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효율 풀무원 신임 총괄 CEO. 출처= 풀무원

일정 규모에 이른 기업들이 사업을 성장시키는 일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 바로 ‘경영권’을 이어가는 일이다. 회사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기업의 지속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이에게 경영권을 전달하는 일은 회사의 존속(存續)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열쇠는  ‘누구에게 경영권이 이어지는가’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창업주의 가족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는 기업의 부나 권력의 세습에 따른 부패나가족간 경영권 분쟁 등 골육상쟁의 폐단을 낳았다. 이에 많은 기업들은 창업 일가가 아닌 회사의 인재(人才)나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기는 ‘전문 경영인’ 체제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난 2일 국내 식품기업 풀무원의 경영권 승계는 재계에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33년’ 오너(Honor) 경영 끝내다  

식품기업 풀무원의 남승우 총괄 CEO는 지난 33년 만에 1일자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후임자로는 풀무원의 핵심 사업인 풀무원식품㈜의 대표를 맡아온 이효율 대표로 정했다. 이로써 풀무원은 1984년 창사 이후 33년 동안 이어진 창업자 경영 체계를 끝내고 전문경영인 경영 체계로 전환했다.

남 전 총괄 CEO는 3년 전부터 ”비상장기업은 가족경영이 유리하지만 상장기업의 경영권 승계는 전문경영인이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 풀무원의 오너 경영을 끝내겠다는 점을 누누이 밝혀왔다.그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만 65세가 되는 2017년을 끝으로 직계 가족이 아닌 임직원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겠다"고 공표했다. 경영권을 전달받을 사람으로 이효율 대표가 결정된 것은 주주총회 이전인 지난해 2월이다.

이전까지 이 대표가 참석할 수 있었던 공식 회의는 식품사업 대표자 회의와 대표이사 회의 등으로 제한돼 있었다. 차기 경영인으로 지목된 후부터 지난 한 해 동안 이 대표는 풀무원 경영과 관련된 모든 회의에 남승우  CEO와 동등한 자격으로 동석하면서 ‘경영 수업’을 받았다.  남 전 총괄 CEO의 아들인 성윤씨는 풀무원 미국 법인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 오너경영을 물려준 남승우 전 총괄CEO(오른쪽)와 이효율  총괄CEO(가운데)가 작년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대담하고 있다. 출처= 풀무원

남 CEO의 후계 선정 기준 ‘실력’  

풀무원에는 국내와 해외 법인을 포함해 총 8명의 대표이사급 임원이 있다. 이효율 대표는 풀무원식품(식품제조)과 풀무원푸드머스(식자재유통)의 대표였다. 그 외 계열사는 풀무원건강생활(건강식품), 풀무원ECMD(단체급식), 풀무원식품기술연구소와 4개의 해외법인(중국 2, 미국 1, 일본 1)이 있어 각 업체마다 이 대표와 같은 대표이사들이 경영을 이끈다. 직급으로만 보면 풀무원의 다음 경영권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이들은 8명이었다.

남 전 총괄 CEO가 8명의 대표이사들 가운데서 이 대표를 차기 경영인으로 선택한 것에는 단 한 가지 기준이 있었다. 바로 ‘실력’이었다.

이효율 총괄 CEO가 증명한 역량 

이효율 신임 풀무원 총괄 CEO는 1981년 압구정동에서 ‘풀무원 무공해농산물 직판장’으로 시작한 풀무원이 법인으로 설립되기 전인 1983년에 입사한 사원이었다. 그는 34년간 근속하며 사원에서 총괄 CEO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입사 후 풀무원 마케팅 팀장, 사업본부장, 영업본부장, 풀무원식품 마케팅본부장, 풀무원식품 COO(최고운영책임자), 푸드머스 대표이사, 풀무원식품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의 첫 번째 실적으로는 작은 유기농산물 판매점인 풀무원의 영업망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는 영업 일선에 있으면서 1980년대 당시 풀무원의 주력제품인 포장 두부와 포장 콩나물을 현대백화점과 한양 수퍼마켓 등 주요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납품시켰다. 이를 발판삼아 서울에 이어 대전, 대구, 광주 등 전국 4대 권역까지 거래처를 확장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후 풀무원은 1994년 고속도로 휴게소에 납품하는 우동, 만두로 유명한  국내 식품업체를 제치고 본격 ‘냉장 생면’ 사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이 총괄 CEO는 풀무원의 상품기획과 마케팅 업무를 맡아 우동, 냉면, 라면, 스파게티 등 신제품 개발을 이끈다. 그는 공장 생산 설비를 개선하기 위해 풀무원기술원 연구원들과 일본의 면공장, 소스공장을 직접 찾아다며 그들의 앞선 기술을 풀무원에 도입했다. 이 총괄 CEO의 노력에 힘입어 2000년대에 풀무원은 국내 냉장 생면 시장서 시장점유율 1위 업체가 됐다.

