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에 첫 번째 수(手)를 둘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총 361가지다. 이후 바둑돌이 판에 추가로 놓이면서 둘 수 있는 칸은 줄어들지만 경기가 진행되면서 바둑 기사들이 생각하는 전술에 따라 경우의 수는 오히려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그래서 바둑 기사들은 수십만 가지 형태의 기보(棋譜)를 학습하면서 한 수를 둘 때 그 앞으로 약 40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른다.      

마케팅에도 이와 같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시작 단계’부터 철저한 데이터 분석으로 실패의 확률은 줄이고 효과를 높이는 기법이 있다. 바로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이다. 

일단, 분석부터

그로스 해킹은 성장을 뜻하는 영단어 ‘그로스(Growth)’와 컴퓨터 프로그램 조작을 뜻하는 ‘해킹(Hacking)’의 합성어다. 마케팅 업계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개선 사항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점검하고 이를 통해 얻은 결과를 반영하는 온라인 마케팅 기법’으로 개념을 설명한다. 

그로스 해킹의 관건은 투입되는 비용 대비 노출 효과가 떨어지는 마케팅 실패 확률을 줄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서비스나 재화를 이용하는 고객의 경험 그리고 그들의 행동 방식을 분석해 제품(혹은 서비스)을 소비자에게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로스 해킹을 마케팅의 영역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여기기 시작한 주체들은 IT 스타트업들이다. 제한된 마케팅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스타트업들이 온라인 사회관계망(SNS)을 활용해 정보를 노출시키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고안하면서 정리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객 정보분석·설문조사 기업 콸라루(Qualaroo)의 CEO이자 실리콘밸리 최고의 마케터인 션 엘리스(Sean Ellis)는 <Growth Hacking>(2017, 국내 도서명 ‘진화된 마케팅 그로스 해킹’)라는 한 권의 책으로 그로스 해킹의 이론적 개념을 정립했다.  

그로스 해커?   

그로스 해킹을 전문으로 수행하는 이들을 ‘그로스 해커(Growth Hacker)’라고 한다. 이들은 낮은 비용으로 텔레비전, 라디오와 같은 매스미디어 광고 마케팅을 대체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들을 찾는다. 이 방법들을 실현시키는 근거는 데이터 분석이다. 그로스 해커들은 온라인 검색 최적화, 웹사이트 분석, 콘텐츠 활용 마케팅, A/B 테스팅(선호도 조사)과 같은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다. 그래서 그로스 해커들은 마케터라기보다는 엔지니어에 가깝다.

드롭박스, 페이스북의 그로스 해킹 

그로스 해킹의 가장 대표적인 적용 사례는 바로 미국의 웹 기반 파일공유 서비스 업체 ‘드롭박스(Dropbox)’의 마케팅이다. 

2007년 6월 미국 MIT의 졸업자인 드류 휴스턴(Drew Houston), 아라시 페르도시(Arash Ferdowsi)가 창업한 벤처기업이다. 드롭박스는 창업한 지 4년째인 2011년 기업의 가치를 10억달러(약 1조원)로 평가를 받았고. 그로부터 3년 후인 2014년에는 기업 가치를 100억달러(약 10조원)까지 끌어올리는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줬다.  

▲ 그로스 해킹 마케팅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 드롭박스. 출처= 드롭박스

드롭박스가 이같이 성공을 거둔 원동력은 그로스 해킹이었다. 드롭박스는 빅데이터 분석으로 신규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아는 경로의 대부분이 ‘친구의 추천’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이에 드롭박스는 친구의 추천으로 서비스를 처음 사용하면 추천자와 가입자 모두에게 500MB(메가바이트)의 저장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적용했고 회원 가입률을 60% 이상 증가시켰다.

이러한 성공에 글로벌 기업들도 그로스 해킹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용자들의 선호도나 성향을 분석해 광고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사용자 수를 늘릴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됐다. 이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적용시키고 나아가 유료 광고 마케팅에도 접목시킨 또 다른 사례로는 페이스북(Facebook)이 있다. 그 외에도 트위터(Twitter), 링크드인(LinkedIn), 에어비엔비(AirBnB) 등 글로벌 기업들도 그로스 해킹을 마케팅에 활용했다. 

시작을 잘 하면 된다  

그로스 해킹은 마케팅에 적용하기 까지의 준비 과정이 길다.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그를 토대로 하나의 '경향(Trend)'을 도출할 수 있어야 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작을 잘 해 두면, 마케팅 추가 비용이 투입돼지 않아도 기업을 성장시키는 특성이 있다. 

일본의 마케팅 기업 덴츠(株式会社 電通) 비즈니스 크리에이션 센터의 카타야마 토모히로(片山 智弘) 연구원은 “그로스 해커들의 궁극적 목표는 자동으로 수백만 명의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전파하며 스스로 영구히 지속되는 마케팅 기계(Self-perpetuating Marketing machine)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