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앞두고 있던 1860년대, 동서양 각국들에 중요한 변화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흥망성쇠의 희비쌍곡선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다음 세기 각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먼저 일본은 1868년 막부세력과 반막부세력의 싸움이 막을 내리고 천황이 복귀하는 메이지유신이 시작되었으며, 서양의 선진문물을 배우고 소화하는 개방의 문이 열리게 된다. 1853년 미국의 페리제독이 이끄는 함대에 의해 강제 개항하고 불평등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전면적으로 선진 서양의 문물과 체제를 도입하는 개혁을 통해 발전한 일본은 추후 운양호를 보내 자기들이 당했던 아픔의 역사를 그대로 조선에 적용하며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는 등 제국주의의 또 다른 모습으로 조선을 괴롭힌다.

비슷한 시기 미국은 1863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노예해방이 선포되었으며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난 1865년 노예해방이 실현된다. 이로 인해 미국은 수많은 자발적 노동력을 확보하며 노동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고, 남북전쟁이 가져다준 산업화(군수산업, 물류산업)의 시작으로 20세기 세계 최강국으로의 도약의 시작된다.

영국 정부는 1866년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일어난 폭동에 놀라 개혁법을 거부하는 것이 개혁의 거센 파도에 힘을 보태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제2개혁법의 저지를 포기한다. 1867년 2차 개혁법의 통과로 도시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었으며, 많은 선거구에서 노동계급이 선거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또한 지역 간 장거리 철도망 연결이 완성되며 민주화와 산업화가 다 같이 융성하게 된다.

반면 동양의 최강국 청나라는 스스로가 최고라는 자만심에 안주하며 세상의 변화를 직시하지 못해 서양 열강과의 전쟁을 대비하지 못했으며,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말미암은 민심이반에 기인한 태평천국의 난이라는 민란의 발생으로 국력이 쇠퇴하게 되었다. 결국 1842년 영국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 불리는 1차 아편전쟁의 패배로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리고 1860년 2차 아편전쟁의 연이은 패배로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베이징까지 점령당한 후 베이징 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며 홍콩에 추가하여 구룡반도마저 영국에 넘기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서서히 추락하며 중국 역사상 최악의 100년을 맞이하게 된다.

조선은 조선후기 외척세력의 세도정치로 핍박해진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1860년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는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하지만 1863년 고종의 등극과 함께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시작되면서 점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갔고, 19세기 말의 혼란을 거쳐 20세기 초 일본에 강제합병 되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다가오는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고 적극 수용하며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개혁을 추구한 국가는 다음 세대에 부강한 국가를 넘겨줄 수 있었고, 현실에 안주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문을 닫아걸고 가둔 국가는 지리멸렬해져서 후손들에게 치욕의 역사를 안겨주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