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사가 국내에 출범한 지 17년. 금융지주사는 대형화, 겸업화는 이뤄냈다. 자산규모가 300조를 넘는 대형 금융지주사가 서너 개나 되는 세상이다.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특히 최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3일 언론사 부장단과 조찬모임에서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 내년 초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지주사 수장인 회장의 선출 문제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간 대형화를 이룬 금융지주사들은 회장이 은행장은 물론 계열사 사장을 지휘 감독해왔다.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가진 회장은 자신의 임기 연장에도 개입할 수 있었다. 민주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그동안 자산 수백조원을 운용하는 금융지주사에서 버젓이 일어났다.

금융지주회사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드러난 미국 투자은행들의 지배구조는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증권시장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금융기관의 지배구조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CEO 리스크를 보여줬다.

미국 투자은행 내부에 CEO 리스크가 증폭되는 과정에서 이사회는 아무런 감시나 견제를 하지 못했다. 특히 위험을 다루는 것을 주된 영업으로 하는 투자은행의 CEO 리스크는 투자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화된 세계 금융시장의 안전을 위협했다. 그 결과로 세계 경제에 심각한 고통을 안겼다. 이러한 점에서 금융기관 CEO 리스크 문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경우 이러한 지배구조 문제를 명확히 해결한 모범 사례다. 이 회사는 좋은 지배구조의 구축을 기업의 지속성장을 실현할 수 있는 최상위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지배구조 운영상의 각자 역할에 대한 투명성과 책임 및 프로세스가 치밀하게 작성되어 있다. 또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추진되고 있다. 결국 스탠다드차타드는 CEO 인선 과정에서 지배주주나 이해관계자들의 개입을 초래하지 않고 자율경영권을 지속 발전시켜 가는 지배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역할은 모두 스탠다드차타드 이사회인 ‘거버넌스위원회(Governance Committee)’가 전담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이사회 의장과 CEO, 선임 사외이사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사회의 각 위원회는 매년 각 위원회의 역점 사업과 중요성과를 보고하도록 양식화되어 있다. 각 위원회는 회사의 전략추진에 기여한 바를 평가한다. 또 지배구조에서 역할을 점검한다.

이러한 이사들의 위원회 활동은 어떤 경험과 기술을 투입했는가 등을 평가해 이사회 회의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또 매년 자신의 활동성과를 스스로 평가하고, 동료 이사들의 성과를 평가하며, 이사회 자체에 대한 평가를 통해 다각적인 이사회 운영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고 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의 경우 인사담당 최고임원이 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규정에 의해 정기적으로 CEO 후보 대상자에 대한 검토와 그들의 경영역량, 리더십 개발 등에 대한 계획을 이사회에 보고한다. 이들 이사회는 최소 1년에 1회 이상 CEO와 인사 담당 최고임원과 함께 CEO 후보 대상자들의 성과를 검토한다. 이사회는 은행의 장기 전략과 사업 환경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요구되는 CEO 역량을 설정한다. 이사회는 고위 임원의 업적 평가와 임기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뿐만 아니라 은행이 필요로 하는 외부의 역량 있는 임원 후보들을 물색하는 노력을 최대한 경주한다. 이 과정에서 선점된 외부 인원이 회장직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독일의 자랑인 도이치뱅크는 CEO가 이사회 의장직으로 이동하는 데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이는 전 CEO가 이사회 의장으로 바로 이동해 CEO의 경영권에 개입하는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영국의 HSBC는 회장과 사장 선임과정에서 주요 주주인 기관투자가들에게 선임과정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또 외부에서 자문을 받고, 영국 감독당국인 FSA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를 도입했다. 이처럼 기관투자가와 협의하고 사전에 감독당국과의 적합성 검사를 거치는 것은 HSBC의 경우만이 아니라 영국 금융기관들의 주요 임원 선임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관행이다.

스웨덴 발랜베리가문은 노동조합 대표를 이사회에 필수로 중용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또 후계자를 두는 가족 경영을 하고 있지만 그 방식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게다가 견제와 균형을 위해 2명의 CEO 후보를 무려 10년 동안 평가한다.

이처럼 해외 여러 은행은 각종 규제를 통해 경영 투명화에 앞장서고 있다. 지배구조가 불안정한 기업의 이사회는 회사 발전을 고민하고 필요한 전략을 추진하기 어렵다. 회사 불확실성이 높아져 가는 금융환경 아래에서 금융지주사 성장과 위험관리 간 복잡하고 어려운 균형점을 찾고 실행하는 것은 효율적인 이사회 운영 없이 기대하기 어렵다.

즉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건전하고 효율적인 지배구조 정착의 중요성은 매우 높다. 이러한 문제점은 금융지주사들의 건전한 지배구조의 정착이 현실적으로 절실한 이유다.

이제 국내 금융지주사에 회장의 거수기가 아닌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