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조금 창피한 이야기인데요. 위기가 발생해 저희가 일단 초기 대응을 하긴 했는데, 언론이나 여러 곳에서 문제 지적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희 회사에 홍보실도 없고요. 위기관리에 대해 별로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대부분 임원들도 경험이 없고요.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예를 한번 들어 볼까요? 환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 환자는 중병에 걸렸는데, 그 치료를 받기에는 몸이 너무 약한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해당 환자가 정해진 치료를 받지 못할 정도라고 판단하게 된 거죠. 그런 경우 의사는 치료를 좀 미루면서라도 몸을 먼저 챙기라는 조언을 할 것입니다. 정해진 치료를 하면 그 환자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죠.

질문 속 회사가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는 많습니다. 위기가 발생한 회사에 들어가 보았을 때, 위기관리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의사결정그룹이 존재하지 않거나 유명무실하고, 사전에 준비나 훈련이나 경험도 없는 직제상 위기관리팀만 덩그러니 앉아 있고. 기자들의 엄청난 질문에 제대로 답변이나 반박을 주고 받기 힘들어하는 홍보담당자가 있는 회사가 있습니다.

더구나 그런 회사의 내부협업체계는 기본 상황분석이나 공유 그리고 대응 메시지 정리가 전혀 불가능하고, 대신 각 부서장들이 각자 움직이는 그런 형태로 위기를 관리하며 불철주야하곤 합니다.

이런 경우 컨설턴트들은 위기관리 교과서나 원칙이나 경험에 의해 어떤 조언을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양한 부정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사실이 아닌 부분과 사실인 부분을 골라내 적절히 해명해야 하지 않겠는가?”라 조언할 때 홍보담당 직원이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이 없다” 하는 거죠. 그런 경우 컨설턴트는 “그래도 꼭 그렇게 해야 하니까, 한번 해보라” 할 수는 더 이상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대신 “그렇다면 섣불리 대응 말고 그냥 로우 프로파일하면서 이렇게 이렇게만 정한 대로 간단히 수동적으로 대응하죠”라고 조언합니다. “다른 분들도 괜히 위기관리 한다고 각자 행동하면서 문제 일으키기보다는 좀 더 내부 공유에 힘쓰면서, 소나기는 어느 정도 같이 맞고 걸어 가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이런 조언밖에 할 수 없는 것이죠.

항상 그런 기업의 위기관리 현장에 들어가 보면, 없는 역량을 기반으로 무언가 하려 하다가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경우들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각 부서장이 열심히 무언가 하는 것은 좋은데, 하지 않아야 할 것과 해도 소용없는 것에 많은 투자를 하고 그 부분이 더 큰 문제를 만드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환자(기업)가 제대로 된 위기관리(치료)를 진행하기 힘든 체력과 상황이라면, 일단 일정기간은 체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위기 때 훈련을 하거나 시뮬레이션을 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러니 일단 취약한 부분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일정 기간 조직 단위로 몸을 사리는 것이 최선의 대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장황한 메시지를 여러 곳에 뿌린다든지, 훈련 안 된 창구가 언론과 주의 깊지 못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규제기관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여러 루트를 통해 규제기관에 영향을 끼쳐 보려고 시도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전문적이지 않은 직원들이 함부로 피해자들을 접촉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영업직원이나 다른 직원들에게 무리한 위기관리 활동을 지시해 더 큰 논란을 만드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외부의 조력을 빌려 위기관리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체력이 되는 기업에 해당하는 조언입니다. 일단 위기관리를 위한 최고의사결정그룹이 무력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면(위기관리와 분리) 그 어떤 외부 전문가들의 조력도 성공적이기는 힘듭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 외부 실무자들끼리 백병전을 이어가다 흐지부지되곤 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고, 결과론적인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평시 해야 할 일을 한 기업이 최소한의 위기관리라도 합니다. 위기 시 필요할 당연한 숙제들을 평소 하지 않은 기업에게 기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일단 다가온 위기는 견뎌보고, 그 이후에 체력을 키우는 숙제를 성실하게 시작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