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며 모두 다짐과 약속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중 눈길 끄는 다짐은 올해 ‘한 가지만 하기’다. 최인철 서울대 교수는 칼럼에서 올해는 ‘책 읽는 해’, ‘운동하는 해’, ‘봉사하는 해’ 등 딱 한 가지만 정해서 실천하는 해로 삼아보자 제안했다.

‘한 가지만 하기’라는 제안이 있다면, 필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한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전문가인 척하는 사람에게 속지 말기’다. 이런 결심은 지난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느낀 것과 무관치 않다.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이미 촛불의 열기를 잊은 채 마음 속 불편을 재워놓은 친구들은 무거워진 삶에 대해 얘기했다. 그중 두 친구의 대화에 귀가 솔깃했다.

“어이, 상무 승진 축하해. 난 아직 본부장인데, 벌써 임원이네. CEO를 노려도 되겠다.” 축사를 건네받은 맞은편 친구의 답은 이랬다.

“영업 3년 하다, 본부 들어오라 해서 3년, 또 나가라 하면 나가고… 전문성도 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25년이 지났네. 임원 됐다지만, 어느 전문가도 아니라서 마지막 자리겠구나 생각해.” 축하를 자학으로 받는 재주는 50 중년을 넘긴 관록 덕일 것이다.

“그래. 외국 보험사는 다르더라. 영업만 20여년 맡기고, 관리는 관리만 하게 해서 전문가를 만들더라. 우리 금융사들은 여기 3년, 저기 3년, 뭔가 알 것 같다 싶으면 인사 이동시키니, 전문성을 쌓을 시간이 없어.”

이게 보험사만 20여년을 다닌 베테랑들의 대화라면 믿겠는가. 취중의 겸손함인지, 솔직함인지 모를 고백이었다. 곧이어 도착한 변호사도 비슷했다.

“우리 변호사도 요즘 전문이 없어. 사건 들어오는 대로 다 해. 들어오면 그때 공부해서 하는 거지. 전문 분야가 따로 없어. 사건 들어오는 것만도 고마운 판에.”

필자는 “아니, 보험 상품을 모르고 판다는 거야? 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거야? 너희가 전문가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전문가란 말이야?”라고 물었다.

필자는 아직도 황당하기만 하다. 이미 전문가 반열에 탈락한 언론인이지만, 사회는 아직도 그들을 전문가 대접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들의 얘기에 특별히 귀 기울이지 않았던가.

어설픈 전문가, 영악한 아마추어 세상이다. 숨은 전문가가 많지만, 그들을 찾지 못해 아마추어들이 활개치는 사회가 돼버린 것일까. 아님 애초에 전문가가 없어, 아마추어 천국이 된 것일까.

종편방송채널 시사프로에 등장하는 패널들은 거창한 이름의 전문가인 척하지만, 주제 파악조차 못하거나 빈곤한 지식과 헛웃음으로 질문을 모면하는 상황극을 연출한다.

우리가 아는 이들이 전문가일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를 접자. 그래야만 지금 우왕좌왕하는 대한민국이 조금이나마 안정될 듯싶다. 비전문가의 소음에서 벗어나자.

이들의 비전문성이 자신들의 잘못만은 아닐지 모른다. 인터넷 검색과 다양한 정보연결 등 정보통신기술의 보급으로 일반인들도 웬만큼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서 더 깊은 지식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도 있다.

전문가들에게서 전문능력이라는 존경 코드가 사라진 건 이들이 이해당사자가 되는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탓이 더 클지 모른다. 예컨대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중단할지 계속할지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원자력학과 교수와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이해당사자임에도 전문가라고 우겨대서는 안 된다.

가계부채 대책을 세우는 자리에서는 대부업체 대표가 부채문제 전문가라며 당국의 초청을 받아 자신들의 조언이 ‘애국적’임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 이해당사자 편향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은 채 전문가 대접을 요구하니, 그 메아리가 적을 수밖에 없다.

올 한 해 전문가는 없다, 또는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에게 속지 말자는 다짐은 무엇보다 이들의 전문성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하는 공무원이나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공공성격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합리적이고, 사려 깊은 결정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기대됐다. 막상 뚜껑을 열면 이들은 자신의 신분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판단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재단한 일 같은 것 말이다.

예리한 분석과 깊은 통찰로 우리에게 피와 살을 제공할 것처럼 하던 이들도 알고 보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에 집착한다. 짜깁기 정보라도 방송만 잘 타면 유명인이 될 수 있다는 심리는 종합편성채널이 조장한 책임도 크다.

금융산업이라는 전문 분야도 알고 보면 짜인 매뉴얼에 대출상품 파는 일만 있을 뿐, 신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전략 능력은 쪼그라들었다. 금융 종사자가 기업 사업보고서조차 읽어내지 못하니 리스크 관리를 할 수도 없다.

전문가라면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말해야 한다. 매뉴얼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이면서도, 같이 일하는 사람을 마음으로 통합하는 소통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성공을 이끄는 조력자여야지, 자신의 선지식을 과시하는 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지식을 쉬운 지혜로 정리해내는 진짜 전문가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