2012년 이 총괄 CEO는 풀무원식품의 자회사인 식자재 유통기업 ‘푸드머스’의 대표를 맡았다. 그가 대표로 부임하기 전까지 풀무원 푸드머스는 영업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 총괄 CEO는 B2B(기업 간 거래)사업인 푸드머스의 운영 구조를 개선해 안정된 성장구조를 마련했다. 점차 적자의 늪을 벗어난 푸드머스는 2016년 매출 4500억원, 영업이익 241억원을 기록하며 풀무원에서 식품사업 다음으로 중요한 사업군이 됐다.

풀무원의 해외시장 확장도 이 총괄 CEO가 이끌었다. 그는 2012년부터 1주일에 나흘 이상을 중국에 머물며 한동안 정체된 풀무원식품 중국사업 정상화에 몰두했다. 2014년에는 일본 4위 두부기업 ‘아사히식품공업' 인수를 진두지휘해 매출을 성장시켰다. 아울러 그는 미국 사업 진출을 위해 2015년부터는 1년 중 6개월 이상을 미국에 장기체류하며 현지 취업비자까지 받으면서까지 미국 사업 진출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에 2016년 풀무원은 현지 1위 두부 브랜드 ‘나소야’의 영업권을 인수해 북미 두부업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신임 CEO는 풀무원의 임직원들에게 평판이 좋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풀무원의 한 임원은 “이효율 신임 CEO는는 부서의 팀장으로 있던 시절부터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고 그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앞으로 임직원들의 의사소통도 이전보다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가 대표이사로 있던 풀무원식품의 한 직원은 “대표님은 회사의 사무직이나 현장 근무자들을 차별 없이 대해 주셨다”면서 “모든 임직원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이라고 말했다.   

신임 CEO의 당면과제 ‘영업이익 개선’ 

최근 5년간 풀무원의 연간 매출은 2012년 1조4579억원, 2013년 1조5217억원, 2014년 1조6781억원. 2015년 1조8465억원 그리고 2016년에는 2조307억원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12년 409억원에서 2014년 533억원까지 늘었다가 2015년 395억원 그리고 2016년 379억원으로 3년 연속 감소했다. 

▲ 출처= 전자공시시스템

이에 대해 풀무원 관계자는 “해외사업 투자와 현지 공장 설비에 보수비용 그리고 식품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한 부담이 영업이익에 반영됐다”면서 “지난해까지 대부분의 해외 투자가 마무리돼 올해부터는 투자로 인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율 총괄CEO는 신년사에서 “풀무원은 지난 33년간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의 바른먹거리·생활기업으로 성장했다”면서 “적극적 해외투자와 시장 개척으로 회사의 목표인 글로벌 DP5(Defining Pulmuone 매출 5조원)를 달성하기 위해 경영인으로서 최선의 오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CEO 특별대우 ‘없음’ 풀무원 조직 문화 

통상의 기업들은 임원이 승진하면 직급에 따라 대우를 달리 한다. 지급되는 차량의 등급이 달라지거나 복지 혜택이 늘어나거나 연봉이 오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효율 총괄 CEO가 대표이사에서 CEO로 승진하면서 회사의 대우가 변한 것은 ‘연봉’ 말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풀무원은 대표이사급 임원들에게는 이동수단으로 국내 브랜드 차량 1대를 준다. 이 CEO는 이전까지 탄 차를 그대로 탄다. 굳이 특별하게 변하는 회사의 대우가 있다고 하면 모든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과 경영 방향의 결정권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이다.

이러한 풀무원의 조직 문화 그리고 오로지 임직원의 실력과 성과로 역량을 평가해 차기 경영자를 결정한 행보는 국내 기업들에게 전하는 '강한' 메시지가 있다.

오너 일가 형제의 경영권 분쟁으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시달린 롯데그룹이나 총괄회장의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정부 부패 권력에 로비로 줄을 댄(혐의를 추궁 받고 있는) 삼성의 사례는 풀무원의 기업 문화와 경영 승계가 어떤 면에서 특별한지를 잘 보여준다. 풀무원의 이번 경영 승계는 회사를 넘겨주기 위해 편법 증여, 지주회사 전환 등 온갖 꼼수를 부리는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