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본사 케빈 마틴 부사장이 내년 1월 방한해 방송통신위원회를 방문할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지난해 SK브로드밴드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의 접속 지연 현상이 벌어진 후 방통위가 조사에 나서자 이를 소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케빈 마틴 부사장은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페이스북 통신 정책을 총괄한다.

▲ 케빈 마틴 부사장. 출처=위키디피아

페이스북 코리아 관계자는 이날  "케빈 마틴 부사장이 내년 1월 방한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구체적인 일정이 나온것은 아니지만 방한 자체는 사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이유로는 "방통위를 방문하는 등 공식일정을 조율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SK브로드밴드와의 미팅도 있을 계획이며, 공식 일정을 확정한 후 바로 논의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케빈 마틴 부사장의 방한은 국내 통신망 공짜 사용, 즉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해 페이스북은 국내에 캐시서버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며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사실상 통신망 공짜 사용을 요구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일부 페이스북 유저들이 느린 인터넷 속도에 시달리며 불편을 겪었다.

이 문제는 '캐시서버 구축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SK브로드밴드와 페이스북이 국내에 캐시서버를 설치하는 협상을 진행하던 중 트래픽 문제를 두고 이견이 생겨 대화가 중단됐고, 협상결렬을 이유로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 이용자 접속을 불완전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캐시서버는 한번 읽은 데이터를 나름의 장치에 보관한 후, 동일한 데이터를 읽어야 할 경우 자동으로 적용하는 캐시 기술을 제공한다.

이는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국내 통신사들은이 이미 구글 유튜브에 캐시서버를 열어준 특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페이스북도 동일한 요구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구글 유투브 캐시 서버를 자사 인터넷 데이터 센터에 설치해주고 트래픽 비용을 별도로 받지 않으며 KT는 아예 자체비용으로 구글 캐시서버를 자사 인터넷 데이터 센터에 설치했다.

페이스북은 캐시서버 문제와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코리아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 사용자들은 SK브로드밴드와 페이스북 간의 약정에 따라 페이스북의 홍콩 접속점을 통해 접속해 서비스를 받았다. 이 곳에서 양사 상호접속 협의를 통해 데이터가 비용 없이 오간다는 후문이다.

예전에는 한시적으로 SK브로드밴드 내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KT내 캐시 서버로도 일부 접속할 수 있었으나 상호접속 고시 개정 후, 이러한 접속이 각 사업자간의 협의 없이는 어렵게 됐다는 게  페이스북 코리아의 설명이다. 상호접속 고시는 통신사업자 간의 상호접속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콘텐츠 사업자인 페이스북은 해당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에 캐시서버 설치를 무리하게 요구했고, SK브로드밴드가 이를 거부하자 페이스북이 접속지연을 유도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페이스북은 "협의 과정에서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SK브로드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경우 SK브로드밴드 내의 페이스북 사용자만을 위한 캐시서버 설치를 지원할 수도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이 장비 및 설치와 관련한 책임을 부담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페이스북 코리아는 "SK브로드밴드가 향후 이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페이스북이 부담할 것을 요구하면서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출처=페이스북 코리아

결국 진실공방으로 불거진 이 사건은 방통위가 페이스북을 조사하면서 간신히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해 6월 "구글과 함께 페이스북의 문제를 독점 경쟁의 측면에서 판단하겠다"는 말로 힘을 더했다. 현재 페이스북과 SK브로드밴드는 캐시서버와 관련한 이견을 좁히기 위한 실무협상에 들어갔으며, 방통위는 케빈 마틴 부사장 방한에 맞춰 제재의 수위와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빈 마틴 부사장의 방한과 더불어, 최근 페이스북의 글로벌 사업 방향이 조금씩 '의미있는 상생'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금 이슈가 대표적이다. 페이스북의 데이브 웨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13일(현지시각) "페이스북 광고 판매를 광고가 집행되는 현지 지역판매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더 이상 아일랜드 법인에서 각국의 광고 수익을 집계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늦어도 2019년부터 각국에서 발생한 매출에 따라 현지에 세금을 내겠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글로벌 ICT 기업들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것을 고려하면 의미있는 결단으로 여겨진다.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을 주장하는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국내 ICT 기업들의 불만도 '아직 부족하지만'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구글과 애플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유한회사 설립을 내세워 정확한 매출 규모도 발표하지 않으며 세금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플은 국내에서 이 문제에 아예 대응하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네이버와 공방을 주고받은 구글은 14일 "구글은 한국에서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또 각국의 매출 집계 내역을 공개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 구글 코리아가 국내에서 거두는 매출은 약 3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세금 문제를 떠나 국내 규제 당국이 구글과 애플의 ICT 갑질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달 구글은 고객의 동의를 받지않고 무단으로 셀ID를 탈취해 중앙서버로 전송해 물의를 일으켰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사태로 여겨지지만 방통위는 뚜렷한 제재 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애플도 구형 아이폰 속도를 임의로 조작해 국내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입혔지만 마땅한 처벌조항이 없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방통위의 구글 조사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으며, 애플에 대해서는 애플 코리아의 의견청취를 시도하는 선에 머물러 있다. 구글과 애플이 현행 정보통신망사업자법에 해당되지 않는 해외기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