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내부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사장단, 임원 인사를 마치는 한편 나머지 계열사 인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콘트롤 타워 부재에 따른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해 불안감이 증폭되는 중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당장 내년도 기약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뒷줄로 밀려나는 삼성?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3박4일 방중일정을 시작한 가운데 대기업 재벌 총수가 포함된 대규모 경제사절단도 일정을 시작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이번 경제사절단에는 대기업 35곳, 중견기업 29곳 등 총 260개 기업과 단체가 함께한다.

눈길을 끄는 지점은 경제사절단의 면면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준 LG그룹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대기업 오너가 총출동하는 가운데 삼성은 용퇴를 선언한 윤부근 부회장이 동행한다. 5대 그룹 기준으로 보면 14일 열리는 비선실세 논란 결심 공판으로 사절단에 참여하지 못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삼성만 전문 경영인이 참석하는 셈이다. 지난 6월 미국 경제사절단에는 권오현 부회장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중은 중국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고 두 나라의 경제협력을 다지려는 다중포석이 깔려있다. 꼭 오너 일가가 경제사절단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 대기업들은 오너들이 직접 나서 인구 13억명의 중국 시장 활로를 찾으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중량감부터 다소 밀리는 분위기다.

재계에서는 12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첫 대기업 방문지로 LG그룹을 찾은 것을 두고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통상 정부 주요 인사가 대기업을 찾는 방식의 간담회를 열면 재계 순위에 기초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재계 1위 삼성은 비선실세 논란에 휘말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상태다.

LG그룹은 잡음없는 지배구조와 상생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에 김 부총리가 전격 방문했다는 평가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SK그룹도 충분히 방문 후보였다고 말한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역설하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후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나 아직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하고,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은 고령인데다 현대모비스의 물량 밀어내기 파문 등의 이슈가 있는 등 정부 입장에서 다양한 고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진 멈춘 '신사업 추진'...

재계에서는 삼성이 미래전략실 해체 후 삼성전자 정현호 사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가 주축이돼 계열사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삼성은 각자 계열사 체제를 강화하며 삼성전자 외 계열사 인사를 준비하고 있다. 남준우 부사장이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로 선임되고 유정근 부사장이 제일기획 신임 대표이사에 결정된 것도 계열사가 정했다는 설명이다.

삼성 관계자는 "인사만 봐도 예전 미전실 체제와 비교하면 상당히 늘어지고 어려워졌다"면서 "그렇다고 사업지원 TF가 미전실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면 이것역시 논란이 될 것이 뻔하다. 결국 외통수에 몰렸다"라고 말했다.

비단 인사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전실 체제가 사라지며 그룹 콘트롤타워가 붕괴된 후 큰 그림을 그리는 주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룹 내외부에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시절 추진하던 다양한 인수합병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했다"며 "지금 반도체가 살아나 겉으로 보기에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불안하다는 나온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반도체 슈퍼 사이클(장기호황) 기간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데다 생활가전도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지경이다. 지난 달 22일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조직개편을 통해 DMC연구소와 소프트웨어센터를 통합, 삼성 리서치(Samsung Research)를 출범시켰으며 산하에 AI(인공지능) 센터까지 신설했으나 '콘트롤 타워 부재'에 따른 우려는 여전하다는 의미다.