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매출액 1위 제약사가 치매 완치제 자체 개발을 포기했다. 파킨슨병과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큰손 중 하나인 화이자의 이 같은 결정은 치매 완치제 개발을 위해 빌 게이츠와 같은 IT업계 거물과 소규모 바이오벤처가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업계 추세와는 사뭇 다른 결정이어서 주목된다. 이 때문에 앞으로 작은 혁신 벤처기업이 치매 완치제 개발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메디포스트 등 벤처기업이 치료제 개발의 대세로 부상했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미국 거대 제약사 화이자(Pfizer)는 알츠하이머 치매와 파킨슨병 등 신경분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포기하겠다고 8일(현지시각) 밝혔다.  이에 따라 화이자는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와 엔도버, 코네티컷 주의 그로튼에서 근무하는 300명의 신경과학 분야 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다.

화이자는 그러나 관절염 통증치료제 타네주맙(tanezumab)과 섬유근육통 치료제 리리카(Lyrica) 등 일부 신경질환 신약에 대한 연구는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이자 관계자는 “이는 회사의 전문가들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정렬하고 투자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화이자는 파킨슨병과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큰손 중 하나였다. 회사는 영국 GSK, 미국 일라이릴리(Eli Lilly)와 함께 정부와 제약기업들이 지난 2015년 만든 치매발견펀드(Dementia Discovery Fund)의 일원이었다.

세계 1위 매출, 연구개발을 통해 다수의 신약을 개발한 화이자가 치매 치료제 개발을 포기한다는 사실은 업계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우수 연구개발 인력을 보유한 제약사들이 잇따라 치매 완치제 개발에 실패하면서 성공 확률이 높은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일라이릴리(Eil Lilly), MSD 등 거대 다국적제약사들은 지난해 치매 완치제 임상 3상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화이자도 미국 존슨앤존슨(J&J)과 치매 치료 물질 바피네주맙(bapinezumab)은 24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거대 임상 3상 시험을 하다 치매 환자들의 기억력 감퇴를 의미있게 지연하는 데 실패하면서 지난 2012년 개발을 중단했다.

▲ 치매 완치제 개발에 실패한 다국적제약사.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런 치료제들은 모두 치매를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가지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의 제거를 목표로 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베타아밀로이드 가설과 타우 가설이다. 면역이나 장내 세균의 불균형이 치매를 유발한다는 설도 최근 떠오르고 있다.

작은 혁신 벤처가 치매 완치제를 개발하는 구심점으로 새롭게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다수의 바이오벤처가 치매 완치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애브비(Abbvie)는 약한 면역력이 치매를 유발한다는 가설 하에 치매 치료제를 만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벤처 제약사 알렉터(Alector)에 2310억원을 투자했다. 미국 바이오젠(Biogen)은 타우 타겟의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는 미국 생명공학벤처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Ionis Pharmeceusdticals)에 마일스톤(단게별 지급료) 113억원을 지급했다. 빌 게이츠도 치매 완치제를 개발하는 혁신 벤처에 56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벤처기업이 치료제 개발의 대세로 부상했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기업 메디포스트가 타우와 베타아밀로이드를 타겟으로 한 뉴로스템(Neurostem, 임상1/2a상)을 개발 중이다. 젬백스앤카엘도 항암제로 허가받은 'GV1001(임상2상)'를 치매 치료제로 시험하고 있다.

치매처럼 원인 물질조차 확실하지 않아 완치제 개발이 어려운 질환에 직접 연구 인력을 투입해 개발하는 것보단 혁신적인 사고를 통해 도전하는 기업에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낫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치매 완치제를 개발하려다 큰 금액을 잃은 거대 제약사가 늘면서 차라리 그 돈을 작은 벤처에 투자해 상업화를 함께 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치매 완치제) 개발의 주도권은 점점 소규모 혁신 벤처에 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