의 설계, 제작, 출고, 판매, 재판매가 이뤄지며 각각의 주체가 블록체인에 기록된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제작되면 제작과 관련된 정보가 생산되어 관련인들에게 공유된다. 이후 출고돼 판매되면 구매자도 자동차의 설계부터 판매까지의 정보가 자동으로 연결되며, 이를 중고차로 판매할 경우 딜러와 중고차 구매자도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사슬의 공유'이기 때문에 플랫폼 사업자, 즉 딜러가 소위 '장난'을 칠 수 있는 여지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신선식품도 마찬가지다. 농부와 중간 유통판매자, 시장, 구매자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기록되어 이해관계인에게 공유되기 때문에 투명한 프로세스가 가능해진다. 최근 '어금니 아빠' 논란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기부문화의 부활도 블록체인으로 가능하다. 내가 기부한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고있는지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사회전반으로 확산할 수도

사실상 정치,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블록체인이 활용될 수 있다. 선거를 예로 들면, 내가 행사한 표가 선거관리위원회라는 중앙조직의 집계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투표인의 정보로 실시간 전송된다. 문화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불특정 다수의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스팟성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면, 공연 기획자는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이와 관련된 모두의 정보를 공유하게 만든다.

항만과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산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최근 IBM이 머스크와 함께 블록체인 기반의 조인트벤처를 설립한 이유다. 복잡한 물류 현장의 기록을 이해관계인이 모두 공유할 수 있다면, 세계의 항만과 물류 산업은 혁신적 변화와 만날 수 있다.

도요타의 이팔렛트처럼 진정한 공유경제의 의미를 정의할 수 있다. 현재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 소위 공유경제 기업이라 불리는 곳들은 실상 온디맨드 기업이다.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된 플랫폼을 운영하며 수수료를 챙기는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소비의 방식인 공유경제를 생산의 방식으로 끌어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철저한 중앙집중화며, 합리적 공유가 아니다. 이들은 강력한 중앙 플랫폼을 바탕으로 이에 의존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이들이며, 진정한 공유경제와 거리가 멀다.

차라리 이팔렛트가 진정한 공유경제에 가깝다. 자율주행기술을 통해 텅 빈 자율주행차에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블록체인의 마술이 개입한다. 도요타는 이팔렛트의 운영을 블록체인으로 실시간 공개하며, 이팔렛트를 빌리려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내역을 보며 요금 정산이 가능해진다. 모바이크와 오포와 같은 공유자전거 사업도, 사실상 모든 사업도 블록체인의 기술로 묶어낼 수 있다. 블록체인이 공유경제며, 현제 공유경제 기업들은 오히려 180도 다른 중앙집중형 모델이다.

다만 현재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 즉 핀테크의 연장선에서 주로 인증의 기술로 활용되는 편이다. 실제로 데일리금융그룹은 많은 증권사와 연합해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이끌고 있다. 가상화폐가 '금융의 충격'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로 보인다.

블록체인도 종류가 있다. 비트코인을 가능하게 만든 퍼블릭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과 프라이빗(Private), 혹은 컨소시엄(Consortium) 블록체인도 존재한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며 누구나 분산엔진을 구동할 수 있다. 반면 프라이빗과 컨소시엄 블록체인은 허가된 콘트롤 타워와 승인된 기관 중심으로 행해지는 특성을 가진다. 다소 중앙집권형인 셈이다. 이 간극을 활용해 필요에 따라 블록체인을 산업과 연결하자는 것이 최근 가상화폐 옹호론자들의 주장이다.

블록체인, 중앙통제시스템 '대체재' 자리 꿰찰까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과연 중앙집권이 악(惡)인가?'이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앙은행의 폐혜를 목격한 나카모토 사토시는 블록체인이라는 분산형 권력을 제안했으나, 현재의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분명 중앙형 권력 시스템이다. 일부 불합리한 지점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매개로 완전한 중앙권력의 해체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나간 해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블록체인이 최근 ICT 업계의 트렌드인 '플랫폼 권력'을 무차별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구글과 애플, 넷플릭스와 삼성전자 등은 모두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플랫폼을 매개로 빅데이터를 확보해 O2O 사업을 구현했다. 인터넷의 시작은 탈 중앙 권력에서 시작했지만 ICT 기업들은 모두 각자의 플랫폼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확장해 사업을 키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180도 다르다. 중앙 플랫폼의 존재를 거부하며 철저한 분산을 추구한다. 집단지성과 닮았다.

문제는 '권력 분산형이 불특정 다수의 신뢰를 끌어내 새로운 산업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에 있다. '현금없는 사회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의 등장으로 구현될 수 있느냐' 수준과 비슷한 어려운 문제다.

투기 열풍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와는 별개로, 블록체인 기술력이 플랫폼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발전한 기존 정보통신기술(ICT)플랫폼 사업자의 후계자 자격이 있는지도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