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많은 일과 어려움이 있었던)’이라는 사자성어는 매년 연말이면 거의 수학 공식처럼 쓰이는 말이지만, 올해만큼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해가 또 있을까 싶다.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 게이트는 이 나라의 거의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경제는 뒷걸음질 쳤다. 외교도 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국내 유통업계도 그에 못지않게 ‘다사다난’한 사건들로 장식됐다. 애석하게도 대부분은 부정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옛말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했다. 비록 허물이라 할지라도 옛 일들을 다시 돌아보고 배운 후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있듯이. 가능하면 같은 일로 다시 회자되지 않으면 좋을, 올 한해 유통업계 핫 키워드 5가지를 뽑아 봤다. 

1.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악화의 연쇄 반응” 

‘사드’는 엄밀히 말하면 외교나 국방과 관련된 이슈지만 이로 인한 여파는 국내 유통업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중국의 국방력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과 레이더 기지를 구축하는 것으로 간주해 이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중국은 이러한 위기 조장의 빌미를 제공한 것을 우리나라로 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견제를 시도했다. 중국 내 롯데마트를 강제로 영업을 정지 시키는가 하면 자국민들의 단체 한국 관광을 금지했고 무역 장벽을 높여 한국산 수출품을 쓰레기통으로 보냈다. 우리나라 관광업계의 큰손이던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로 매출이 급감했고, 면세점 업계의 매출은 지난해 대비 수천억원 감소했다. 특히 롯데는 롯데마트 영업정지와 롯데면세점 매출 감소로 가장 큼 피해를 입었다. 정확한 액수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정부에서는 우리나라는 중국의 견제로 약 8조원의 경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2.프랜차이즈 ‘갑질’  “곪았던 상처가 터지다”   

가맹점주들에 대한 프랜차이즈 가맹 본사의 갑질 문제는 오랫동안 곪았던 상처다. 계약 관계상 ‘갑’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가맹 본사가 우위의 입지를 악용해 가맹점주들에게 비용을 부담시키고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갑질은 소위 ‘업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돼왔다. 그렇게 곪았던 상처가 터졌다. 피자 프랜차이즈 ‘미스터피자’는 가맹을 탈퇴한 점주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해당 점주의 매장 인근에 직영 점포를 내고 고객을 빼앗았다. 이로 인한 매출 감소로 생활고에 직면한 점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이후 프랜차이즈 업계 갑질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대두시킨 트리거(발단)이 됐다. 미스터피자 외에도 수많은 브랜드의 갑질 사례가 적발됐고, 이에 따라 업계는 ‘프랜차이즈산업협회’ 내에 혁신위원회를 조직해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프랜차이즈 문제는 정권교체로 새롭게 그 존재감이 떠오른 공정거래위원회의 힘을 키우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 출처= 이코노믹리뷰 DB

3. 공포증(Phobia) 신드롬  “믿을 것이 없다”

2017년은 가히 ‘공포증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햄버거, 계란, 소시지 등 식자재에 이어 여성용품인 생리대까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초등학생이 제대로 익히지 않은 쇠고기 패티로 인해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걸려 신장에 병이 생기는가 하면, 계란에서 인체에 유해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계란이 폐기됐고, 계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에 정부는 계란값 안정을 위해 미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계란을 수입하기에 이른다. 거기에 E형 간염 바이러스를 유발하는 유럽산 햄과 소시지 때문에 한 때 마트에서 햄과 소시지가 치워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특정 브랜드의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들이 여성 질환에 걸린다는 불만이 접수되면서 올해의 공포증은 생리대까지 이어졌다. 

 

▲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4. 롯데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했거늘...”

지난 3년 롯데는 그야말로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2015년 총수일가 경영권 분쟁, 2016년 총수일가 경영비리 검찰조사에 이어 2017년에는 사드 배치 부지 제공으로 인한 중국의 견제에 총수일가의 경영비리, 국정농단 연루 재판까지. 사실 2016년까지 있었던 롯데의 위기는 올해에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다. 경영권 분쟁도 사실상 신동빈 회장에게 넘어갔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세금포탈 혐의를 줄기차게 추궁했던 검찰이 끝내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면서 롯데는 안도했다. 그리고 신동빈 회장 중심의 경영 체계를 완성시키려는 찰나, 사드 보복으로 인한 롯데마트 강제 폐업 조치, 관광 금지 등 중국의 롯데 견제가 시작됐다. 현재는 한-중 양국 정상의 대화로 화해 국면에 있지만 여전히 중국 정부는 중국 롯데마트의 운영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에, 검찰이 롯데 총수 일가의 경영 비리를 문제 삼아 신동빈 회장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하는 초강수를 두며 롯데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법원은 신 회장에게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가벼운 형을 선고해 롯데는 잠시 한숨을 돌렸으나, 판결에 대해 검찰이 항소하면서 재판은 더 길어졌다.  
            
 

▲ 서울시내 파리바게뜨 매장.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5.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직접고용 논란 “고용부 초강수 vs SPC의 설득”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는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 가맹 본사인 SPC가 각 매장에 파견돼 근무하는 제빵기사들에 대한 업무 조율을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간주했다. 이에 고용부는 모든 파리바게뜨 제빵 기사들의 본사 고용을 명령했다. SPC는 전국 약 5300명의 제빵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면 그로 인해 상승하는 비용이 가맹점주들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음을 이유로 고용부 조치의 부당함을 주장했고 법원에 명령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사안의 옳고 그름을 법으로 판단할 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고용부는 SPC에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한 과태료를 통보한다. 그러나 SPC는 직접 고용의 대안으로 제빵 기사들을 본사-가맹점주-노조의 합작 ‘상생기업’으로 고용 전환하는 대안을 제시했고 현재까지 전체 80%에 이르는 약 4000명의 제빵 기사들을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